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시비돌이 > 진중권



 

진중권 선생과 처음 만난날 동국대학교에서 나오는것을 이기태가 찍어준 사진. 사실 인터뷰를 여러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친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그건 두 사람의 성격 탓인 듯도 하다. 의외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날 더러 진중권을 한마디로 규정하라고 한다면 '착한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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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시비돌이 > 12쇄를 찍기를 기원하면서 ...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아는 의사 중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서민님이 쓴 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일단 재미 있다. 알라딘 서재에서는 마모씨로 더 유명한 그의 글을 보다 보면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때가 많다. 도대체 의사 생활을 하면서 뭐가 부족하다고, 글까지 잘 써버린단 말인가? 글 써서 먹고 살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게다가 인간성마저 훌륭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들도 난무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서재는 늘 미녀(?)들로 붐비고, 수시로 럭셔리한 모임을 갖는다는 역시 확인되지 않는 소문들이 있다.

일단 그의 글은 쉬워서 좋다. 흔히들 쉽게 쓰는 글들은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기가 그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걸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정도가 되려면 보통 내공 가지고는 안된다. 게다가 그는 겸손하고, 정직하기까지 하다. 세상에 이런 나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박찬욱 감독의 쓰리 몬스터도 보지 못했는가? 거기서 어느 엑스트라 출신 연기자는 감독의 집에 침입해 그의 아내를 꽁꽁 묶어놓고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잘 생기고, 공부도 많이 하고, 예쁜 아내도 있고, 영화도 잘 찍고, 게다가 인간성까지 좋으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여기서도 힘들게 살고, 죽어서도 지옥가잖아유' 라면서 살면서 잘못한 거 한가지를 얘기하라고 다그친다. 그런데 그 마모씨는 화려한 여성 편력 외에는 별다른 단점을 찾아볼 수도 없는 듯하니 이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모씨가 그 많은 미녀들 중 한명과 결혼을 했을때 그동안 마모씨에게 사랑받던 수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집을 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의 인기는 연령을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평을 쓰다가 얘기가 이상한 쪽으로 가버렸는데, 아무튼 대부분의 의사들은 태생적으로 권위적이고, 기득권과 친한 모습이었는데, 이 책의 저자 서민님은 환자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의 얘기처럼 헬리코박터 같이 상업적 목적에 의해 위협이 과대평가된 것이 어디 하나 둘이며, 안 먹으면 큰일날 것처럼 선전되는 음식이나 약이 한둘이겠는가?

그리고 그는 변비, 치질, 설사, 대머리 같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음지의 질환을 천시하는 풍토를 개탄하면서 병에 귀천이 없는 건강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한다. 도대체 이 놈의 사회는 차별할 게 없어서 병까지 차별하는 사회다.  책을 읽어보니 그도 나하고 같은 지병(?)을 갖고 있는 듯하다. 위 내장 반사라는 병이라는데, 그런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1인 다역을 해내는 그가 진심으로 존경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한다. 그 염려가 스트레스가 되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지경이다. 세상의 걱정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며, 또 일부의 걱정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다. 그런 걱정들은 생기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잘못된 의학, 건강 상식이나 지나친 건강에 대한 걱정을 좀 떨쳐버릴 수 있을 듯 하다.

2쇄 찍은 거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심모 대작가님처럼 12쇄에 도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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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시비돌이 > 한겨레 21과 주간조선의 유시민 특집 기사
유시민을 만나다 - 항소이유서에서 소셜 리버럴리스트가 되기까지, 지승호의 인물 탐구 1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유시민을 만나다' - 이 책은 내가 낸 책 중에서도 가장 졸속으로 낸 듯한(그렇다고 신경을

쓰지 않은 것도 아닌데, 뭔가 역부족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개정판

을 내고 싶었으나, 책을 낸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 그래서 되도록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유시민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파동으로 각 주간지가 유시민 의원의 특집 기사를 다뤘고,

한겨레 21과 주간조선 기사에 그 책의 내용이 인용이 되었다. 혹시 내 해석이 틀리지 않았나,

그래서 잘못된 인용이 된 건 아닌가, 악의적으로 인용한 건 아닌가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사들을 들여다봤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을 인터뷰해서 결과물로 낸다는 것은 기쁜 일인만

큼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노무현은 유시민의 운명이다
[한겨레21 2006-01-10 09:18]    

[한겨레] 노무현 당선부터 지금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자 배역을 떠맡은 유시민

거친 입으로 적을 수없이 만든 그가 여의도로 돌아올 땐 다른 모습 보여줄까

이제 유시민이란 이름은 걷혔다. 지난 1월2일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이 알려지자,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한바탕 기싸움으로 번졌다. 당은 유시민의 입각을 반대했다. 집단 성명이 돌았다. 많은 의원들이 반대하니까 반대한다는 것이다. 뚜렷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예정된 청와대 만찬은 취소됐다. 지난해 대연정의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큰 흠결이 없는 같은 당 동료 의원의 입각을 반대한 초유의 일은 ‘유시민’이란 독특한 캐릭터가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유시민 현상이라고나 할까. 유시민 의원의 장관 내정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계파 간 노선과 방향의 차이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노무현 정부의 정국 운영에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그 현상을 유시민이란 인물을 중심에 놓고 들여다봤다. 편집자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저는 끝까지 지지할 뿐 아니라, 성공이건 실패건 같이할 겁니다.”(2005년 9월 <한겨레> 인터뷰 중)

유시민 의원은 대연정으로 한창 나라가 시끄러울 무렵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치적 ‘운명 공동체’를 다짐한다. 넉 달이 지난 1월4일 노 대통령도 유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한다고 발표한다. 노무현의 ‘참여호’에서 구령을 내지르는 유시민의 손에 노가 맡겨진 셈이다. 집권 2년을 남겨놓은 임기 후반의 시점이다. 유 의원의 입각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같은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 소속으로 유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김형주 의원은 “입각 제의 이야기도 어제오늘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오래된 일이다. 대통령이 아끼는 인재로 생각해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김완기 인사수석도 “대통령은 유 의원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을 해소하는 데 국정운영의 중점을 둘 예정인 노 대통령은 유 의원의 추진력을 필요로 했다. 유 시민의 노무현에 대한 충심과 유시민에 대한 노무현의 필요성은 둘의 운명 공동체를 순항시켜온 동력이다.

‘원칙과 가치’라는 뿌리에서 출발

많은 이들이 구중심처에 있는 노무현의 생각을 유시민을 통해서 읽는다. 유시민 또한 저잣거리에서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래서 유시민은 노무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둘은 닮았다. 솔직한 직설적 화법, 상황을 치고 나가는 승부사적 기질, 현상을 정반대의 시각에서 보는 것, 대립 전선 형성을 통한 국민의 이목 집중 등 비슷한 정치 스타일을 넘어서, 정치개혁 과제 등 철학까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인터뷰 전문가 지승호씨가 쓴 <유시민을 만나다>에서 유시민은 “노무현은 한마디로 스피리튜얼리스트(spiritualist·정신주의자)이다. 어떤 사안을 꼼꼼하게 따져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원칙과 가치에 대해 얘기한다”라고 노무현의 리더십을 분석했다.

유 의원은 2005년 ‘성년의 날’을 맞아 정보통신부 청사에서 열린 20대 청년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스스로를 “되도록이면 원칙적으로 어떤 가치의 실현을 위한 정치를 하지, 누군가를 위한 정치는 안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라고 밝힌다. 노·유의 정치철학은 ‘원칙과 가치’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노·유를 “영혼의 쌍둥이”라고 얘기했다.

“노무현과 유시민은 사랑하고 보호하는 관계다.” 김형주 의원은 노·유의 관계를 감성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보호는 주로 유 의원의 몫이었다. 노무현의 곤경이 바로 유 의원의 정치적 출발의 계기가 됐다. 유시민은 2002년 5월부터 지속적으로 노 후보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8월에, 그동안 신문과 인터넷에 써왔던 정치칼럼의 절필을 선언한다. “운동장 안에서 공공연하게 반칙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심판이 반칙하는 사람 편을 들고 있다. 중계석을 박차고 나와 운동장에 뛰어들어야 할 상황이다.”

그렇게 그는 ‘노무현 지키기’에 나섰다. “노무현 지키기는 국민 경선의 취지를 지키는 운동이었다.”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를 집필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리고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어 외곽에서 노무현을 지원한다. 노무현이 2002년 12월20일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밤 11시30분쯤 맨 먼저 찾은 곳은 개혁당, 맨 먼저 만난 인물이 바로 유시민이다. 참여정부 탄생의 1등 공신 가운데 한 명이 유시민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한국경제>가 발간한 <노무현 핵심 브레인>에서 선정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결정과 국정수행에 직·간접으로 도움을 줄 핵심 브레인’ 198명 가운데 한 명으로 그도 꼽혔다. 이후 열린우리당의 탄생과 탄핵, 보안법 폐지 투쟁에서 늘 노무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그가 서 있었다. 그래서 지나친 ‘노빠 옹호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일단 사령관이 ‘돌격 앞으로’ 하면 이 산이 아닌 것 같아도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변호했다. 비판 없음이 아니라 비판 유보라는 얘기인데, 그가 노무현을 향해 비수를 날린 기록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들고 나왔을 땐 ‘원맨쇼’를 하다시피 하면서 옹호했으나 좌절을 맛봐야 했다.

