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상자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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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긴 현상을 설명하는 사유 중에 여성이 남성에 비해 눈물을 자주 흘린다는 의견이 있다.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눈물로 완화시켜 신체에 부담을 덜 준다는 것이다. 이 의견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학창시절에 배운 기억을 되살려보면 비극의 효과는 카타르시스에 있는데, 곧 슬픔의 표출을 통한 감정의 배출이다. 비극을 보면서 관객은 심적인 정화를 얻게 된다.

 

눈물을 흘리는 원인은 다양하다. 눈물은 감정의 모든 국면에 대응한다. 슬프거나 아플 때는 물론, 기쁘고 반가울 경우 화날 때도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눈물 앞에서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눈물의 양도 중요하다. 눈물이 메마른 사람은 남에게서 비난을 받기 마련이다. 비인간적이라고. 눈물이 헤픈 사람도 좋은 평판은 얻지 못한다. 울보라고. 눈물은 연약함에 결부되기 쉽다. 그럼에도 꼭 맞는 상황에서 적절하게 흘리는 눈물은 고래로 칭송을 받는다. 이슬, 진주 등 고귀한 존재로 형용된다. 동양에서는 옥루(玉淚)란 표현도 사용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눈물만이 전부는 아니다. 속으로 흘리는 눈물이 더 뜨겁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눈앞이 뿌옇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그림자눈물이라고 일컫는다. 사람과 그림자가 함께 흘리는 눈물이 참다운 눈물이다. 그림자는 울지 않는데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거짓이며,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은 그림자눈물샘이 얼어붙어 있다. 작중의 할아버지는 눈물상자 아저씨와 눈물단지 아이의 덕택으로 잃어버린 눈물과 삶을 회복하였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눈물상자 아저씨는 여전히 울지 못하므로.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 (P.17)

 

가장 순수한 눈물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무색의 눈물이 아니라 희로애락과 존비와 청탁 등 모든 것이 혼융되어 정화된 투명한 눈물을 뜻한다. 눈물단지 아이의 눈물은 깨끗하지만 순수한 눈물은 아니다. 그는 자라고 인생을 겪어야 한다. 세상의 오탁에 물들 우려도 있으나 자신을 연마하고 단련할 수 있어야 한다. 눈물을 잘 흘리지 못할 우려도 있지만 헤픈 것은 모자란 것만 같지 못한 법. 눈물단지 아이가 울음을 참는 것도 이 점을 깨달았음이리라.

 

아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눈물을 참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는구나. 숨겨진 눈물을 그 가슴 가운데에서 점점 진해지고, 단단해지는구나.” (P.66)

 

어른을 위한 동화 시리즈. 관심 있는 작가에 좋아하는 장르니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적당한 분량. 은근하면서도 차분한 정조가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을 되돌아본다. 순수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게 언제였던가, 흘린 적은 과연 있었는지. 남자는 일생에 세 번만 운다는 가정과 사회의 암묵적 억압이 여전히 수많은 남성을 옭아매고 있다. 눈물과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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