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행복나침반 > 건강을 염려하는 게 바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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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공교롭게도 이 책을 병원에서 읽게 되었다. 내 병 때문이 아니라, 내 남자의 병 때문이었는데 별거 아니었던 질병을 꾹꾹 참고 견디다 병을 키워 입원에 수술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도 여름엔 많이 생긴다고, 약만 먹으면 3일이면 낫는다던 약사의 말을 믿고 무식하게 약을 먹어댄 대가로 농이 딱딱하게 굳어 하루에 항생제를 여섯 병씩 맞는 결과를 얻었다. 그 때문인지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병원에서 간호 겸 데이트를 하던 내겐 범상치 않게 다가왔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쉽게 넘길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이 밝고 명랑하게 전개되어 있어, 무엇보다 전문지식이 없이는 가까이 가기 힘든 의료 지식들을 읽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때문에 아주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할 순 없다. 그러나 집안에 의사도 없고, 병원 문턱을 넘는 게 쉽지 않은 사람들이 낭패를 보지 않게 배려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와 그 점은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우리 집은 대대로 약골인 집인지라 병원에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가고, 우리 아부지가 젊었을 적 레지던트였던 의사가 이젠 대학교수까지 되어서 만난다니 말 다했다. 갓 서른에 간암 판정을 받았던(나중에 간경화 초기 정도로 바뀌였지만) 아부지-지금은 고지혈증을 비롯한 혈관계 질환, 폐, 간, 심장 등 중요한 오장육부는 모두 정상이 아니시다-, 마흔에 혈압으로 쓰러져 삼 년을 병원 생활했던 엄마, 간암으로 회갑도 못 맞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또 역시 쥐도새도 모르게 잠시 내 몸에 들러 갔다는 결핵손님, 백내장, 혈관계통 문제가 있는 할머니, 벌써부터 고혈압인 내 동생. 정말이지 집 안을 질병의 그림자가 뒤덮고 있다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정기검진 정도야 당연히 빠뜨릴 수 없고, 그것마저 미덥지 않으면 세부 정밀 검사도 이미 몇 차례 받고 있는 게 우리 집 상황이다. 다섯 가족의 보험료가 한 달에 130이라면 말 다한 셈일테다. 예비차원의 보험이 아닌 그때그때 대처용이니, 아마도 큰 일로 입원하게 되면 우리가족을 보험사기단으로 알고 분명 보험사측에서 수사할 거라고 우스개소리도 했다.
우리야 이미 한 대학병원에 단골로 대접받고 있는 상황인데다, 엄마가 옛날에 대학병원 간호사였으니 함부로 하진 못한다. 한 번은 아빠의 다리에 혈관문제인지, 사마귀 같이 나다가 점점 커졌는데,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약을 투여하고 수술을 하기로 했었다. 수술날짜를 잡아놓고 있는데, 갑자기 하룻밤 지나고 나니 혹은 커지고 없던 통증이 생겨 엄마가 전날 주사했던 약들을 모조리 적어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서 보니 이해할 수 없는 약들이 몇 가지 주사됐는데, 잘못 한 게 아니라고 발뺌을 하다가 나중에 담당의사가 와서 처방이 다른 환자와 바뀌었다고 사과를 하고 부당하게 처리된 약값과 위로금조로 자신 앞으로 나오는 돈을 대신 넣어서 병원비가 적게 나온 경우도 있었다. 몰랐으면 그냥 당했을 일이다.
이렇게 예전 일들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갔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짜여있다. 의료계의 명암과 가끔 헛갈리는 많은 부분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해준 「환자가 알면 좋을 것들」, 괴롭고 짜증나는 만성질환이지만 부끄러워 쉽게 상담할 수 없었던 「음지의 질환들」, 웰빙의 대세를 타고 만연한 건강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 과장된 의료 상식들을 꼬집은 「바른 생활을 하자」로 이루어진 책은 그동안 궁금해도 소문만 무성했던 질문들에 착실히 답을 해주고 있다.
특히나, 병원에 갈 때마다 갈팡질팡하게 되는, 과연 내 병의 소속은 어디인지 알려줬던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아기가 아토피 피부를 가지고 있는 아는 언니는 첨엔 아기니까 소아과를 갔다고 한다. 근데 피부과도 아닌 알레르기 내과가 더 좋다니, 참으로 병원을 가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잘 모르면 외려 병은 오래가고 후에 상처도 남길 수 있으니 잘 헤아려보고 병원을 선택해야겠다.
티비를 비롯한 미디어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허황된 의학정보들을 듣다 보면, 도대체 내가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궁금해지기까지 하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어디서는 아주 좋은 식품이라 하고, 어디선 절대 금해야 하는 식품이라 하고. 지난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는 아토피 피부염도 촉각을 자극함으로 나을 수 있다고 그러던데, 이러다 제대로 처방도 받지 않고 성마르게 여린 아기피부를 북북 자극할까 걱정도 되었다. 이젠 점점 사람들의 관심이 잘 먹고 잘 살기로 모아지면서 어느 때보다도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하루 한 알,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금세 내 몸에 뭔가가 부족해 죽기라도 할 태세이고, 나이든 부모에게 글로코사민 한 박스를 안기지 않으면 불효자인 것 같다. 이런 사태에 의료계의 한 사람으로써 일침을 놓는 바른 생활을 하자, 는 정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무엇보다 제 속 편하고, 입 즐겁게 먹는 게 제일이고 최고라던 외할머니의 말씀이 가장 옳다고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인 것 같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이라는 제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지만, 속뜻은 사실 헬리코박터가 위암을 발생시킨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이야기니 썩 다른 내용은 아니지 싶다. 유쾌하게 읽을 수 있고 통쾌하게 마지막장을 덮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그것도 특정분야에 매이는 법 없이 자유롭게 쓰여지고 엮여진 글이다보니 깊이가 깊을 순 없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좀 아쉽다. 그리고 책 본문을 유쾌하게 읽어가다가 갑자기 등장한 뜬금없는 삽화 때문에 허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냥 본문만 실어도 좋을 뻔 했다. 건강을 염려하는 게 바로 병이라는 말처럼, 내 몸을 너무 속박시키지 말고 자유롭게 사랑해줘야겠다.
그러고보니, 우리집 병의 내력까지 너무 속속들이 쓴 거 아닌가 싶긴 하네. 장한 일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