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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 Room in the heart, BIUM ㅣ 고래뱃속 생각 그림책 1
곽영권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고래뱃속 / 2009년 2월
평점 :
지난 5월 31일, 6월 1일 양일간 신규야간보호교사 워크샵이 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지역아동센터 또는 복지관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나이트케어를 해주는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 고무신학교의 교장즈음 되시는 고무신님이 오셔서 비움을 비롯한 여러권의 책으로 책 읽기와 놀이를 주제로 워크샵 형식의 강의를 하셨다. 참! 고무신학교의 특징 중 하나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스승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선생님]이라는 말을 고무신 학교의 금지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나 또한 정말 선생, 교사로서의 자격이, 자질이 있는 건가 돌아보게 되었다.
비움... 제목만 가지고 2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것 같다. 고무신님이 전에 아이들과 워크샵을 했을때 어떤 아이는 [비움]이 비가 온 뒤에 움이 트는 것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의 머리속은 그야말로 무궁무진 한 것 같다. 비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마치 시를 읽 듯이.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분히 철학적일 수 있겠지만 아이들만의 순수함이 이 책속의 내용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왼쪽 페이지에는 나뭇결들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나뭇결을 이용하여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와우~ 신기해라! 할 정도로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는 소리내어 책 읽기와 그림 보기를 마친 후 조그마한 나무 도막을 받았다. 길거리에 가다가 어느집에서 버린 나무를 톱으로 쓸어서 가져오신 거라고 하였다. 우리는 고무신님이 정성스레 준비한 나무도막을 일명 뻬빠, 건조한 사포로 열심히 문질렀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릴 것이기 때문에 매끄럽게 될 때까지 문지르라고 하였다. 매끄러운지 아닌지는 볼에 대보면 안다고 했는데 볼에 대니 아주 기분좋은 매끄러움이 전해졌다. 대신에 하얀 밀가루 같은것도 묻었다. 나무 도막을 뚫어지게 30초를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나뭇결이 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였다.
6명이 한조가 되어 둥글게 앉아서 작업을 했는데 어쩜 6명이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나뭇결에서 큰 고래한마리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누워있는 사람도 보았다. 나는 피노키오도 보았고, 성경의 인물 요나도 보았다. 어떤이는 선풍기를, 공작새를 그리기도 하였고, 또 어떤이는 막대사탕을, 곰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주어진 미션은 이 여섯개의 그림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각조마다 정말 근사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나무 조각이 하나 남아서 집에서 남편에게 해보려고 가지고 왔다(아이가 없으니 나의 실험 대상은 언제나 남편이다. ^^) 남편은 열심히 사포로 문지르고 얼굴에 대보고 물티슈로 깨끗이 닦고 난 후 나무조각을 뚫어지게 30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는 말 "난 아무것도 안그릴래" 잠시 실망했지만 맞아!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인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는 나무 조각을 볼 때마다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으니 하나쯤 아무것도 안그려진 나무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겠군!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4평형의 우리집은 책들로, 살림들로 정말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가끔 숨이 막히기도 한다. 결혼해서 8년동안 한번도 이사를 한적이 없기에 살림들이 구석 구석 잘도 채워지고 있다. 이제 슬슬 비움을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들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있는 것들로 더 많이 풍성하게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