“생각 다르면 오장육부 후벼판다”

유시민은 자신의 처지를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인다. “어떡하냐. 배역이 그런데. 팔자다. 썩 내키지 않지만 남들이 안 하니까 할 수 없이 나라도 하는 거다…. 이 국면에서 필요하니까 하는 거다.” “노무현 혼자 집권했나. 돌 맞을 때 같이 맞아야지. 난들 잘못했다고 욕 뒤지게 먹는 대통령 옹호하는 게 즐겁겠나.” 좀더 진지한 언어로 표현할 때도 있다.

“나도 대통령과 동일한 사회적 맥락, 정치적 상황에 처해 있다.” 그는 지역구도의 틀을 깨고, 개혁 진영의 번영을 가져오는 것을 노무현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은 그와 노무현의 시대적 과제로 인식한다. 그래서 대연정에 대한 노무현의 생각은 “3김이 만든 앙시앵레짐을 날려버리자”는 유시민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열린우리당 창당 때 가졌던 시대의식의 연장이다.

숱한 오해(?)와 비판을 받는 호남 기득권론도 같은 논리다. 유 의원은 대선 뒤 “민주당이 (호남에서) 90~95% 받을 생각은 버리고 50~60% 받는 걸 감수하고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호남 기득권을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노무현이 제기한 “진성당원화, 공직 후보자의 국민참여 경선, 지구당 폐지” 등 정당개혁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계승한 것도 유시민이다. 그는 지금의 기간당원(진성당원)제를 손대선 곤란하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2005년 내내 열린우리당 내 다른 계파들과 피곤한 전투를 벌여야 했다.

유시민의 싸움의 대상은 한나라당 등 외부 세력이 아닌 당 내부가 우선이었던 점이 ‘반유’(반유시민 ) 세력의 확산을 가져왔다. ‘업보’라는 그의 말마따나 동료 의원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자신의 입각을 반대하는 상황까지 맞게 된다. 노무현이 당을 끌어안지 못하는 것(혹은 않거나)과 마찬가지로 유시민도 동료 의원들을 끌어안지 못했다.

유시민을 편한 이름으로 떠올리는 의원들은 거의 없다. “싸가지 없다”는 짧은 한마디가 유 의원의 꼬리표다. 그나마 “옳은 소리를 하는데”라는 수식어가 빠지진 않는다. 10·26 재선거 참패 뒤 문희상 의장의 퇴진을 요구한 우원식 의원에게 “기회주의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우 의원은 씁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우 의원은 “유 의원의 직선적인 스타일이 노 대통령과 비슷하다지만,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고, 한쪽으로 몰아 매도하는 것은 대통령과 달리 심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 의원에겐 ‘안티’(반대세력)가 많다. 한 의원은 “유시민은 생각이 다르면 오장육부를 후벼판다”며 “노무현은 표현이 거칠 뿐 가슴에 못을 박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은 다르다”고 말했다. ‘싸가지’로 상징되는 그의 언행은 그의 주장과 가치 등 내용을 퇴색시키는 자기 모순을 빚기도 하다. 오죽하면 김영춘 의원이 “어떻게 옳은 소리를 해도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하는 법을 배웠냐”고 했을까. 그도 ‘차가운’ 자신에 대해서 “업보다. 듣기 싫은 소리를 싸가지 없이 많이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저도 더 잘하면 좋겠는데 제 능력으로는 그거까지는 안 되더라”고 말한다. 지금은 거기까지가 유시민이다.

‘대화하는 지도력’ 닮았다고?

대선 후보 시절부터 조·중·동 등 보수언론으로부터 본격적인 비난과 훈계를 받아온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해찬 총리와도 비슷한 특징이지만, 유 의원은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생각이 다른 의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으로 두 사람과도 차별된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유시민처럼 안티가 심한 사람도 드물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지지층이 강하다는 말도 된다”고 말했다. ‘유빠’로 불리는 골수팬을 확보한 그의 지지층은 진보개혁 성향의 ‘노빠’와도 많이 겹친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뛰어난 정치인은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뛰어난 정치인은 반대를 즐기고, 위대한 정치인은 반대를 만들어내는 정치인”이라면서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분노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반대를 넘어서 경멸의 단계로 들어선 유시민은 대중적 리더십을 얻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유시민이 대중적 리더십을 얻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그가 “바리케이드 앞에서 화염병을 들던 심정”으로 정치를 시작한 것만은 틀림없다. 유시민 현상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당내 안티세력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감정적 안티반응이 부풀린 측면이 크다.


유시민은 자신이 당내에서 차지철이나 이기붕 취급을 당한 것에 억울해한다. 그는 “나는 측근도 아니고, 자원봉사자에 불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노 후보와 자신이 모두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한 뒤 “노무현은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화하는 지도력은 갈등이 있는 곳에 타협을 가져오고 분쟁과 증오가 있는 곳에 화해와 상호 이해를 가져온다”며 그런 노무현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가 노무현의 ‘대화하는 지도력’을 닮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아직 “노무현의 자원봉사자”로 존재한다. 그가 여의도를 떠난 이상, 당분간 정치인 유시민을 구경하기란 어렵게 됐다. 여의도를 떠나면서 앞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만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1~2년 뒤 다시 여의도로 돌아올 때 노무현의 그림자를 벗고 달라진 유시민식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 때까지 그가 ‘참여호’의 노를 잘 저어나갈 수 있을 지도 지켜볼 일이다.

“청와대는 당이 귀찮은가”

[찬반 인터뷰- 집단성명 주도한 이종걸 의원]

반대 의원 130명 넘을 것…당 정체성과 맞지 않고 전문성도 없다

지난 1월5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418호실에서 만난 이종걸 열린우리당 의원은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느라 피곤한 낯빛이었다. 그는 유시민 의원의 장관 내정 철회 등을 요구하는 의원 18명의 집단성명을 주도했다. 하지만 전날 청와대가 유시민 의원 장관 내정을 공식 발표하자, “끝난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유 의원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으며 다수가 그의 입각을 반대하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유시민 입각 문제가 당·청 관계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인사나 모든 것에서 ‘노심’(노무현의 속뜻)이나 ‘청심’(청와대의 속뜻)보다 ‘당심’(당의 뜻)이 중요하다. 당에 (유시민의 입각을) 찬성하는 의원들이 몇 명 있지만 대부분의 의원과 당원들은 반대한다. 국민들도 싫어한다.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이라는 게 독립적 인사권이란 뜻으로 들리는데, 그건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얘기다. 헌법 취지에 맞게 행사해야 한다. 총리한테 임명 제청권을 준 것도 고유한 인사권만은 아니라는 것을 (노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반대 의원들은 소수에 불과한가.

=속으론 반대하지만 반대 서명을 하기는 좀 곤란한 의원들이 많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협조를 받아야 하니까, 속으로 반대하는 사람을 다 합하면 144명의 의원 가운데 130명은 넘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반대의 논리 가운데 전문성이나 도덕성이 제기되는 것 같지 않던데.

=(유 의원은) 당의 정체성과도 안 맞는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정강 정책이 다를 게 없다거나 연정론에서도 보면 한나라당과 손잡아야 한다는 원색적인 얘기를 하고도, 따지면 ‘무슨 문제냐’고 걷잡을 수 없는 얘기들을 한다. 전문가도 아니다. 30~40년 동안 보건 쪽에서 의사로 있었던 것도, 복지 쪽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발탁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력도 없다.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국회 관계를 잘 풀어가는 것도 장관으로서 중요한 능력이다. 앞으로 국회 보건복지위 입법을 한번 생각해봐라,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게 명약관화하다.

계파의 이해에 따른 반발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당과 당원에 대한 충심,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을 계파 이익으로 윤색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누구겠는가. 그 사람들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음모론적 시각이다.

유시민을 매개로 당·청 갈등이 깊어지는 형국이다.

=지방선거 전 대국민 평가의 장을 앞둔 절체절명의 시기다. 대통령이 뛰는 것도, ‘청’이 뛰는 것도, 정부가 뛰는 것도 아니다. 바로 당이 평가받는 것이다. 당에 훼손되는 일은 서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당을 있어도 없는 것으로 봤다. 또 있어도 불편한 걸림돌이나 귀찮은 존재라는 것이다. 정부와 청와대의 정책적 입지를 강화하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토대를 보여준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당 의장을 장관으로 발표하고 …. 황당한 일이다.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 중심의 사고를 해야 한다. 선거에서 지고 이기는 것도 당이고, 권력을 만드는 것도 또 잃는 것도 당이라는 분명한 의지를 청와대가 보여줘야 한다. 그게 없으면 균형적인 당·청 관계는 앞으로 어렵다. 어린아이 투정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유시민의 입각은 되돌릴 수 없는 것 아닌가.

