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박사의 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7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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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스의 공상과학 소설은 기술문명의 찬가가 아니다. 그는 과학기술 발전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미래를 응시한다. 자연을 정복하고 신의 영역에 도달할 것을 자부하는 인류 문명의 오만과 독선을 냉엄한 시각으로 전망한다. 대표적 일련의 작품인 <우주전쟁><타임머신> 그리고 이 소설도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생체실험. 마루타로 대변되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인체실험이 떠오른다. 당연 불법이면서 비도덕, 비윤리, 비인간적인 처사이므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 그렇다면 동물실험은 어떨까? 꽤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거창하게 실험이란 전문용어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식용 목적으로 사육 및 도축되는 무수한 동물의 시한부 생명들을 보라. 나아가 요즘은 생체실험조차도 불필요하다. 유전자 조작이란 보다 편리하고 효과적인 작업 기술이 있으니. 웰스는 의도하지 못하였지만 생체실험은 현대의 유전자 조작을 비추는 거울이다.

 

전에 그들은 짐승이었고 환경에 본능을 맞추면서 하나의 생명으로서 나름대로 행복했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인간성이란 족쇄에 묶여 몸부림친다.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두려움 속에 산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법 때문에 불안해한다. 고통으로 시작된 그들 가짜 인간으로서의 삶은 하나의 긴 내적 몸부림이자 모로에 대한 기나긴 공포에 다름 아니다. 무엇을 위해? (P.139)

 

모로 박사는 과학기술 종교를 신봉하는 현대인의 전형이다. 자연은 인간 존재를 위한 부속물에 불과하므로 언제든지 개조하거나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할 무소불위의 당연한 권리를 지녔다는 오만. 모로 박사는 연구윤리를 상실한 과학자의 표본이다. 과학자는 지적 호기심을 위해 과학 연구에만 매진할 뿐 그 이외의 것은 외면하는 게 당연하다는. 과학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증대할수록 과학자에 대한 책임성의 요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심장이 쫄깃쫄깃 하는 스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모로 박사의 실험에 대한 주인공의 오해와 공포. 낯설기 그지없는 동물 인간들의 기괴한 형체와 습성. 미지의 세계와 문명에 접촉하는 긴장과 모험. 본질적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더욱 공포스러운 동물인간들의 행동양식.

 

완벽한 동물의 자세를 취하고서 눈빛을 번쩍이며 공포에 뒤틀린 그 불완전한 인간 얼굴을 보면서 나는 녀석이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P.137)

 

동물 인간의 본성 회귀는 사필귀정이자 인간 능력의 한계를 명시한다. 독자는 괴물화된 동물인간에 두려움을 품지만 동물 자체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품는다. 동물적 야만은 명백하기에 오히려 덜 두렵다. 가면 아래 은폐된 인간화된 야만성은 한층 무섭다. 주인공이 문명세계에 복귀하고 군중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공포에 휩싸이는 까닭이다. 우리 자신이 동물 인간이 될 수 있다.

 

나는 내 동포들을 둘러보고는 두려움에 빠져든다. 날렵하고 밝은 얼굴들, 무표정하고 위험스런 얼굴들, 단정치 못하고 불성실한 얼굴들을 지켜본다. 그들 중 이성적 정신의 차분한 소유자는 아무도 없다. 그들에게 동물성이 휘몰아치는 듯 보인다. 머잖아 여기 섬나라 사람들의 퇴화가 대규모로 재연될 것처럼 보인다. (P.190)

 

후대 전 세계를 휩쓴 전체주의 광풍과 종교적 광신은 웰스를 조지 오웰에 앞선 예언자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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