태양님과 저녁을 먹으면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태양님은 계속 프로그램 개발일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본사에서는 나이도 있고 하니 관리쪽 일을 하라고 하는것 같다. 관리하면 뭐하는거데? 라고 묻자 '갑' 에게 접대! 라고 한다. 워낙 술을 못마시는 태양님이기에 할수 있겠어? 라고 하자 글쎄..라고 한다. 이쯤 되자 작년 9월.. 친정 엄마 생신때 일로 뽀로로록~~~ 기억이 더듬거려 진다. 태양님 그냥 지나치나 했더니 또 나온다. 너 한번만 더 그러면 알아서 해!! 혼날줄 알아!!! 이소리에 발끈한 나! 내가 당신 동생이야!! 난 아내라고 아내! 누가 누구를 혼내! 우씨~~~  태양님 왈! 너 나 만나고 벌써 세번째야! 어떻게 아파서 죽을것 같을때까지 마시니!  하루 왈! 알고 마시나~ 마실때는 아픈거 모른다니깐!! 그걸 알면 거기서 그만 마셨겠지! 그리고 당신 만나 지금까지 5년인데 5년동안 딱 세번 보여줬으면 나 사람된거네~ 학교다닐땐 일주일이 멀다하고 쓰러졌는뎅..^^;;;;

결코 자랑이 아님에도 버럭 버럭 대들면서 말도 잘한다. 냉장고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꺼내서 벌컥 벌컥 마시는데 요거 요거 보니까 또 어릴적 술 마시던 때 생각이 뽀로로록~~~~  중3때부터 맥주를 기본으로 마셔주고 고등학교때 본격적으로 소주를마시게 된 나는 대학교 들어가서는 거의 말술이 되어버렸다. 먹고 죽자~~ 이 소리가 입에 베서 사실 그럴 마음이 없는날도 입에선 그말이 튀어  나왔다. 학교 잔디밭을 제2의 집 삼아 날 더운날은 거의 밖에서 살다 시피 하였고 날 추운날은 내집 놔두고 꼭 남의 하숙방이나 자취방에서 신세를졌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병원으로부터 금주령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어디 제버릇 개주나..맞나? 쉽지 않죠. 그리하여 아프면서도 마셨더니 그 때부터는 속이 뒤집어 지는거라.. 그때마다 나의 숙취음료가 되어준것이 바로 바나나 우유였다. 다들 으윽...더 속 뒤집어지게 무슨 우유냐고 할텐데..나의 속 뒷탈엔 바나나우유가 최고혔다. 그러나 이것도 1년... 더이상 먹을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 토해내고 마는 그때의 내 숙취제는 껌이였다.  사과향 센스민트, 요것만 씹어주면 그냥 속 아픈게 싸악~~ 낫는것 같았다.

대학 4학년때부터는 교회도 다니고 나름 열심히 생활하느라 술을 끊었었고 결혼 후 동아리 활동을 하게되면서 다시 조금씩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음.... 딱 3번..완전히 죽다  살아날 정도로 고생을 했다. 언제나 나의 확인물을 손수 치워주시고 겔포스에 숙취음료에 콩나물국에...착하신 울 태양님.. 태양님은 절대로 술 마시는 사람을 이해 못한다. 왜 취하도록 마시냐고 야단이다. 취할려고 마시지 안취할려면 물을 마시지.. 곧죽어도 할말은 다하죠..^^;;

하지만 생각하기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마시지 말라는데 그렇게 우겨가며 마실일은 또 뭔가! 정말 너무너무 마시고 싶을땐 낮에 살짝...(사실은 요즘도 낮에 살짝..^^;) 마시고 저녁에 깨는거지 뭐 ^^ 요즘은 사회생활을 안하다보니 개탄할일이 적어서인지 술도 쓰다. 그런데..술이야기를 하다보니 살짝 땡기네..아니다..그냥 자자....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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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겨울 > 책을 빌려주는 사람

 

알라딘을 모르기 전에는 세상에서 나만큼 책을 좋아하다 못해 집착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비관(?)했었다. 주변이 워낙 책과는 거리가 먼 환경이기도 하고 단지 취미로만 책을 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참 별난 괴팍한 인간이로구나라는 시선을 어지간히도 받았는데, 인터넷이라는 세계에서 도처에 사는 다양한 군상들을  엿보다보니 나 정도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에 적이 안도한 기억이 있다.