=유시민이 잘못하면 국민들이 평가하겠지. 우리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결정을 이미 했으니…. 인사청문회 거쳐 소정의 절차를 통과하면 도와야지.

반대파들이 과도하게 반응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치력을 가진 장관을 원하거나 그의 정치력의 성장을 돕겠다고 (대통령이) 생각할 수 있다. 지방선거를 잘 치른 다음에 해도 된다. 그런데 이건 뭔가 앞길이 안 보이는 것을 우리한테 던져버린 것 같다.

유시민과는 개인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가.

=원수진 것 없다. 그렇게 비쳐질까봐 이번에 나서지 못한 사람도 많다.



“반대하는 논리가 어이없다”

[찬반 인터뷰_ 참정연 회장 이광철 의원]

누구보다 전문성 갖춰…싸움꾼으로 써먹다가 싸움꾼이라 안된다니

유시민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12명이 속한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의 회장을 맡은 이광철 의원은 유 의원의 입각을 반대하는 의원들이 “오히려 당·청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지메’(따돌림)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참정연 차원에서 얘기를 안 하기로 했지만, 비본질적인 이유가 본질적인 이유인 양 왜곡되고 있어서 개인 이광철로서 얘기한다고 밝혔다.

유시민의 입각을 반대하는 의원들의 논리가 문제가 있다고 보던데.

=참여정부 후반 국정 운영의 주요 과제로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나 양극화 해소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유 의원은 전문성 면에서 누구보다 적임자다. 그런데도 합리적인 근거가 아닌 비상식적인 이유로 누구는 안 된다며 반대하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없다. 업무수행 능력이나 자질, 추진력, 도덕성의 문제를 제기해야 일리가 있지 않나.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으로 대통령의 몫이다. 자기 몫도 모르면서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반대의 수준이 단순한 불평불만을 넘어서 지나치다고 본다. 이건 인기투표로 장관을 선발하자는 식이다.

유시민의 입각으로 당·청 관계가 악화되는 것 같다.

=유시민 의원 때문이 아니라, 입각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당·청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여론재판이나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다”로 상징될 만큼 유시민에 대한 인간적 불신이 큰 것 같다.

=그런 반대 논리는 저급한 수준이다. 비열하다. 잘할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비본질적인 문제를 내세워 반대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다.

계파간 노선의 차이에 따른 견제 논리도 작동한 것 같다.

=유 의원은 지난해 4월 전당대회에서 당원의 지지를 받고 선택된 지도부 구성원의 사람이다. 소수가 아니다. 의견이 같지 않더라도 포용하고 가야지, 입고 있는 옷이 다르거나 인상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이렇게 해선 안 된다.

당의 정강이나 정책, 운영 방식에서 지향하는 가치가 다양하다.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원인이 돼서 유 의원의 내정에 반발한다면 그건 더욱 옳지 않다. 의견이 다르다고 따돌리는 것은 안 된다. (유시민은) 당의 소중한 색깔이자 의견이다.

극단적인 유시민 의원의 입각으로 당 지지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시민은 용어 선택과 상황 판단을 잘하는 것이 장기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잘 표현한다. 유시민이 당의 문제나 전망에 대해서 아픈 얘기를 했다면 왜 아픈지 검토해봐야 한다. 유시민은 열린우리당 내 필요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유시민 없는 열린우리당, 개혁성 없는 열린우리당을 한번 상상해봐라. 유 의원을 좌파나 극좌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됐다. 민주노동당에서 보면 웃을 일이다. 유 의원은 좌파적 성향을 드러낸 적이 없다. 굉장히 중도적 입장에서 고민한다. 이건 좌쪽 문제가 아니다. 정확히 짚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된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가슴이 따뜻하지 않다는 게 무슨 (반대의) 이유가 되는가. 오히려 차가운 가슴이 필요한 것 아니냐. 너무 차가운 곳에 갖다놔 가슴이 차가운 것 아니냐.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게 왜 유시민의 발언을 탓할 일인가.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자유스럽게 발언을 못한다. 그동안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 훼손되니 날카롭게 지적할 수밖에 없었고, 당의 운명이나 생존을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다.

유시민의 당내 공헌도가 높다고 보는 것인가.

=초창기 당이 어려울 때 저격수로 나서지 않았는가. 헌신적으로 당을 대변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단어를 구사하지 않았나. 너무나 정확해서 상대 당이 미워했던 것 아니냐. 그런데 실컷 싸움꾼으로 내놨다가 넌 싸움꾼이니까 이젠 안 된다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핫이슈] 유시민은 좌파가 아니다?
[주간조선 2006-01-17 14:20]
‘여의도의 문제아’ 유시민
시장경제 지지하는 자칭 자유주의자... 진보진영선 `무늬만 진보인 보수주의자` 평가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에 대해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그가 추진할 정책이다. 청와대가 유시민 의원이 적임자라고 평가한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핫이슈를 비롯, 우리 사회의 최대 난제로 떠오르고 있는 양극화 문제 등 그가 복지행정의 주무 장관으로서 떠맡아야할 과제는 적지 않다. 그의 스타일과 인간성에 대한 논란을 떠나 진짜 중요한 것은 그가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장관 유시민’이 추진할 정책을 우려섞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의 정치, 이념 성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시민 의원은 좌파 내지 사회민주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가볍다’ ‘튄다’라는 부정적 얘기까지 따라다닌다. 복잡한 요즘의 복지정책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없지만 ‘좌파 복지부 장관’을 우려하는 사람들이라면 ‘빈곤층에 대한 과격한 퍼주기 정책’을 지레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장관 임명 후 나오는 정치권 반응은 이런 예상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스스로 좌파 정당이라고 자부하는 민주노동당에서 그가 복지정책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유 의원의 복지부 장관 내정 사실이 알려진 후 “시장주의자인 유 의원이 국민복지 증진과 국민의료서비스 향상에 노력해야 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되는 것을 반대한다”며 유 의원의 ‘개혁성’에 대한 회의를 나타냈다. 또 평등사회를 위한 민주의료연합 등 진보적인 보건의료 시민단체도 성명에서 “유 의원의 지금까지 정치 행보가 복지부 장관을 맡을 만큼 개혁적이지 못했으며 일관된 정치적 견해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비판대로 유 의원이 ‘개혁적이지 않은 시장주의자’라면 그가 좌파라는 평가는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

실제 유 의원은 스스로 자신을 시장주의자로 규정해왔다. 그렇다면 그는 우파 내지는 보수주의자에 속할 것이다. 그가 쓴 경제 관련 저서들을 보면,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시장에 대한 신뢰가 묻어난다. 예컨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서 그는 “시장경제가 숱한 결함을 안고 있는 질서임에는 분명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나은 체제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적 기본질서”라고 썼다. 그는 좌파들이 꿈꾸는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에 대해 “이기적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진보진영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그는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서 이렇게 썼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확대에 대한 사회 일각의 공포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자유무역이 사회적 혼란과 불평등을 몰고 오는 것은 리카도의 모델에 따르면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유무역을 거부하는 것은, 바둑으로 치면 귀에서 두 집 내고 사느라고 중앙을 다 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이쯤 되면 그는 분명 좌파는 아니고, 더 나아가 좌파까지 포함하는 통칭 진보진영과도 확실히 다르다. 사실 그는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해왔다. 심지어 진보진영 인사 중에서는 그에게 ‘보수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웹진 서프라이즈에서 ‘지승호의 인터뷰 정치’를 게재하고 있는 지승호씨는 자신의 저서 ‘유시민을 만나다’에서 유시민의 이념 성향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때는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믿었는데 지나고 보니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자유주의에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환경주의, 여성주의 등 다른 어떤 ‘주의’보다 자유주의가 자신의 취향이나 세계관과 잘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지씨는 “자신은 보수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그 사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그와 연대해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한다”고 유시민을 대변했다.

유시민 의원의 누이인 유시춘씨(국가인권위 상임위원)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유시민을 만나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유시민은 철저한 자유주의자예요. ‘울트라 수퍼 리버럴리스트’예요. 내가 한번은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때 이상하게 장발을 하고 다녀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했더니, ‘지 머리, 지가 하는데, 왜 그래요? 누나. 걔 머리가 누나한테 해주는 거 있어요? 지 머리 가지고 지가 장난하는데, 왜 그래요?’ 하더라고요.”

유시민 의원이 국회에 첫 등원을 하면서 예의 ‘백바지 파동’을 일으킨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는 점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오히려 백바지를 갖고 큰일이 난 것처럼 난리를 치는 이 땅의 ‘엄숙주의자’들을 그가 코미디라고 조롱할 수 있을 만큼 그는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일 수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이념 지평을 유아기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 극우만 있고 진정한 보수는 없다고 말해왔다. 그는 “극우는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을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지만 진정한 보수는 경쟁자로 생각한다. 또 극우는 사상적 목표를 추구하면서 국가적 폭력이나 사적 폭력을 사용하지만 진정한 보수는 경쟁자의 말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리버럴리스트이지만 극우와 자유주의가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천박한 우리 사회의 이념 지평 때문에 자신이 진보로 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했다.

