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발이 범우문고 51
이희승 지음 / 범우사 / 1991년 4월
평점 :
품절


국어학자 이희승은 19세기말에 태어났으니 오래되었지만 생소한 인물은 아니다. 20세기말에 사망하였고 학자로서 그의 자취는 민중서림판 <국어대사전>에 오롯이 전한다. 생전에 몇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긴 기간 동안 쓴 글로서 주로 1950,60년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소재를 기준으로 개인적 소재, 전통적 소재, 시사적 소재 및 기타 소재를 택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시사적 소재의 경우는 시대적으로 정치가 혼란하고 사회가 안정되지 못한 시기였으니 계몽적인 내용이 은근히 많다.

 

민중의 지팡이가 되려면 믿음의 지팡이가 되라고 갈파하고, 나라와 민족이 발전하기 위한 즉효약은 인격 교육에 있다고 주창한다. 그만큼 당대에 모던 양반과 난화지맹(難化之氓)2류의 인간이 사회를 좀먹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갖은 방법을 다하고 총력을 기울여, 사람의 마음속에 지조의 씨를 심자. 그리하여 이것을 잘 가꾸어서 성장시키자. 활로는 오직 여기에 있다. (P.109, <지조>)

 

<지조>는 수록작 중 가장 긴 글로서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서 지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조를 품은 사람은 부정과 불의를 행하지 않고 부질없는 명리를 탐내지 않으며 태도를 표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우 진지한 글로서 논설에 가깝다.

 

전통적 소재로 한 글쓰기는 숫자는 많지 않지만 가슴 속에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유머 철학>은 유머에 대해 고찰한 후 우리 민족의 유머를 탐구하는데 언급된 예시가 흥미롭다.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딸깍발이>는 옛날 남산골 샌님과 약아빠진 현대인을 비교한다. 전반부만 봐서는 딸깍발이의 고루함을 통렬히 비판하는 듯하지만 기실 그네들의 정신을 배우자는 게 요지다.

 

우리 현대인은 딸깍발이의 정신을 좀 배우자.

첫째 그 의기를 배울 것이요, 둘째 그 강직을 배우자. 그 지나치게 청렴한 미덕은 오히려 분간하여 가며 배워야 할 것이다. (P.24, <딸깍발이>)

 

<지조>, <유머 철학>과 함께 기타 소재 글 중 <독서와 인생>은 분량과 글쓰기 태도 면에서 진지한 유형에 속한다. 독서의 효용과 가치를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독서를 권장하는데 최근에 읽은 <서재의 열쇠>란 책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수필가로서 이희승의 진가는 사실 개인적 소재를 택한 글들에서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자신을 대상으로 삼는 게 마음 편한 듯 대놓고 해학적이지 않지만 슬며시 웃음을 자아낼 풍성한 유머를 품고 있다.

 

유달리 키가 작은 자신에 얽힌 사연을 희화시킨 <오척 단구>, 일석(一石)이라는 호에 얽힌 사연을 소개한 <호변(號辯)>은 물론 <벙어리 냉가슴>, 요절한 외우를 회상한 <월파(月坡)의 인상> 등이 무척 흥미롭다. 아마도 일석의 성격은 꼬장꼬장 했던 듯싶다. 둥글둥글한 산을 대비하여 자신의 성격이 탐탁치 못함을 언급하면서도 사람으로서는 차라리 이게 낫다고 위안 삼는다. <지조>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둥글둥글한 산, 둥글둥글한 사람, 어느 것이나 경중이 있을 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전자를 더 좋아한다. 사람이 둥글둥글한 것은 암만 해도 둥글둥글한 산만 못해 보인다. (P.129, <둥구재>)

 

일석 이희승은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그는 예술로서, 문학으로서 수필을 쓴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글쓰기에 정서적 공감을 지닌 것은 동시대인이거나 그라는 인물을 기억하는 세대에 국한될 것이다. 당시 사회상에 더불어 공분하고, 그와 같은 대단한 학자가 내뱉는 희극적 어조에 슬며시 미소 짓는 독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현실이다.

 

* 내가 읽은 책은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것의 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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