남의 집엘 가도 제일 먼저 책장으로 가서 소일하는 습관이 있다.  누구의 어떤 책을 읽는가를 통해 그의 성향과 성격을 가늠하기도 하고 내가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고 덤으로 빌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내 어린시절은 지독히도 빈곤해서 늘 책에 굶주렸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할 정도로 읽을거리가 늘 부족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스스로 돈을 벌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책을 사고 읽고 쌓아두는 일이었으니. 그런 나를 보고 가족들은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나 의아해했다. 성공하고 싶은 생각도 부자가 될 맘도 없이 오로지 책만 읽으면 그걸로 만족했다. 책을 너무 좋아하면 가난해 진다더라고 하던 걱정이 씨가 되었는지 예나 지금이나 빈곤은 여전하고 그럼에도 책을 읽어댄다. 말 그대로 즐거운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읽기다.


사람을 좋아하고 좋아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책을 빌려주는 사람’이 최고다. 빌려달라고 손을 내밀지 않아도 선뜻 책을 내밀며 읽어보라고 하면 나는 아이처럼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서 막연히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데는 서툴지만 내게 책을 빌려주었던 사람만은 생생히 떠오른다. 그 날의 장소와 시간까지도.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늦은 저녁에 빈 교실에서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건넸던 그녀, 작고 영민하던 얼굴과 길고 검었던 머리를 한쪽 어깨로 늘어뜨린 몇 살 위의 언니이자 친구였던, 잘 살라고 등이라도 두드릴 듯 애잔하게 바라보던 그녀 앞에서 나는 울었던가. 이별이 슬퍼서였는지, 약한 몸으로 세상 모든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비장하던 맑은 눈이 예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코, 쉬운 길을 노래하며 걸어가지 않았을 그녀가 그립다. 나는 그녀의 책을 족히 서너 번은 읽어치웠다.


오늘, 세상의 악습과 부조리와 가난과 소외, 숱한 상처들에서 무심하지 못하고, 번민하고, 회의하고 좌절하다 어느 순간, 다시,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 웃는, 좋은, 어린 그녀가 책을 빌려줬다. 한 아름의 책을 받아들고서도 뭐라 말을 못했다. 너무 좋으면 말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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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미녀석

* 오랫동안 서재를 비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울한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 기분이 쉽사리 가시지 않아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교 컴이 망가져서 새로 포맷을 했고, 번개도 가지 못했고-지승호님께 정말 죄송합니다-밤에는 술만 마셨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늘..알라딘에 있었습니다. 우울한 일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울보님과 메피스토펠레스님을 비롯해서 절 걱정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아니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야?”
로드무비는 읽던 신문을 뭉쳐서 바닥에 팽개쳤다.
“미녀석이라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는 거야?”


같은 시각, 신문을 보던 파란여우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나같은 사람이 대우받는 세상이 오는구나. 선거자금 댄 보람이 있어. 음하핫.”


마태우스가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 그가 내건 공약은 ‘아름다운 서울’이었다. 미녀를 밝힌다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설마 서울시장이 되어서까지 그럴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가 의미한 ‘아름다운 서울’이 ‘미녀에 의한, 미녀를 위한, 미녀의 서울’을 의미한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취임석상에서 마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녀는 대우받아야 합니다. 이 사회는 미녀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미녀가 없다면 우리네 삶은 얼마나 척박하겠습니까?”

이 정책은 얼마 가지 않아 지하철에 ‘미녀석’을 만드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지하철 세 번째 칸의 한줄을 미녀석으로 지정, “가느다란 다리로 서 있어야 할 미녀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미모라면 사족을 못쓰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 제안에 열성적 지지를 보였고, 여성들 역시 자신이 미모가 아니어서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대놓고 반대하지 못했다. 여론조사기관인 ‘kal18ren'은 “남성의 93%, 여성의 54%가 이 정책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마시장은 미녀석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한달간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미녀가 아닌 사람이 앉는 경우 바로 일어나도록 권장, 설득, 협박한다는 것. 1월 23일, 서울시장 일행이 참석한 첫 시험운행이 언론과 시민들의 대대적인 관심 속에서 실시되었다. 시범열차로 지정된 3호선 672958호는 평일 열시라는 한산한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수서에서 출발한 열차가 양재에 도착할 때까지, 열 정거장 동안 미녀석 세자리는 비어 있었다. 미녀석에 앉기 위해 전철을 탄 사람도 많았지만, 막상 앉으려니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인파 속에 물만두가 있었다.