“나는 소셜 리버럴리스트”

그는 자신을 규정하는 자유주의의 근거와 실체에 대해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 시장경제와 조화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시스템으로서의 다당제와 보통선거를 기본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분할될 수 없는 자유 등 세 가지를 꼽아 왔다. 여기에다 그는 정치권에 들어가 개혁당 활동 등을 하면서 ‘소셜(social)’이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그는 ‘유시민을 만나다’라는 책에서 “개혁당 당원들이나 지도부의 성향을 ‘소셜 리버럴’이라고 생각한다”며 “리버럴한 기초 위에 소셜한 해법을 추구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유럽의 제3의 길과 비슷한 해법이며, 리버럴한 부분은 없고 오직 소셜만 있는 민노당과는 차이가 나는 길이라는 해석이다.

정책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소셜 리버럴’에 가장 맞아떨어지는 자리가 어쩌면 복지부 장관일지 모른다. 그는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라는 책에서 인간의 인지적·심리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사회보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시장과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은 선이고 국가는 악이라고 보는 신자유주의 선동가들은 사회보험을 개인의 선택 자유에 대한 침해이며 보험시장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개입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격은 개인의 합리성과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일종의 광신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했다.

노사모 대표 노혜경씨도 지난 1월 5일 노사모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 ‘소셜 리버럴리스트’ 유시민이야말로 복지부 장관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폈다. 그는 “유시민은 아주 오래 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유명한 경구로 조국이라는 영역에 나를 들이밀었다”면서 “슬픔과 노여움의 전문가답게 그는 언제나 부당한 것에 분노한다”며 “그것이 공동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란 것을 저 경구는 말해주고 있다”고 썼다.

이상은 유시민 의원 본인과 그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과 평가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가 장관으로서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은 남는다. 그가 앞으로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완고한 관료들과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논리와 이념을 떠나 다시 그의 인간성과 스타일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유시민은 똑똑하다. 하지만 똑똑한 게 다 정치는 아니다. 톨레랑스(관용)를 중시한다는 자칭 자유주의자가 가장 독선적 인물로 비치는 역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는 앞으로 정치를 많이 배워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장열 주간조선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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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시비돌이 > 묵공새인님의 리뷰
7인 7색 - 일곱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곱 개의 세상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

Short Summary

한국 사회에서 누구보다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는 김규항, 노회찬, 박노자, 유시민, 이우일, 진중권, 하종강을 인터뷰한 지승호의 글이다. 이들이 각기 다른 신념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고민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와 계급적 각성의 문제에서부터 진보와 개혁의 차이, 이라크전과 미국의 헤게모니론, 동북아균형자론, 가혹한 군대 문화, 일제의 권위주의적 유산,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구상, 재외동포법, X파일과 삼성공화국, 왜곡되고 뒤틀린 노동 운동에 대한 인식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쟁점을 바라보는 이들 7인의 시각을 통해 오늘 이 땅에 사는 독립된 주체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한다.

 

차례

진정한 아나키스트 박노자 - 나는 모든 지배와 권위에 반대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자 이우일 - 다 싫어, 다 싫어, 다 싫어, 이건 좋아!

낭만주의를 포기한 낭만주의자 유시민 - 정치는 왜 꿀꿀해야 하지?

광대의 철학자 진중권 - 나는 고상함 대신 장바닥에서 싸움질을 마다하지 않겠다

유연한 사회주의자 노회찬 - 대중의 호감을 위하여 나의 정체를 숨기지 않겠다

노동자 세상을 꿈꾸는 인도주의자 하종강 - 노동자는 선이고 노동 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

타인을 부끄럽게 하는 좌파 김규항 -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7인 7색

지승호 지음

북라인 / 2005년 11월 / 382쪽 / 12,800원

 

 

진정한 아나키스트 박노자 - 나는 모든 지배와 권위에 반대한다

 

아나키즘은 결코 극단적인 폭력주의나 반도덕주의 따위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지배와 권위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자치공동체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박노자 같은 아나키스트도 드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와 아내마저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하느냐는 질문에도 별것은 없다며 개미를 밟지 마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고경태 한겨레 편집장은 박노자 교수에 대해 한국 국적을 가진 지식인 중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이 말에 한국 국적을 가진 지식인 중에서는 말이죠?라면서 웃어 넘겼지만, 못내 섭섭한 것 같기도 했다(그는 2001년 한국으로 귀화한 러시아인이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지적하고,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중의 하나인 그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생뚱맞은 구석이 있다. 아니, 나는 그가 우주인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고, 할 게 공부밖에 뭐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 예의 바르지만 단호한 사람이 바로 박노자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지승호 : 우리 사회가 아직도 100년 전 서구에서 주장했던 사회진화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박노자 :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은 사회진화론을 완전히 밑바탕에 깔고 있다. 경쟁력, 경쟁성, 경쟁에 의한 도태 같은 개념에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어서, 경쟁을 막아보려 한다거나 약자를 보호하려고 하면 상당히 중도적인 정권이라도 <월스트리트저널>의 엄청난 분노를 산다. 또 이 같은 극우파는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온건파의 보루라고 할 만한 <이코노미스트> 같은 주간지는, 볼리비아에서 인디언 운동의 지도자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높아지는 데 대해 이를 피플 파워가 아닌 mob rule, 즉 우민의 통치라고 폄하했다. 즉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6.25전쟁과 절대 빈곤을 거친 사회라는 특별한 요소가 있어서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생존을 구해야 하는 이러한 경험이 경쟁심을 무의식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입시전쟁, 취업전쟁, 수출전쟁 등 전쟁이나 태극전사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특이한 현상도 이러한 전쟁 속에서 만들어진 한국이라는 국민국가를 드러내는 한 예라고 본다. 또 하나는 미국과는 비슷하고 유럽과는 다른 점인데,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온건 자유주의자나, 신자유주의에 대단히 비판적이고 이를 막으려는 좌파 세력이 아직 제대로 정치세력화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다. 지식인 사회에는 이들 세력이 많이 있는 반면, 이들의 정치화는 어렵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다 특히 언론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독점이 심하다.

 

미국 같은 경우도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파시스트적인 신자유주의와 <뉴욕타임즈> 같은 온건한 신자유주의, <가디언> 같은 전통적 자유주의가 있는 등 그런 대로 스펙트럼이 넓은데 한국은 우파가 신자유주의를 마치 신성불가침한 신조로 받드는 것 같아 좀 씁쓸하다. 볼리비아에서 인디언 운동가들이 정국을 장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미국 언론은 일제히 이를 폄하하고 압박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몰두한 미 제국주의는 남미라는 뒷마당을 보살필 만한 군사력이 없고 실제로 유전 지역의 재식민화에 모든 자원을 집중시키다 보니까 남미가 독립되어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결과적으로 이라크 독립군이 미국을 상대로 거의 필사적인 독립 전쟁을 전개하는 덕분에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 민중들이 그 덕을 보고 있고 남미 민중이 지금처럼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마약이다

지승호 : 한국 민족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조차 월드컵에 대해서는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긍지를 심어 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박노자 : 한국인들에게 특히 미국이나 서구 세력에 대한 집단적 열등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나 또한 우리가 열등감을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문제는 미제에 대한 현실적인 종속관계의 청산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미국 군대가 분명 이곳에 있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침략을 위협 삼아 남한을 계속 짓누를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은 열등감 극복의 기본적, 현실적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라크 쪽에 우리 군대를 보낸 것 또한 종속 관계가 전혀 청산되지 않은 것이고, 또 동북아 균형자론이 나오자마자 극우 언론들이 딴지를 거는 상황에 월드컵 같은 현실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행사를 통해 서푼짜리 자존심을 세우는 게 진짜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승호 : 민족주의는 마약이다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박노자 : 북한 또한 우리 민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쟁이라는 폭력을 방지하는 의미에서, 또는 폭력적인 대치 상황을 완화하는 의미에서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꾀하는 것이 좋고, 점차적으로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당연한 것이고 또 이것은 민족주의 없이도 할 수 있는 얘기이다. 다른 얘기로 한국 재벌이 북한에 들어가서 공장을 세우고 북한 노동자들에게 한 달에 60달러도 안 되는 돈을 주면서 노동 강도를 높여 그들을 착취하면서 남한 시장을 위해 물건을 만들게 한다면, 우리가 민족의 이름으로 그 일을 덮어야 하나? 민족주의 담론으로서 계급적 착취를 한다던가, 또는 남성이 군대에 감으로써 여성을 지킨다는 대다수 한국의 예비역 남성들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남성 우월의 이데올로기를 민족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한국은 현대판 신분제 사회로 가고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성장기가 끝나고,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재편되어 가면서 계급 구조가 거의 공고화되었어요. 지금 계급의 80~90퍼센트는 세습된 것입니다. 상층 계급은 물론이고 중산 계급과 하층 계급 사이에서도 거의 넘어가기 어려운 경계선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이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운영의 당연한 논리이기도 합니다. 어느 자본주의 국가든 성장기가 끝나면 계급적 경계성이 뚜렷해지는데, 여기에다 한국식의 종속 자본주의, 소수 재벌 위주의 종속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가 노골화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민중이 그 모순점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여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지금 한국은 하층민이 일어설 수 없는, 이미 계급의 한계성을 넘을 수 없는 현대판 신분제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분노를 자본주의에 대해 행하지 않고, 박정희 시대라는 성장 시대에 대한 향수로 나아간다면, 한국 극우 세력의 영구 집권의 정치적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다름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자 이우일 - 다 싫어, 다 싫어, 다 싫어, 이건 좋아!

