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심은 뜻은 범우문고 21
이청담 지음 / 범우사 / 198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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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청담 스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몰라서 약력부터 찾아본다. 불교 정화 운동을 주도하고 조계종 총무원장을 초대부터 수차례, 2대 종정 역임 및 세계불교대회 한국 대표로 참석 등 한마디로 우리 불교계를 현대화하고 개혁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대단한 분이다. 불교계의 일에 헌신하기에도 바쁠 텐데 대중적인 글을 남긴 것은 결국 불교가 바로서고 불교도가 올바른 마음자세로 부처님의 도리를 섬기도록 깨우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리라.

 

서두의 작가론은 황야를 헤맬 때 유용한 나침반과 같다. 해설에서는 청담 스님의 사상을 극락 사상, 인욕 사상, 호국 사상으로 집약하고 핵심을 마음 공부에 두고 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거창한 철학이나 사상을 전개하기 위해 쓴 글들이 아닌 만큼 여기에 천착할 필요도 없으리라.

 

는 곧 마음이다. 나의 평생 과제는 오로지 이 마음의 수련에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P.32, ‘육신은 사멸하지만’)

 

나라는 는 영원 불멸의 것이요, 또한 절대 자유의 것이다. 그래서 는 완전무결한 실체, 즉 우주 이전의 실체요, 차원 이전의 것이므로 나를 앞서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한다. (P.33, ‘육신은 사멸하지만’)

 

는 만법과 더불어 있지 않고 독립독존(獨尊)독귀(獨貴)독권(獨權)하며, 유일무이한 실상진아(實相眞我)의 실존을 지칭함이 곧 . (P.42, ‘양식과 사명감’)

 

이 마음은 영원 불멸의 실제고 절대 자유의 생명이며 우주의 핵심이고 온 누리의 진리며 천지 조화의 본체고 신의 섭리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다. (P.122, ‘성불의 길’)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떠올리게 하는 위와 같은 =마음론이 스님의 핵심 사상이며 곳곳에 이를 주창하고 있다. 수록된 글 중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는 스님의 마음론을 작심하고 주창한 글이다. 이처럼 스님이 새삼 참된 나를 강조한 연유는 당대 불교의 종교성에 위기의식을 느꼈던 탓이 아니겠는가.

 

우리 불교의 특징 중 하나가 기복(祈福) 불교라고들 한다. 이는 기독교도 다를 바 없다. 자신과 가족들의 무탈과 행복을 기원하는데 주력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나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이 이를 뜻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글쓴이는 여기에 일침을 날리지만 당대에도 지금에도 세태는 변함없다.

 

염불과 기도는 부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부처님은 우리가 믿을 것이지 의존할 것이 아니다. (P.27, ‘죄와 복’)

 

스님이 불교 정화 운동을 벌인 것은 이처럼 그릇되고 구태의연한 종교의 길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며, 불교가 종교로서 사멸하지 않고 온전히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래서다. 신성한 도량이 밥장사나 요리집으로 타락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자각과 중생 제도가 결여된 즉 상구보리(上求菩提)를 하지 못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도 불가능한 종교는 인간과는 무관한 종교가 되고 말 것이요 또한 이러한 종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종교는 이미 그 생명을 상실한 것이다. (P.37, ‘믿음은 죽음보다 강하다’)

 

스님은 성불(成佛)의 길이 다른데 있지 않다고 말한다.

 

마음도 아닌 마음인 이 나[]. 허공도 물질도 아닌 이 실제의 나를 찾을 때 불안과 공포에서 헤어나는 인류 구제의 길은 있는 것이다. (P.122, ‘성불의 길’)

 

스님조차도 쉽사리 성불하지 못하는 마당에 일개 독자가 이 얄팍한 책 한 권 읽었다고 어찌 성불을 꿈꾸겠는가. 다만 “‘’()이 아니다라며 폭탄선언과 함께 시작하는 과 나는 자주 쓰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선()의 개념을 쉽게 잘 풀이해 주고 있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소득은 慈悲無敵에 있다. 우리는 세상살이를 항상 조건부로 견준다. 남이 내게 하는 만큼 나도 남에게 해주며, 내가 주는 만큼 받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실망하고 화를 내고 만다. 이것은 부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득 나 자신 또한 아내에게 섭섭함과 실망을 느끼고 괜스레 퉁명스럽게 대하던 게 결국은 자비를 가지지 못한 탓임을 깨닫는다.

 

사랑은 나쁜 심리로 남을 점령하려는 것이고 남을 구속하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비는 남을 해방하려는 마음이고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P.49, ‘자비무적’)

 

* 내가 읽은 책은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것의 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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