‘내, 내가 앉아 버릴까? 사실 나도 미녀란 소리 많이 들었잖아? 진정한 미녀는 용감한 여자라고!’

용기를 낸 물만두는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카메라 플래쉬가 일제히 터졌다. 빛의 향연을 즐기면서 물만두는 한껏 미모로운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물만두는 이내 앉은 것을 후회했다.

‘아니 분위기가 왜 이래?’

종전의 떠들썩함 대신 썰렁한 분위기가 전철 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 중 일부는 목을 길게 빼서 물만두를 바라보았고, 어떤 이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음 약한 물만두로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하핫, 조크였어요, 조크.”

조크라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금 풀렸다. 그 뒤 라주미힌과 실비가 미녀석에 앉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미녀석이 생각보다 잘 안되자 마시장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한 여인이 의자 옆에 섰다.

“전 하루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만 여기 앉으면 안될까요?”

그럴 경우에 대비해 서있던 키티가 하루를 끌어냈다. 그때 한 여인이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날개였다. 약수역에 있는 고모집에 가려다 우연치 않게 그 전철을 탄 거였다. 날개는 그 전철이 미녀석인 걸 알지 못했고, 빈자리를 찾다가 세 번째 칸까지 간 것이었다. 전날 배드민턴을 심하게 쳐서 다리가 후들거렸던 터에 자리 하나가 통째로 비어있는 걸 본 날개는 웬 떡이냐 싶어 덥석 자리에 앉았다. 다시금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평소에도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살던 날개는 플레져가 터지든 말든 가방에서 책-‘바람구두를 맞은  mong'-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날개를 본 사람들은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고, 휴대폰 카메라로 날개를 찍기도 했다. 그 중 그 광경을 째려보는 사람이 있었다. 깍두기였다.


어려서부터 깍두기는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넌 나중에 커서 공주가 될 거야.”

공주는 미모가 아닌, 혈통으로 결정된다는 걸 안 깍두기는 크게 좌절했다. 하지만 신문에서 본 미녀석 소식은 깍두기의 공주 의식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꼭 내가 앉고 말거야!”

깍두기는 이른 아침에 미장원에 다녀왔고, 귀에는 딸기만한 크기의 진주를 달았으며, 십년 전 파티 때 입었던 드레스 정장을 옷장에서 꺼냈다.

“으...호크가 왜 안채워지는 거야.... 으...숨막혀.”

분홍빛 드레스 차림의 깍두기를 이웃에 사는 돌바람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뭔가를 말하려는 돌바람을 깍두기가 제지했다.

“흥, 공주가 드레스 입는 건 당연한데 뭘 그리 놀라나?”

바삐 걸어가는 깍두기에게 돌바람이 외쳤다.

“드레스 뒤가 터졌어요!”

하지만 돌바람의 외침은 울보의 울음소리에 묻혀 깍두기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좌우지간  일등의 영광을 날개에게 빼앗긴 깍두기는 무척이나 속상했다.

‘흥, 등수보다 중요한 건 미모의 깊이라고!’

깍두기는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잡고 미녀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시금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매너리스트 기자가 깍두기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순간 날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된 야클이 날개를 제지했다.

“앉아 계십시오. 당신은 자격이 충분합니다.”

날개가 다시금 일어서려 했다.

“저...지금 내려야 하는데...”

야클은 다시금 날개를 주저앉혔다.

“괜찮다니까요.”

그때 파비아나가 하나 남은 미녀석으로 달려갔다. 열린 사고의 소유자인 파비아나는 상황을 봐서 앉아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미녀석을 향해 돌진하는 파비아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거 왜 이래?”

파비아나의 목덜미를 낚아챈 사람은 보기드문 미녀였다. 파비아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 너는 뭐냐?”

미녀가 외쳤다.

“나는 아영엄마다!”

“아, 아영엄마? 그, 그렇다면 당신 딸이 아영이?”

