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비룡소 클래식 34
고트프리트 뷔르거 지음, 한미희 옮김, 도리스 아이젠부르거 그림 / 비룡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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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에 말을 기둥에 매어놓은 후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말이 교회 첨탑에 매달려 발버둥치고 있더라는 이야기, 늑대의 추격을 받아 전력으로 도망치는데 늑대가 말을 잡아먹고 대신 썰매를 끌더라는 이야기 등. 어릴 적 어디선가 읽어본 기억이 명백하다. 이때까지는 아마 그림형제 동화집일 거라고 막연히 추측했는데 이제 보니 뮌히하우젠 남작의 허풍담일 줄이야.

 

이 책에 나오는 일화들이 대개 그러하다. 사냥 중에 아니면 전쟁 중에 겪는 온갖 희한하기 그지없는 경험담 또는 모험담. 적정을 살피기 위해 대포알에 올라타고 왔다 갔다 하는 사례, 배고픈 사자에 쫓겨 도망치는데 앞에는 커다란 악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는 경우. 게다가 신기한 재주를 거느린 하인들 덕분에 당시의 터키, 즉 투르크 술탄의 보물 창고를 몽땅 털어올 수 있었다는 얘기. 남작의 입담은 인간계에 그치지 않는다. 달세계 탐험을 두 번이나 하지 않나 땅속 세상이 궁금하여 화산 아래로 뛰어들었다가 불카누스 신과 비너스 여신을 만났다는 등등.

 

누구라도 뮌히하우젠 남작이 들려주는 재밌는 이야기의 신빙성에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단지 흥미로운 허풍일 뿐이라고. 이에 대해 남작은 적극적으로 진실성을 주창한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시로. 물론 스스로도 진실성을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잘난 체 뻐기지 않고 해 줄 때면 늘 그렇듯, 나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하려고 무척 애쓰고 있어. 한 마디도 빼거나 보태지 않고, 이야기를 부풀리지도 않고, 되도록 뒷전에 서서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말이야. (P.30)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절대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아. 잘났다고 뻐기지도 않고. 그냥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개를, 최대한 고개를 높이 들고 다닐 뿐이야.

얘들아, 몇 번이나 말했듯이, 나는 근본적으로 겸손하고, 거짓말을 털끝만큼도 안 하는 사람이야. 만약 통닭처럼 내 몸의 털이 다 빠지면? 그럼 다른 표현을 생각해야겠지. (P.52)

 

18세기 독일의 한 남작으로부터 파생된 황당무계한 일화담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었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당대에서 살던 고장 내지 국가 밖으로의 여행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국적인 요소,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받게 된다. 여기서 뮌히하우젠 이야기의 한 성격은 해명된다. 다만 단순한 허풍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하는 문제는 남아있다.

 

자고로 우습고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었다. 서양만 해도 이솝 우화집, 가르강튀아와 라블레, 돈키호테 등에서 알 수 있다. 군주 곁에는 익살스러운 행동과 언조로 웃음을 자아냈던 광대가 항상 있었다. 민간을 면면히 흐르는 각종 민담과 만담, 재담 등의 대중적 우스개는 불변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각박하고 냉엄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여 험한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게 도와주는 자양분과 같다. 게다가 상상과 환상을 창조하고 가공하는 능력은 나날이 중요도가 더해진다. 무엇보다도 남작의 이야기에는 재미 자체 외에 다른 불순한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는 순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독자 모두는 대번에 알아차린다.

 

한 잔 술과 흥미로운 모험담(그것이 허풍일지라도)으로 껄껄하고 기분 좋게 웃다보면 문득 세상사가 하찮아진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아웅다웅 하면서 조금이나마 남을 앞서려고 이겨보려고 바싹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언제나 전전긍긍하는가?

 

아름다운 우리 지구를 내려다보며 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했단다. 인간들은 왜 서로 욕하고, 왜 티격태격 싸울까? 왜 아름다운 우리 지구를 더럽히고 망가뜨릴까? 세상만사가 다 무의미한 것 같더라고. (P.58)

 

뮌히하우젠 남작의 모험담의 원전은 크게 두 가지다. 라스페가 영국에서 펴낸 판본이 하나 있고, 뷔르거가 후에 독일어로 재편집한 판본이 이것이다. 다만 이 책의 경우 뷔르거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발브렉커가 어린이용으로 다시 편집하고 체제와 내용을 가다듬었다. 따라서 뷔르거 판본과 어느 정도 차이점이 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략적 내용은 대동소이할 테지만 뷔르거 원작을 중시할 것인지 독자의 눈높이와 전달력에 초점을 둘 것인지는 아마도 판단의 사안일 것이다. 하긴 모험담 중에는 뮌히하우젠 남작의 일화 외에도 다양한 전래담을 그의 이름으로 끌어 모았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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