 

이우일 만화의 느낌은, 말하자면 주위의 여백을 향해 다 싫어, 다 싫어, 다 싫어, 이건 좋아! 이렇게 외치는 느낌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남들과는 다른 인디적 취향의 정서에 맞는 무언가를 찾아 이건 좋아라고 보여 주는 식이다. 그처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여유로워질 것이다.

 

나에게는 창작 자체가 컨셉이다

지승호 : 아무리 운동가는 아니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대중문화의 슈퍼스타는 너무 간단하게 전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우일 : 나는 그런 게 너무 싫다. 가수이건 소설가나 음악가, 만화가이건 누구한테 뭘 가르친다거나 계도를 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무조건 반대다. 어떤 사람은 평생 일정한 컨셉을 가지고 작업하지만, 나에게는 창작 자체가 컨셉이다. 나는 내 만화에서도 그렇고, 어떤 창작물이든 간에 어떤 주장을 한다거나, 어떤 계도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만화도 열 장을 그려 준 적이 있는데 표현수위 때문에 그 중 두 장이 잘렸다. 나는 그 이유를 그 기관이 너무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에 대해서 계도하겠다는 목적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창작성을 완벽하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다 맞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그냥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싫어하고 항상 균형을 잘 잡자는 게 내 목표이다. 창작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동아일보 연재를 할 수도 있고 사랑에 대한 책을 낼 수도 있고, 딴지일보에 연재를 할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두고 당신은 굉장한 이슈가 있는 사람 같은데, 이쪽으로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AFKN을 보며 인디와 안티를 배웠다

지승호 : 어린 시절 AFKN으로 본 성인 영화들이 나에게 뭔가를 남겼다고 표현하셨는데 그게 어떤 건가?

이우일 : 어릴 때 더스틴 호프만이 결혼식장에서 여자친구를 빼앗아 십자가를 휘두르면서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체제에 대한 도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본 것 같았다. 그 순간 , 저게 가능하구나 하는 걸 느끼는 거다. 개인의 힘, 소수의 힘이 거대한 힘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 인디와 안티를 배웠다고 할까? 요즘 네티즌 댓글이나 인터넷을 보다 보면 젊은 사람들이 더 꽉 막혀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억압되어 있는 사람은 분노가 쌓여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덕군자에다 나이든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직되어 있고, 꼰대소리나 하고, 아주 민족주의적이고, 정서적으로는 파시즘이고 하는 걸 보고 깜짝깜짝 놀란다. 인터넷에서 자기주장을 펴는 것을 보면 이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로 클까 하고 우려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포지션을 차지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결국 눈에 띄고 자기가 눈에 띄는 게 좋아서 계속한다. 그런 것이 사회적으로는 안 좋은 것 같다.

 

 

낭만주의를 포기한 낭만주의자 유시민 - 정치는 왜 꿀꿀해야 하지?

 

유시민 의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한 편에서는 너무 튀려고 하고 개혁을 독점하려고 한다고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비열한 보수 정치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유시민 자신은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나는 온건 진보 혹은 중도 좌파적인 성향의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를 현실에 기반을 둔 이상주의자로 평가한다. 말 그대로 원칙이 있으니까 타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수많은 선택을 보면서 자신의 위치와 시각에서 유시민을 보고, 판단하고, 비판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이 일찌감치 중요한 몸이 되어 버리면 발전할 희망이 없다. 그가 더 이상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청년의 발전이, 흔히 일찌감치 늙어 버리고 일찌감치 중요해진 사람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치판에서 너무 일찍 중요한 몸이 되어서 발전의 가능성이 없는 수많은 정치인들을 보고 있다. 그들 틈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치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인물로 유시민 의원을 지켜보고 있다.

 

꿀꿀한 정치, 좀 쿨하게 못하나

지승호 : 패션지에서 인터뷰 요청을 하는 등 주변에서 보면 귀엽다고 이야기하는 여자 분들이 많은데, 정치인으로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유시민 : 내가 좀 철이 안 들어 보이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정치가 너무 꿀꿀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쿨하게 바꾸고 싶다. 정치 쪽은 문화 풍토나 대화 방법도 좀 꿀꿀한데 쿨하게 합시다라고 하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에게는 국회의원이 고달픈 일이다. 평소에 다소 신랄하게 국회의원 한 번 했으면 됐지, 잘못돼서 당 망하면 배지 떼면 되지라고 말하는 것이, 사람들 눈에는 잘난 척 하는 걸로 보이는 것 같다. 기자 관리를 안 하는 것도 언론을 싫어하고 혼자 깨끗한 척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약간 데카당한 내 태도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보통의 정치인처럼 꾸준히 정치해서 책임 있는 자리로 올라갈 계획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장·단점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존재감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박찬호 선수가 전성기 때처럼 못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한테 주어진 한계, 자기의 조건, 자기의 능력,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어떨 때는 깨지기도 하고 밟히기도 하다가, 또 어떨 때는 그나마 잘하면서 그렇게 한 선수가 하는 것처럼 권력을 다투는 정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니까 내가 너무 낭만적이라는 거다.

 

나는 중도 좌파 성향의 소셜 리버럴리스트다

지승호 : 당내에서는 너무 튀려고 한다, 개혁을 독점하려고 한다고 하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너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냐고 하던데.

유시민 : 나 스스로 보수 정치인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온건 진보 혹은 중도 좌파적인 성향의 정치인이며, 경제 정책 분야에서는 다소 보수적이고,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다소 진보적인, 그렇게 결합되어 있는 소셜 리버럴이다.

 

지승호 : 민노당과는 연대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발언을 해서 민노당 측의 반발을 샀었는데.

유시민 : 이를테면, 국민연금법에 대해 말하다 보면 민노당의 주장이 열이면 열 우리당하고 다른데 그것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그건 우리 법안이 아니라 민노당 법안이 되는 거다. 그렇지만 두세 가지 정도라도 우리 틀을 본질적으로 바꾸지 않는 선에서라면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는 건데 아주 핵심적인 것을 내놓지 않으면 못하겠다고 한나라당 퇴장할 때 같이 나가버리니까, 그게 답답한 거다. 그러느니 본질적인 틀은 놔두고 거버넌스만 몇 개 바꿔달라고 하는 한나라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차라리 낫다는 의미이다. 연대의 정치적 비용이란 우리 것을 얼마나 많이 바꿔야 통과되느냐 하는 것이다. 민노당 한 사람의 합의를 끌어내서 강행 통과를 시키려면 엄청난 손질이 필요한데, 한나라당과는 몇 가지만 손보면 민노당이 반대해도 합의해서 통과시킬 수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게 낫다는 거다. 많은 부분의 각론 영역에서 부딪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한 건데 정체성을 고백했다느니 하는 것은 큰 텍스트를 보지 않고 하는 말 같다.

 

광대의 철학자 진중권 - 나는 고상함 대신 장바닥에서 싸움질을 마다하지 않겠다

 

진중권은 욕을 먹으면서도 인터넷에서 일개(?) 네티즌과 쪽글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것은 지식인의 권위를 해체하는데 일부분 공헌하기도 했다. 현직 교수이자, 공중파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진중권은... 어쩌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진중권을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그의 고매한 인격이나 높은 학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스스로도 고상한 철학 대신 장바닥에서 싸움질을 마다하지 않는 광대의 철학을 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사안에 대해서 발언하고, 그 발언은 대체로 정확하고 신랄하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적들에 대해서도 그는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행동만을 씹어 주고, 그것으로 잊어버린다. 그의 이야기가 때로는 불편하지만, 그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화두를 던지는 지식인임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당파에 따라 판단한다

지승호 : 공중파 방송 라디오 진행을 맡은 이후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이 어려워졌다고 했는데, 전여옥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 발언을 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천박함이고 대변인이 됐다고 입으로 대변을 보는 해괴한 분이라고 맹비난 하셨는데.

진중권 : 그건 사안으로 봐야하고 사안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한다. 대졸 대통령 발언 같은 것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하고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반칙이고, 어떤 면에서는 범죄이기까지 한 발언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당파적인 것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관점은 누가 잘하든 못하든, 그가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잘하면 칭찬하는 것이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는 쪽이다. 개혁 세력의 위기나 약자를 편드는 정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는 균형추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욕먹을 만큼 잘못한 것이 없을 때에는 균형추를 맞추는 면에서 발언을 한다.

