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미녀석

* 오랫동안 서재를 비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울한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 기분이 쉽사리 가시지 않아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교 컴이 망가져서 새로 포맷을 했고, 번개도 가지 못했고-지승호님께 정말 죄송합니다-밤에는 술만 마셨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늘..알라딘에 있었습니다. 우울한 일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울보님과 메피스토펠레스님을 비롯해서 절 걱정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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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야?”
로드무비는 읽던 신문을 뭉쳐서 바닥에 팽개쳤다.
“미녀석이라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는 거야?”


같은 시각, 신문을 보던 파란여우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나같은 사람이 대우받는 세상이 오는구나. 선거자금 댄 보람이 있어. 음하핫.”


마태우스가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 그가 내건 공약은 ‘아름다운 서울’이었다. 미녀를 밝힌다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설마 서울시장이 되어서까지 그럴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가 의미한 ‘아름다운 서울’이 ‘미녀에 의한, 미녀를 위한, 미녀의 서울’을 의미한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취임석상에서 마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녀는 대우받아야 합니다. 이 사회는 미녀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미녀가 없다면 우리네 삶은 얼마나 척박하겠습니까?”

이 정책은 얼마 가지 않아 지하철에 ‘미녀석’을 만드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지하철 세 번째 칸의 한줄을 미녀석으로 지정, “가느다란 다리로 서 있어야 할 미녀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미모라면 사족을 못쓰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 제안에 열성적 지지를 보였고, 여성들 역시 자신이 미모가 아니어서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대놓고 반대하지 못했다. 여론조사기관인 ‘kal18ren'은 “남성의 93%, 여성의 54%가 이 정책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마시장은 미녀석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한달간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미녀가 아닌 사람이 앉는 경우 바로 일어나도록 권장, 설득, 협박한다는 것. 1월 23일, 서울시장 일행이 참석한 첫 시험운행이 언론과 시민들의 대대적인 관심 속에서 실시되었다. 시범열차로 지정된 3호선 672958호는 평일 열시라는 한산한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수서에서 출발한 열차가 양재에 도착할 때까지, 열 정거장 동안 미녀석 세자리는 비어 있었다. 미녀석에 앉기 위해 전철을 탄 사람도 많았지만, 막상 앉으려니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인파 속에 물만두가 있었다.

‘내, 내가 앉아 버릴까? 사실 나도 미녀란 소리 많이 들었잖아? 진정한 미녀는 용감한 여자라고!’

용기를 낸 물만두는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카메라 플래쉬가 일제히 터졌다. 빛의 향연을 즐기면서 물만두는 한껏 미모로운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물만두는 이내 앉은 것을 후회했다.

‘아니 분위기가 왜 이래?’

종전의 떠들썩함 대신 썰렁한 분위기가 전철 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 중 일부는 목을 길게 빼서 물만두를 바라보았고, 어떤 이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음 약한 물만두로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하핫, 조크였어요, 조크.”

조크라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금 풀렸다. 그 뒤 라주미힌과 실비가 미녀석에 앉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미녀석이 생각보다 잘 안되자 마시장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한 여인이 의자 옆에 섰다.

“전 하루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만 여기 앉으면 안될까요?”

그럴 경우에 대비해 서있던 키티가 하루를 끌어냈다. 그때 한 여인이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날개였다. 약수역에 있는 고모집에 가려다 우연치 않게 그 전철을 탄 거였다. 날개는 그 전철이 미녀석인 걸 알지 못했고, 빈자리를 찾다가 세 번째 칸까지 간 것이었다. 전날 배드민턴을 심하게 쳐서 다리가 후들거렸던 터에 자리 하나가 통째로 비어있는 걸 본 날개는 웬 떡이냐 싶어 덥석 자리에 앉았다. 다시금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평소에도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살던 날개는 플레져가 터지든 말든 가방에서 책-‘바람구두를 맞은  mong'-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날개를 본 사람들은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고, 휴대폰 카메라로 날개를 찍기도 했다. 그 중 그 광경을 째려보는 사람이 있었다. 깍두기였다.


어려서부터 깍두기는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넌 나중에 커서 공주가 될 거야.”

공주는 미모가 아닌, 혈통으로 결정된다는 걸 안 깍두기는 크게 좌절했다. 하지만 신문에서 본 미녀석 소식은 깍두기의 공주 의식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꼭 내가 앉고 말거야!”

깍두기는 이른 아침에 미장원에 다녀왔고, 귀에는 딸기만한 크기의 진주를 달았으며, 십년 전 파티 때 입었던 드레스 정장을 옷장에서 꺼냈다.

“으...호크가 왜 안채워지는 거야.... 으...숨막혀.”

분홍빛 드레스 차림의 깍두기를 이웃에 사는 돌바람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뭔가를 말하려는 돌바람을 깍두기가 제지했다.

