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0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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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간 사랑의 본질과 관련한 주제는 인류 역사와 궤를 나란히 한다. 진부한 듯 하지만 싫증을 유발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로서 생존과 번식에 사랑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제각각이다. 누구나 자신의 체험을 반추하며 사랑의 의미를 곱씹는다. 체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가슴 속에 품은 이상화된 사랑의 모습을 열렬히 간구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 역시 작가 개인의 시각과 관념에서 형상화된 양태이다.

 

무수한 모방을 이끌어냈던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은 비극적이다. 뜨겁고 격렬하여 목숨마저 무가치하게 만들 정도의 폭풍 같은 사랑. 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제재로 다루었고 찬미해마지 않았던. 작가는 이를 거부한다.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것은 이미 순수하고 완전한, 기쁨에 충만한 어린이의 사랑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궁핍이 섞인 사랑-작열하는 불꽃이요, 타오르는 정열일 뿐이다. 달아오른 모래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스스로를 소모하는 사랑-갈망하는 사랑이지 헌신하는 사랑이 아니다. 나의 것이 되어달라고 요구하는 사랑이지 너의 것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본위의, 의혹이 뒤섞인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들이 노래하며 젊은 남녀들이 믿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다. (P.27)

 

그러면 작가가 생각하는 참된 사랑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반문에 이 소설로 응수한다. 이 책은 소설화한 사랑학 개론이자 시화(詩化)된 산문이다. 단순한 줄거리와 구성은 글의 힘과 문체로 정면 승부를 보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기기묘묘하고 이채로운 풍경에 대한 열광은 찰나적이며 비반복적이다. 한적한 시골길의 돌담 위에 자리 잡은 이름 모를 들꽃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차라리 나그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플라토닉한 사랑은 예찬보다는 조소에 가깝다. 젊은 남녀의 사랑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을 통해 완성된다. 그들의 결합이 법률적으로 인정되면 곧 결혼이다. 시행착오는 있을망정 사랑은 결국 결혼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자연적이면서도 세속화된 사랑의 외양이다. 작가 역시 이를 긍정한다.

 

, 육체 없이도 정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정신을 들먹이지 마라! 완전한 현존, 완전한 의식, 완전한 기쁨이란 오로지 정신과 육체가 하나인 곳에만 있을 수 있다......실재하는 삶이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삶이요, 실재하는 향유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향유다. 또한 실재하는 만남이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만남이다. (P.142~143)

 

주인공과 마리아의 사랑은 순수하지만 세속적 잣대에 익숙한 우리의 시선으로는 불순하다. 간계와 음모가 숨어 있고 순진을 기만하는 속임의 가면을 쓴. 두 사람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세상은 고귀한 사랑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운명적이다. 그들은 단번에 상대방의 의미를 깨닫는다. 여주인공의 이름 마리아는 상징적이다. 이름 자체에서 순수함과 고결함을 배어나와 여느 사랑과 같을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평범한 연인이 될 수 없고 부부도 될 수 없다. 사회적 신분의 차이와 마리아의 불치병. 통념적 사랑의 수순을 밟아갈 수 없는 처지. 사랑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힘겨운 육체적 쇠약과 멀지 않은 나날.

 

여기서 두 사람의 사랑을 좀 더 공감해 보련다.

 

그녀를 본 첫 순간에 나는 그녀의 전부를, 그녀의 내부에 감춰진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 우리는 인사를 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인식했던 것이다. (P.62)

 

나의 소유는 아니지만 당연히 나의 것이어야 하며, 나의 것이고자 원하는 존재임을. 내가 나 자신처럼 믿을 수 있는 존재, 나와 동떨어져 있지만 나 자신보다 더 가까운 존재, 그것이 없으면 나의 생명은 이미 생명이 아니며 나의 죽음조차 이미 죽음이 아닌 존재, 그것이 없으면 내 가엾은 현존이 한숨처럼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 그 존재 (P.143)

 

그녀를 다시 못 만난다니? 나는 진정 그녀 곁에 있을 때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조용히 있을 테다.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고, 그녀가 잠들어 꿈을 꿀 때 가만히 창가에 서 있을 테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고?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단 말인가? 그녀는 알 리가 없다.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다. , 하긴 나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 거다. 나는 그녀를 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실로 그녀 곁에 있을 때처럼 내 심장이 평온히 뛰는 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녀가 곁에 있음을 느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녀의 영혼을 호흡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P.91)

 

이처럼 내 마음이 깨끗해진 순간에 있는 그대로 내 온 마음의 사랑을 고백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초지상적인 것을 이처럼 가까이 절감하고 있는 지금, 우리를 다시는 갈라놓지 않도록 영혼의 약속을 맺읍시다. 사랑이 어떤 것이든 간에, 마리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느끼고 있습니다. 마리아 당신은 나의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P.129)

 

양자의 사랑이 흠 없이 순수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련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들 역시 세속적 사랑의 순서를 따라갔을 것이다. 사랑고백의 대사와 뒤이은 키스는 남들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사랑의 발현과 인정, 고백에 이르는 일련의 감정의 흐름은 자체로 더없이 순수하였다.

 

마리아는 기쁨과 행복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자신의 짧은 생에 이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해 준 경험은 일찍이 없었으므로.

 

마리아는 묻는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주인공이 대답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P.151)

 

이 이상 완전한 대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작가는 작품의 사상과 감성을 심화하고 구성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하여 적절한 인용을 비중 있게 삽입하고 있다. 작자미상의 <독일 신학>에 대한 논의가 그러하며, 매튜 아널드의 <파묻힌 생명>(P.80~85)과 워즈워스의 <산지의 소녀>(P.115~119)이라는 장시도 흥미롭다.

 

사랑이란 만인의 심장을 타고 흐르는 대양이 아닌가. 그래서 누구든 저마다 그것을 자신의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맥박인 것이다. (P.114)

 

의사는 주인공에게 당부한다. 마리아와의 사랑을 일개인적 체험으로 축소하지 말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기반으로 전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하고 승화시킬 것을, 그리하여 보다 큰 차원에서 사랑을 이루어낼 것을. 표제의 독일인을 지역적으로 국한해서는 안 되는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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