 

민주당의 지역주의 코드는 호남에 대한 모독이다

지승호 : 요즘 강준만 교수의 정치적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중권 : 짜증난다. 나는 민주당에게 실례지만, 여러분들은 왜 존재하세요?라고 묻고 싶다. 딱 보면 지역주의 코드이다. 지난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했을 때도 노무현이 마술이라도 걸어서 염증을 일으킨 것과 같이 얘기하는데 그렇게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역민들을 선동하는 것은 호남을 모독하는 것이다.

 

지승호 : 그 부분은 분당을 통해서 너무 많은 정치적 비용을 치렀고 그런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라는 이야기 같다. 또 민주당을 구악으로 몰면서 지금처럼 혼란한 상황을 만들어서 나아진 게 뭐냐?라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진중권 : 누가 의도해서 지금처럼 혼란한 상황을 만든 적은 없다. 이건 탄핵 때 국민이 만들어 준 구도이고, 민주당이 해 온 행태가 있는데 당시에 당을 나오지 말았어야 하느냐 하면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노 대통령과 우리당의 창당 주역인 천신정이 배신자라는 시각도 있는데, 배신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한심한가? 그게 영남 지역주의와 무슨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강준만 교수에게 대통령과 우리당에 대한 원한에서 벗어나서 생산적인 글쓰기를 했으면 한다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 대통령을 비판하려면 어떤 부분의 어떤 정책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데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는 그게 아니라 총평이다. 그에 못지않게 나도 노대통령에 대해 많이 비판했지만, 내가 파병 문제나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딱지를 붙이는 식이다. 유시민 의원을 비판할 때도 특정한 행동, 언급을 비판하는데 강준만 교수는 최후의 심판을 하는 식이고 거기에는 근거도 없다.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와 실제 사람들의 정서는 다르다

저는 연정 구상은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한나라당 압박용 카드라고 봐요. 그런데 하다 만 것들이 문제인 것 같아요. 이번에도 공소 시효 배제 발언을 했잖아요. 던져놓고 자신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왜 다음날 뒤집느냔 말이에요. 지들끼리 싸우게 내버려두고 가만히만 있으면 될 것을. 늘 그랬잖아요. 저는 뭘 좀 하려다가 관두는 게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봐요. 사람이 점점 보수적으로 가는데, 그 사람이 아무리 보수적으로 가도 보수층은 절대로 찍을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색깔을 드러내면서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잖아요. 이번에 청와대에서 개혁적인 인사들을 교체하는 것도 그 코드잖아요. 보수층을 잡아 보자는 것 같은데, 소용이 하나도 없는 거거든요. 그리고 언론에 뜨는 것은 리얼리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중동에 아무리 떠봤자 지들 매트릭스라는 거거든요. 청와대와 우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데, 그러면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올랐느냐는 거예요. 안 올랐단 말이죠. 국민들은 떨어져서 관망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해요. 미디어만 보면 대통령은 탄핵 당해 마땅하잖아요. 그 세계 속에서는. 그런데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잖아요.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와 실제 사람들의 정서는 달라요. 이제는 그걸 알고 의연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명박 시장이 대통령 되면 전국이 공사판 될까 두렵다

지승호 : 청계천 복원 공사를 강하게 비판했었는데, 아직도 개발 논리가 먹혀 들어가는 건지 많은 사람들이 해놓으니까 좋네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중권 : 그건 복원이 아니다.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디즈니랜드 만든 거 아닌가? 이명박 시장 스타일이 그렇다. 전시 행정을 주로 하는데, 똑같이 전시용 행정을 구사하더라도 손학규 지사가 하는 개념 있는 그것, 즉 IT 과학이 중요하다든지, 외자 유치를 한다든지, 문화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래서 이명박 시장이 1970년대 수준이라고 한다면, 손학규 지사는 1990년대 수준은 되지 않나 싶다.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로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이 가장 가까운 것 같다고 하는데 누가 후보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박근혜 대표는 우리당으로서는 쉬운 카드 같고, 이명박 시장은 강적으로 보이는데, 그가 21세기에 적합한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의 개발 논리에 매몰된 유권자들이 많다는 것이 강점이지만, 그것 가지고 얼마나 가겠는가? 국가의 품격이 떨어지지 않을까?

 

지식인이 지사인 시대는 지났다

지승호 : 에서 리영희 선생님과 같이 출연하셨는데?

진중권 : 시대의 차이 같은 것은 느꼈지만 훌륭한 분이다. 예전에 지식인이 지사인 시대는 지났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탄압을 하면 닭의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데이 하고 외치며 끌려가면 존경받을 수라도 있었지만 요즘엔 탄압을 안 하니(웃음) 리영희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예전보다 상황이 쉬워졌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머리는 좀더 복잡해진 것 같다. 몸은 편해도 머리는 더 괴로운 시대고, 지식인이 엔터테인먼트 역할까지 해야 하는 시대다. 또 예전에는 지식인이 민중을 대신해서 이야기하는 시대였는데, 이제는 민중도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고, 지식인은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을 더 해야 하는 시대이다.

 

지승호 : 대중이 받아들이는 정보가 다양해지면서 지식인의 역할이 축소된 것 같은 느낌이다.

진중권 : 지식인은 죽었다. 멸종할 때가 된 거다. 이제는 지사형이 아니고 엔터테인먼트형이며, 이것은 존경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대중이 문맹자도 아닌 마당에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네티즌 사이의 하나의 목소리에 불과함에도 거기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계급장 떼고 들어가 그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쪽글로 싸우는 것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나를 욕하는 사람들도 나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으로 느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미디어에서 칭찬 받는 거고, 그 다음으로 좋은 건 미디어에서 욕하는 것이고, 최악은 미디어에서 생까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나에게 저주를 퍼붓고 악담을 하지만, 나에 대한 애정이라고 본다. 열심히 내 글을 읽어 주고 저 새끼가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까 기대하니까.

 

유연한 사회주의자 노회찬 - 대중의 호감을 위하여 나의 정체를 숨기지 않겠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만큼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어지는 정치인은 드물다. 물론 아직 위험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유머 감각과 여유 있고 솔직한 태도가 그를 그렇게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소설가 공지영이 한때 그의 얼굴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때가 있었다. 어떤 연재소설보다 흥미롭고 유쾌했다. 이렇게 똑똑하고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이렇게 올바른 말을 할까 싶어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다음 말을 기다리는 재미에 그가 나오는 모든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보고는 했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이 아니라, 허례와 가식과 입에 발린 말일랑 다 치우고 꼭 해야 할 말을 꼭 해야 할 타임에서 그것도 그렇게 속 시원하게 하는 그 통쾌함이라니!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는 한때 많은 국민에게 청량음료와 같은 시원한 존재였다.

 

이런 그에 대해 황광우 전 민노당 중앙연수원장은 사람들은 노 의원의 이력에서 붉은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렇다. 노 의원은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 자랑해도 좋을 정통 사회주의자다. 그는 소외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애타게 갈구하며 살아온 사람이며 입으로만 사회주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정녕 사회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실천했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 지금 그는 21세기 사회주의를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회주의자, 한국에서는 빨갱이란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대중의 지지나 호감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겠다는 그는 당당하게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밝히고, 주은래와 호치민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민노당을 10석으로만 보지 마라

지승호 : 2007년 대통령 선거가 민노당의 운명을 좌우할 분수령일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노회찬 : 2006, 7, 8년에 연달아 선거가 있는데 민노당의 운명은 2008년 총선에서 결정될 것이다. 총선이 국회 의석을 결정짓는데, 2007년 대선에서 민노당이 어떻게 선전하느냐에 따라 18대 의석수가 결정될 수 있다고 본다. 최소 300만~500만 표의 득표를 할 수 있는 잠재적인 역량이 있다고 보고, 그런 구체적인 득표 수치보다도 2007년 대선이 결국 우리 정치가 장기적으로 보수와 진보 양대 축으로 가는 데서 보수 진영의 새로운 세력인 현 정부와 우리당, 보수 진영의 구기득권이자 낡은 세력인 한나라당 간의 최종적인 각축전이 될 것이라고 본다. 거기서의 승자는 계속 승자가 되고 패자는 정치 무대에서 도태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07년 대선에서 민노당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진보 세력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경우, 이후의 국면에서 양대 축의 한 축으로서 뿌리를 충분히 내릴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2008년 총선의 목표인 제 1야당의 꿈을 가능케 할 것이다. 지금의 10석으로 다음 총선에서 제 1야당이 되겠다고 하면 꿈꾸는 소리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정치는 역동적이다.