“흥, 공주가 드레스 입는 건 당연한데 뭘 그리 놀라나?”

바삐 걸어가는 깍두기에게 돌바람이 외쳤다.

“드레스 뒤가 터졌어요!”

하지만 돌바람의 외침은 울보의 울음소리에 묻혀 깍두기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좌우지간  일등의 영광을 날개에게 빼앗긴 깍두기는 무척이나 속상했다.

‘흥, 등수보다 중요한 건 미모의 깊이라고!’

깍두기는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잡고 미녀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시금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매너리스트 기자가 깍두기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순간 날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된 야클이 날개를 제지했다.

“앉아 계십시오. 당신은 자격이 충분합니다.”

날개가 다시금 일어서려 했다.

“저...지금 내려야 하는데...”

야클은 다시금 날개를 주저앉혔다.

“괜찮다니까요.”

그때 파비아나가 하나 남은 미녀석으로 달려갔다. 열린 사고의 소유자인 파비아나는 상황을 봐서 앉아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미녀석을 향해 돌진하는 파비아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거 왜 이래?”

파비아나의 목덜미를 낚아챈 사람은 보기드문 미녀였다. 파비아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 너는 뭐냐?”

미녀가 외쳤다.

“나는 아영엄마다!”

“아, 아영엄마? 그, 그렇다면 당신 딸이 아영이?”

아영엄마가 고개를 끄덕이고 앉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녹색 물체가 날아왔다.

“아악!”

자리에 앉으려던 아영엄마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를 보니 선인장이 의자에 놓여 있었다.

“이, 이런.... 어떤 놈이냐?”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났다.

“껄껄껄. 내 이름은 들어 봤겠지?”

낡은구두를 신은 미녀가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이 아이가 바로 마로다!”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저 사람이 바로 조선인이야. 미모로 경기도 일대를 평정한...”

“멈추시오!”

조선인이 선인장을 치우고 앉으려는 찰나 한 여인이 돌진했다.

“나는 수니나라라고 하오. 안양 일대에서 소문난 미녀지요. 두분은 저기, 경로석에나 가보시오.”

사람들이 웃자 조선인은 발끈했다.

“니가 내 명성을 아직 못들은 게로군.”

조선인은 팔뚝을 걷어부쳤다.

“그만들 하세요!”

날개가 일어났다.

“정 그렇게 미녀석이 탐난다면, 제가 양보해 드리겠어요. 안그래도 내릴 곳을 지나쳤으니깐요.”

다시금 야클이 다가갔다.

“당신은 마음까지 예쁘구료. 어서 앉으시오. 당신은 한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오.”

날개는 이번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그 자리, 제가 앉으면 안되나요?”

수정같은 소리에 조선인과 수니나라는 싸움을 멈췄다. 쳐다보니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너는 누구냐? 어디서 왔지?”

아이는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지족초 6년 박예진이라고 합니다. 나이제한이 없다면 제가 그 자리에 앉았으면 하는데요.”

박예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의자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누구도 그 아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잠깐!”

하이드가 앞을 가로막았다.

“너는 어리니 앞으로도 기회가 있잖아. 언니는, 올해 벌써 서른이야. 으흐흑.”

박예진이 움찔하는 사이, 여자 세명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우리는 미녀 삼총사!”

맨 왼쪽에 선 여자가 말했다. “나는 스텔라, 모델 제의를 세 번이나 받았다고!”
가운데 여자가 말했다. “난 치카, 제주도 일대를 미모로 휩쓸었어!”

맨 오른쪽 여자가 말할 차례가 되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 여자는 왜 저기 있는 거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난 마냐! 미, 미국서 차례 지내러 왔어!”

“음하하하.”

마냐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여인이 각목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누구든 저 자리에 앉으려면 나한테 물어봐야 할걸?”

궁금해진 사람들이 물어봤다.

“댁은 뉘시오?”

“난 달밤이라 하오. 미모를 쓸 데가 없어 시름하던 터에 소식을 듣고 달려왔소.”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무렵, 한 여인이 철퇴를 감고 나타났다.

“달밤, 이 세실이 무섭지 않느냐?”

철퇴에 눌린 달밤이 한발 물러서려는데, 백발이 성성한 분이 호통을 쳤다.

“그만들 하시오!”

다들 놀라서 그쪽을 바라봤다.

“난 수암이오.”

사람들의 놀람이 더 커졌다.

“아니, 수암이라면 발마스와 쌍벽을 이루는 고매한 철학자?”

“그래스물넷이 주장한 줄기서점론의 허구성을 증명한 바로 그사람?”

수암은 길게 드리운 수염을 쓰다듬었다.

“미녀석이고 뭐고, 이 자리는 다리 아픈 내가 좀 앉아야겠소. 불만 있소?”

말을 마치자마자 수암은 미녀석의 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메라 플레져가 일제히 터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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