아영엄마가 고개를 끄덕이고 앉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녹색 물체가 날아왔다.

“아악!”

자리에 앉으려던 아영엄마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를 보니 선인장이 의자에 놓여 있었다.

“이, 이런.... 어떤 놈이냐?”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났다.

“껄껄껄. 내 이름은 들어 봤겠지?”

낡은구두를 신은 미녀가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이 아이가 바로 마로다!”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저 사람이 바로 조선인이야. 미모로 경기도 일대를 평정한...”

“멈추시오!”

조선인이 선인장을 치우고 앉으려는 찰나 한 여인이 돌진했다.

“나는 수니나라라고 하오. 안양 일대에서 소문난 미녀지요. 두분은 저기, 경로석에나 가보시오.”

사람들이 웃자 조선인은 발끈했다.

“니가 내 명성을 아직 못들은 게로군.”

조선인은 팔뚝을 걷어부쳤다.

“그만들 하세요!”

날개가 일어났다.

“정 그렇게 미녀석이 탐난다면, 제가 양보해 드리겠어요. 안그래도 내릴 곳을 지나쳤으니깐요.”

다시금 야클이 다가갔다.

“당신은 마음까지 예쁘구료. 어서 앉으시오. 당신은 한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오.”

날개는 이번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그 자리, 제가 앉으면 안되나요?”

수정같은 소리에 조선인과 수니나라는 싸움을 멈췄다. 쳐다보니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너는 누구냐? 어디서 왔지?”

아이는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지족초 6년 박예진이라고 합니다. 나이제한이 없다면 제가 그 자리에 앉았으면 하는데요.”

박예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의자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누구도 그 아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잠깐!”

하이드가 앞을 가로막았다.

“너는 어리니 앞으로도 기회가 있잖아. 언니는, 올해 벌써 서른이야. 으흐흑.”

박예진이 움찔하는 사이, 여자 세명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우리는 미녀 삼총사!”

맨 왼쪽에 선 여자가 말했다. “나는 스텔라, 모델 제의를 세 번이나 받았다고!”
가운데 여자가 말했다. “난 치카, 제주도 일대를 미모로 휩쓸었어!”

맨 오른쪽 여자가 말할 차례가 되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 여자는 왜 저기 있는 거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난 마냐! 미, 미국서 차례 지내러 왔어!”

“음하하하.”

마냐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여인이 각목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누구든 저 자리에 앉으려면 나한테 물어봐야 할걸?”

궁금해진 사람들이 물어봤다.

“댁은 뉘시오?”

“난 달밤이라 하오. 미모를 쓸 데가 없어 시름하던 터에 소식을 듣고 달려왔소.”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무렵, 한 여인이 철퇴를 감고 나타났다.

“달밤, 이 세실이 무섭지 않느냐?”

철퇴에 눌린 달밤이 한발 물러서려는데, 백발이 성성한 분이 호통을 쳤다.

“그만들 하시오!”

다들 놀라서 그쪽을 바라봤다.

“난 수암이오.”

사람들의 놀람이 더 커졌다.

“아니, 수암이라면 발마스와 쌍벽을 이루는 고매한 철학자?”

“그래스물넷이 주장한 줄기서점론의 허구성을 증명한 바로 그사람?”

수암은 길게 드리운 수염을 쓰다듬었다.

“미녀석이고 뭐고, 이 자리는 다리 아픈 내가 좀 앉아야겠소. 불만 있소?”

말을 마치자마자 수암은 미녀석의 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메라 플레져가 일제히 터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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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연잎차 > 수필,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 없다!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
이강옥 지음 / 돌베개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로 영남대 이강옥 교수께서 쓰신 육아 에세이다. 수 년 전, 사촌 언니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한들 이십대 초반의 내가 육아 에세이를 선뜻 읽기란 애당초 무리였을 터이다.