 

지승호 : 개혁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이 볼 때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끔찍한 상황일 수 있어서 비교적 건전한 개혁 보수 세력인 우리당과 진보 세력인 민노당이 경쟁하는 구도로 갔으면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우리당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노회찬 : 여당이 뭘 할 때 야당이 좀더 강하게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끌어내리려고만 하는 지금의 정치 구도는 우리당에게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결정이 되고 우리당 안의 플러스알파에서 결정이 나야 바람직할 수 있는 것이 마이너스 알파에서 결정이 나고 있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발목잡기 때문일 수 있지만, 우리당이 그것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민노당이 제3당에 불과한 야당이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이 그 어느 때보다 사회 각 방면에서의 개혁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만큼 우리당이 소신 있게 각 당의 정체성에 맞게끔 추진해 간다면 사안 사안에서 민노당과의 연합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우리를 10석으로만 보지 말라고 말한다. 의석수는 10석에 점유율도 3.3퍼센트밖에 되지 않지만, 당 지지율은 10퍼센트는 되고 민노당이 대변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30~40퍼센트는 되기 때문이다. 민노당을 통해서 대변되는 정책을 상당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당이 좀더 자신감 있게 나온다면 이른바 개혁연합을 사안에 따라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 전체가 보수화되고 있다

지승호 : 군부정권 시절에 비해 자본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정부나 국민이나 그에 대한 긴장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노회찬 :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만이 아니라 참여정부나 우리당, 좁게는 386의원들이 여전히 개혁을 원하고, 여전히 민주주의의 벗이라 할 수는 있어도 결코 서민의 벗은 아니라고 느낀다. 서민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거의 자본가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노조 문제에서 이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 대학 총장 선거와 관련한 교육공무원법을 다루는 문제에서도, 교수들 외에 직원이나 학생들이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386의원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들은 독재와 싸울 때 민주주의의 충실한 벗이었고, 그로 인해서 국회의원도 된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그런 개혁적 이미지와 달리 경제와 관련해서는 재벌 개혁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이 거의 대기업과 대자본가들의 편에 서 있다는 점에서 우리 서민들이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지승호 : 얼마 전 고대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의 방해가 있었는데.

노회찬 : 400억 정도를 들여서 삼성관을 기증했다는데, 기업이 그렇게 큰 건물을 학교에 기증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면 공로패를 주면 되지 왜 박사 학위를 주느냐는 것이다. 학생들이 그렇게 무례하게 군 이유도 노동조합도 허용하지 않는 반헌법적인 경영철학을 갖고 있는 기업의 총수에게 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느냐는 것이다. 명예박사라는 형식으로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 공부도 안 하고 학위 논문도 안 쓴 사람들에게 마치 거래하듯이 주는, 그런 권위주의 시절 정부의 나쁜 폐습부터 없애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건데, 이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무감각한 것 같다. 돈은 많이 벌었을지 몰라도 결코 국민에게 존경받을 수 없는, 그리고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국회에서도 늘 증인으로 요청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불법 대선 자금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는가? 증여 문제나 반사회적인 기업이라는 일각의 지적이 일고 있는 그런 사람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문제다.

 

나는 결코 폭력을 옹호하지 않지만, 그전에 누가 원인 제공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의견을 그런 식으로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 오히려 무기력해 보일 수 있는데, 일반인들은 학교에 그렇게 투자를 했는데, 고마움을 표시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많이 보수화된 증거이다. 예를 들어 담배를 많이 생산하거나 인디언들을 괴롭혀서 재산을 축적하고 대기업을 이룬 사람들이 그 돈으로 폼 잡는 일을 할 때, 그 원죄를 따지면서 저항한 것은 젊은이들 특유의 기상이 아니냐는 거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학생들이 삼성본관에 화염병을 들고 쳐들어간 것도 아닌데.

 

말과 글에도 다양한 맛이 있다

지승호 : 토론할 때 할 말을 준비하는 질문에 준비했다가는 그 말 써먹기 위해서 다른 말을 못하게 되니까, 저도 제 입에서 나온 뒤에야 듣게 되는 적도 많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좋은 토론을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고, 평소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노회찬 : 첫째로 주요한 쟁점에 대해서는 평소 쟁점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고 거기에 대한 각각의 입장들, 즉 어떻게 해서 저런 입장이 나오는가, 올바른 입장이 뭔가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일단 맛도 미미한 맛을 다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뜨겁다, 차다는 것 외에는 못 느끼는 사람도 있듯이 말과 글도 보면 여러 각도가 있다.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인데,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언어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글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읽기는 다양하게, 가급적 많이 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말을 잘하려면 말을 많이 들으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지 않을까. 말을 잘 안 듣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말만 많이 하고 그래서 자신의 언어 습관을 잘 못 고치게 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내가 한 말을 모아 놓은 어록이 돌아다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떡은 없어지고 떡 위에 놓은 밤과 잣 같은 고명만 남은 격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떡 자체인데, 전달하고자 하는 진의가 빠진 채 몇 개의 표현으로 협의화 되어 전달하는 데 대한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그나마 그거라도 남아 있는 건 나쁜 게 아니고, 또 나는 내가 과거에 한 말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떻게 하니까 어떻게 되더라는 하나의 경험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에 기초해서 정말 필요한 내용을 더 잘 정리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변호사와 의사가 잘 사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지승호 : 로스쿨 도입과 현행 사법시험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1천여 명인 사시 합격자 수를 크게 늘려 기회 균등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도 있는데.

노회찬 : 1천 2백 명을 2천 명으로 늘리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 법률 서비스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적음에도 불구하고 법조인 수를 제한함으로써 법률 시장에서의 법률 서비스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법률 기득권자들의 생각이고 논리이다. 변호사 수가 적어서 자연히 가격이 비싸지는 것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와 의사가 크게 잘살지 않는 사회, 들인 노력에 비해 조금 고생을 하는 사회가 오히려 더 좋은 사회일 수 있다고 본다.

 

의료 복지가 잘된 나라일수록 의사들이 고통스럽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로스쿨 방식은 법조인들을 계속해서 기득권층화하고, 돈이 많아야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실행하기도 어렵다. 만약 1천 2백 명으로 수를 제한하면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가장 큰 공약으로 우리 지역에 로스쿨을 새로 유치하겠다, 50명밖에 안 되는 수를 늘리겠다라고 할 것이고 이 공약은 당선 후 관철하기가 쉽다. 일본이 지금 그런데, 그러면 로스쿨 졸업자들 중에서 절반 정도만 법조인이 될 것이고, 결국 로스쿨이 법대처럼 되어 버리는 이중 고비가 생기는 것이다. 사법고시를 위해서 10만 명씩 공부하는 것처럼, 초기에는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정원이 늘어날 테니 그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져서 결국 전체적인 법률 서비스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내부 갈등과 대립만 양상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 이 문제를 보는 기본 시각은 사법 개혁이 국민을 위한 것이냐, 법조인들을 위한 것이냐를 따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3김 정치는 사라졌지만 3김 정당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한다

인적으로는 전반적으로 나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의 낡은 부분들이 많이 퇴장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 정당 시스템을 보면 우리당만 조금 다를 뿐 나머지는 3김 정치용 정당이 아니었느냐는 겁니다. 정치는 이미 3김 정치가 아닌데, 정당 시스템은 3김 정치 시스템이 여전히 남아서 작동하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각 당의 정체성이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정책 이념상의 동질성이 상당히 낮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정책 이념을 중심으로 한 정치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각 집단의 결속력이 대단히 낮다 보니까 그 집단 내에서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각 당의 당론이 아주 쉽게 무너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거든요.

 

노동자 세상을 꿈꾸는 인도주의자 하종강

- 노동자는 선이고 노동 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

 

그는 20년이 넘게 매년 300여 차례 이상 노동 문제에 관한 강연을 하고 상담을 해오면서도 다른 노동자나 조직 사업을 하는 동료에게 부채감이 있다는 말을 내내 되풀이했다. 그 오래 시간 줄곧 한 길을 걸어오면서 힘들었을 때가 별로 없었다. 내가 오늘 이 진정서를 붙들고 하룻밤 고생하면 저 노동자가 따뜻한 밥 한 그릇 먹게 된다, 이런 만족감이라고 할까,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항상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 정도의 인도주의적인 원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이 나를 구원했다고 겸손해 한다. 그의 강연에는 자신이 직접 겪은 생생한 현실과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들어간다. 노동자들과 함께해 온 20년의 세월, 그래서 그의 강의 교재는 어떤 체계적인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종강 그 자신이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운동권의 원조 얼짱 중의 한 사람답게 깔끔한 외모와 세련된 말투를 지녔다. 예전 그의 수배 전단에는 인상착의-미남형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세련됨조차 노동자의 그것이 아니라며 열등감을 느끼는 듯했다.

 

노동 운동은 승리할 때까지 패배하는 싸움이다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선일보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이 많죠. 가장 큰 원인은 심하게 비틀리고 왜곡된 근대화 과정 100년의 역사 때문이에요. 왕도가 없어요. 노동조합 간부들이 일상적으로 가져야 하는 자세가 항상 중요하죠. 아주 지긋지긋할 정도로 끊임없는 조직·홍보·교육·선전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역사의 진행 방향과 나란히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고통 속에서도 반드시 뿌듯한 성과를 이루게 되죠. 실패할 때가 많지만, 반드시 성공하거든요. 박준석 씨 같은 사람이 노동 운동을 승리할 때까지 패배하는 싸움이라고 표현한 것도 다 그런 뜻이죠.

 

우리는 노동 운동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에 너무나 찌들어 있다

지승호 :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관해서 우리 사회가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 대해서 오랫동안 국민에게 그릇된 혐오감을 주입해 온 사회인지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하셨는데.