첫 장부터 저자는 누선을 자극해오는 위대하고 숭고한 체험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읊고 있었다. 그 사이로 오늘 막 도착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실황 음반의 선율이 잔잔히 흘러 나와 감동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아이가 아이를 키운다는 냉소적인 말을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최소한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는 자기 절제와 자기감정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교수는 <임꺽정>의 곽오주를 예로 들어 인격 수양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입덧이 음식물 속의 유해한 독으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라는 설도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모체의 입덧조차 얼마나 숭고한 보호 본능의 표현인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는 기대한 시각에 아빠가 나타나지 않자 아빠를 애타게 부르다, 아빠 마중을 나가자고 할머니를 졸랐다고 한다. 그리고 찬바람 속에서 지나가는 검은 옷 입은 남자마다 가리키며 "아빠, 아빠."라 불렀다. 그러면서 1시간을 서 있었다. 그러다 아빠가 나타나자 큰 소리를 지르며 환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도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던가? 내가 이렇게까지 타인의 생존을 위해 절실한 자리를 차지한 적이 있었던가? 아이는 내가 자기의 생존을 위해 한없이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나로 하여금 느끼게 해 줌으로써, 이 쓸쓸하고 고단한 나의 삶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다. 칠흑 같은 창에 불을 켜 주듯이. - 본문 중에서

주위에 어린 아이는 고모의 둘째 아이 뿐이라 육아 에세이를 읽으며, 자꾸만 그 녀석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는데, 이 책은 결혼할 친구에게 선물하면 참 좋을 책 같다. 어머니가 될 여성은 물론 아버지가 될 남성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발라서 없어지는 화장품이나, 목욕 용품보다 언제 방문해도 그들의 집 책장에 꽂혀 있을 책 한 권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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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연잎차 >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하찮음에 관하여
함정임 지음 / 이마고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거르지 않고 음악을 켜놓곤 한다. 가령 설거지를 할 때나, 책을 읽을 때, 청소를 할 때, 화초에 물을 줄 때 등등…. 나는 적막함을 견딜 수 없어하는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이 아닐지라도 라디오 디제이의 음성이라도 들을 수 있어야 외롭지 않은가 보다.

그에 비해 친구 하나는 책을 읽을 땐 오로지 책만 읽고, 음악을 들을 땐 오로지 음악만 듣는다고 했다. 생각하니 책만 읽고, 음악만 들으면 좀 더 그 세계로 심취하기 쉬울 것 같기도 하다.

함정임의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는 우연히 내 시야에 들어온 책이었다. 흰색 표지에 연두색의 글씨체가 귀여웠다. 함정임, 그녀를 떠올리면 우선 마음이 아릿해온다. 세상의 슬픔 가운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다음의 인용문은 소제목 가운데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의 일부분이다.

아빠가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난 후부터 아이는 그리워하는 버릇이 생겼다. 곁에 없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이끌리고, 보고 싶고, 생각하는 마음, 생각하다 못해 섬기는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 그리움의 실체라면 다섯 살 아이에게 그리움이란 너무 일찍 내려진 가혹한 형벌이다.

그러나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란 존재의 그늘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내 유년기를 돌이켜보면 그리움이란 단지 형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이에게 그리움이란 나에게 그러했듯이 생을 보다 웅숭깊게 만드는 불행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그러나 그녀는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랑에 대해 정의한다.

"사랑은 분명 슬픔을 남기지만, 또한 그 슬픔을 정화시키는 힘도 배양한다. 그래서 사랑은 배반도 상실도 새로 자라난 사랑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 - 본문 중에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 전혜린과 기형도에 관한 이야기, 축구와 사진전에 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남편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책을 읽고 난 후,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 가운데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차가운 인상을 지녔다고들 말하지만,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면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점에 대해서 그녀는 만나면 만날수록, 시간이 갈수록 정이 깊어지는 관계를 원하고, 언제든 떠올리면 기분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소설가이자 어머니, 딸로서의 다양한 위치 변화를 하고, 그 때마다 순간순간 그녀의 가치관을, 인생관을 엿보는 일은 흐뭇하기까지 했다.

누가 누구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간에 몸을 담그는 거라 했던가. 이 산문집으로 말미암아 소설가 함정임을 더 좋아하게 될 것만 같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성찰이 남달랐던 그녀를 독자들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

소설가 신경숙도 그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새삼 내가 거들 것도 없이 그녀는 어디서나 눈을 부시게 하는 사람이다. 찬란해서만은 아니다. 자코메티의 손끝에서 태어난 것 같은 신비한 분위기 때문이며 그녀가 살아내고 있는 삶의 내력이 고독하게 타자의 내면을 흔들기 때문이다. 그녀가 쓴 산문도 그와 같다.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하는 빗소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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