하종강 : 노동부가 드디어 선진 5개국 노동계의 실태 조사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수업 시간에 노동 문제에 대해 공부할 뿐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교실에서 모의 노사 교섭도 한다고 한다. 우리도 서서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럴 때,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거라는 걸 느낀다. 우리 사회가 젖어 있는 자본 위주의 생각이라는 게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고, 그러면 경쟁력이 떨어져서 국익에 해롭다, 수출이 저하되어 나라 전체에 해롭다는 생각에서 못 벗어나는 수준이다. 우리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를 바라고,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가르쳐 온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에 관해서는 비이성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 여성의 권리 신장이나 장애인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이 사회가 진보하는 방향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은 사회에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는 퇴행하고 있다

지승호 : 현 정보의 노동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종강 : 정책을 일관하는 철학이 뭔지 알 수가 없어서 평가하기가 힘들다.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도 하고, 장관도 하고, 청와대 곳곳에 포진해 있는 정부에서 어떻게 이렇게 반인권적인 노동 정책이 나올 수 있는가 하고 사람들이 의아해 했는데, 그동안은 사람들이 인권변호사라는 말의 인권에 주목했다면 이제는 변호사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생적인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노무현 정부는 친노동자적 정부라고 욕을 먹었는데 그래서 보수 세력을 끌어안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동자를 공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보니까 그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지금처럼 힘든 적도 없었고 노동자보다 훨씬 잘사는 사람들이 노동자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적이 없었다. 에쿠스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청소부도 한 달에 120만 원은 받는답디다 하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그동안 이렇게 기고만장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태풍이 몰려와서 난리가 났는데 파업해도 되냐고 이야기한다. 이건 큰 착시 현상이고 분명 퇴행하고 있는 거다. 한 번이라도 사회에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정서가 자리 잡고, 그 도가 지나쳐서 사회 발전에 해롭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채 우리는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을 부끄럽게 하는 좌파 김규항

-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나는 모든 사람이 신념과 원칙에 가득 차 살기를 바라는 몽상가는 아니다. 나는 단지 사람들이 제가 사는 세상의 얼개쯤은 알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수구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것, 세상은 민족이나 국가나 지역이 아니라 계급으로 나뉜다는 것,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면 우리는 곧 공멸한다는 것쯤은 말이다. 김규항은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싸우는 활동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들의 활동을 돕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런데 그의 글은, 혹은 그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왜 김산의 삶은 존경하고, 체 게바라의 삶은 동경하면서 현실에서의 김산과 체 게바라와 같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이라고 욕을 하느냐고 할 때, 또는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 등의 현실적 개혁 세력에게 안타까움을 토로하다가도 현실이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좀더 민중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 달라라는 말을 들으면 부끄럽다. 그는 올바른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남들은 모르고 있는 것을 혼자 알고 있거나, 남들은 고민하지 않는 것을 혼자 고민하는 것은 세상에서 자신을 소외시키고 외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가 말하는 지식인이란 그런 역할을 온전히 감당해 내는 사람인 것이다.

 

네티즌의 한정된 개혁의식은 오히려 사회 변화에 반동적으로 작용한다

최장집 교수 같은 경우는 좌파는 아니란 말이야. 이른바 말하는 꼴통들은 최장집을 빨갱이라고 하는데, 그 양반은 좌파적인 공부를 했고 그람시 같은 저작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실천 방법에서는 좌파적이지 않고 변혁지향적인 사람도 아냐.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해서 이따금 학자다운 학자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가 현실을 볼 줄 안다는 거지. 그 양반 말의 핵심은 언론 개혁이니 정치 개혁이니 어쩌고 하지만, 경제적이고 계급적인 문제가 변화해야 세상도 변화하는 건데, 그런 것은 전혀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그런 것만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라는 거지. 지금 말하는 네티즌의 개혁 의식은 철저하게 수구꼴통, 조중동이라는 정서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상황을 공전하게 만드는 아주 반동적인 기능을 한다는 거야. 물론 그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분 때문에, 경제적이고 계급적인 문제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오히려 구태의연한 주장으로 여겨지거나 80년대 식 이야기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반응이 있다는 거지.

 

 

진보 언론은 대중을 선동한다고 하면서 끝없이 대중을 배제한다

지승호 : 예전에는 인터넷을 통한 변혁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밤의 주둥아리들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모든 일과를 마친 밤 인터넷에 모여 앉아 온 세상을 종합 평론 하는 그들은 마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듯하지만 실은 이미 만들어진 세상을 되새길 뿐이다. 그들의 모습은 수십 년 전 복덕방에 모여 앉아 대중이가 말이야, 영삼이가 말이야 하며 세상을 만들어 가던 영감들을 빼닮았다라고 하기도 했다.

김규항 : 온라인은 더 효율적으로 부각되고 쪽수가 많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오프라인과 똑같다고 보는 거다. 오프라인의 지적이고 진보적인 매체나 담론들은 그 전에 읽던 사람들이나 읽지 어차피 대중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일군의 청년들은 안 읽는데 그런 것들은 온라인에는 실리지도 않는다. 내가 지금 온라인에 준비하고 있는 민중언론이라는 것은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에서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을 노골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즘은 시대 상황이 어쨌든 개혁 이상의 사회 진보, 주류 사회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따분해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래도 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절반은 앞의 분명한 상황의 불리함, 현실적인 상황의 엄정한 불리함이고 나머지 절반은 당사자들의 책임이라고 본다. 안 읽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정치적이거나 노동 쪽의 선전선동물들에서 끝없이 대중을 선동한다고 하면서 끝없이 대중을 배제하는 듯한 몸짓과 어투는 누가 이런 걸 읽겠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회 운동의 헤게모니가 완전히 개혁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우리는 대중을 향해서 선전선동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는 거니까 오히려 개혁 논리의 허구와 개혁의 실상을 공격함으로써 우리를 부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세상에 좋은 성공은 없다

지승호 : 프랭클린플래너를 안 쓰는 이유가 성공하기 싫어서라고 했는데, 성공에 목표를 두고 살지는 않는다 해도, 자기 일 열심히 해서 그것으로 성공하면 좋은 것 아닌가?

김규항 : 좋은 성공은 없다. 올바른 사람은 외로울 것이고, 어떤 사람의 올바른 순간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성공이라는 건 그것과는 배치되는 가치이다. 한정된 올바름, 적당한 올바름은 상당히 성공할 수 있지만, 끝없는 올바름의 추구는 절대 성공할 수 없고 절대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랭클린플래너를 만든 사람들 같은 사람들의 성공관은 전혀 존중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존중하는 정도의 성공관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거기에 정서적인 거부감이 있고, 운명적인 부정 같은 게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데 성공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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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시비돌이 > 일요일의 블로거님의 리뷰
7인 7색 - 일곱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곱 개의 세상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일요일의 블로거님의 리뷰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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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의 인터뷰집이 나왔다. 지난해 <마주치다 눈뜨다>이후 두번째 인터뷰집이다. 인터뷰라는 것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에서 그의 인터뷰는 인터뷰의 저변을 넓히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듯 하다.
 
지난번 인터뷰집이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학자나 시민사회단체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번 인터뷰집은 정치인, 노동운동가 등 더욱 현실을 부딛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지난 책이 독자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번에는 현실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박노자 선생님의 인터뷰는 참으로 반갑다. 한국에 있지 않기 때문에 책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데 그의 인터뷰가 박노자 선생님을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던 그의 권위와 폭력에 대한 반대와 신자유주의,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이 어려워질수록 그의 비판은 날카로워 진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서 공부밖에 할게 없다는 그의 성실성과 진정한 아나키스트로서 자식에게도 절대 부모로서의 권위와 권리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모습은 그가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만화가 이우일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세상에 맞추며 살지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한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것을 거리낌없이 외치면서도 나와 다른 남의 권리를 인정하는 그의 모습은 저자가 말했듯이 다름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자의 모습이다.
 
현직 국회의원인 유시민과 노회찬의 인터뷰는 현실정치에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정치인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는데 이용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떨쳐버릴수는 없지만 분명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데 도움을 준다. 유시민의 경우 논란이 되었던 수많은 언행과 행동에 대한 해명을 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비해 노회찬의 경우는 진보정당의 성과와 과제를 설명하고 자신의 신념을 설명한다. 유시민이나 노회찬이나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본 그들은 나름대로 고민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느낄수 있게 한다.
 
당대의 논객 진중권과 김규항의 인터뷰에서는 비판적 지식인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진중권의 인터뷰에서는 날카로운 비판과 조롱을 통해 통쾌함을 느낄 수 있고 김규항의 인터뷰에서는 진정한 진보를 바라보는 그의 진실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이야기가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들어본 이야기지만 현실이 바뀌지 않은 이유에서인지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신선하다.
 
노동자는 선이고 노동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는 하종강의 인터뷰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노동운동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어느정도 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인터뷰라는것이 유명인의 근황을 물어보는것 정도로 생각되는 상황에 지승호의 충실한 인터뷰집은 큰 만족을 준다. 그의 다음 인터뷰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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