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섬 파랑새 클래식 이삭줍기주니어 6
로버트 밸런타인 지음, 박정호 그림, 이원주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로빈슨 크루소의 청소년 버전이라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십대 뱃사람 세 명이 무인도에 난파하여 겪는 체험과 모험을 담고 있는 이야기책이다. 시기적으로도 디포와 스티븐슨, 베른을 잇는 중간 무렵이다.

 

전반부에서 배가 폭풍우에 난파하여 겨우 세 명의 어린 뱃사공만이 남태평양의 이름 모를 산호섬에 떠밀려온다. 제일 연장자이고 경험 많은 잭을 중심으로 해서 무인도에서 그들만의 생존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 무인도 생활은 예상보다 비교적 안락하고 즐겁기조차 한 것이었으니 낯익은 문명세계로의 복귀라는 염원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그곳에 정주하는데 불만이 없을 정도이다. 산호섬을 샅샅이 탐험하고, 해저 동굴도 발견하며, 앞바다의 펭귄섬까지 항해하는 모험도 감내한다. 앞선 로빈슨과 마찬가지로 열대의 무인도는 풍요롭다. 그들은 별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해산물과 빵나무 열매, 그리고 야생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다. 기후와 일기도 쾌적하여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박하나마 상상 속의 이상향이라고 불릴 만하다.

 

소설이 이렇게 내내 전개된다면 주인공들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독자들은 금방 지루해하기 마련이다. 후반부에서는 파란만장한 모험담이 벌어진다. 우선 주인공들이 섬에서 원주민 간 전투에 개입하여 몰살당할 뻔했던 한 부족을 구해준다. 이어 주인공 랄프가 해적선에 잡혀가 온갖 고생을 겪는다. 이 장면에서 <보물선>이 연상된다. 우여곡절 끝에 산호섬을 돌아온 그들이 망고 섬의 원주민들과 격렬한 대립을 빚다가 갑작스런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 여기서는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당대 원주민 대상 무역과 기독교 전파에 따른 종교적 갈등의 현장이 생생하게 제시된다.

 

구성 상 다소간 억지스러운 면이 명확하고 인위적 설정이 자연스러운 몰입을 방해하지만, 눈높이를 청소년 수준에 맞춘다면 그럴듯한 재미를 안겨준 모험소설로 인정할 만하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십대 중후반의 동년배들이라면 마치 자신들이 주인공인 된 마냥 이입 효과가 더해질 테니. 아무리 그렇더라도 후반부에서 거대한 해적선을 한 명 또는 세 명의 어린 뱃사람들이 몰고 가는 장면은 사실성 부여에서 한계가 있다. 더구나 달랑 세 명이서 망고 섬의 원주민들과 맞서 전투를 벌이고 기독교 종교를 가진 원주민 여인을 구하려고 목숨을 거는 대목은 기사도 정신을 강조하는 목적성 설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역 회사에 근무했을 뿐 한 번도 해양 모험을 해보지 않은 작자가 이런 소설들을 발표한 것은 당대에 상당한 수요가 존재하였음을 가리킨다. 때는 19세기 중반,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향해 나아가던 시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무역과 해군력은 절체절명의 필수 사항이었다. 이국의 기이한 관습과 풍경에 대한 세인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아울러 사람들의 흥미와 도전 정신을 고취하고 관심을 해외로 돌리고자 하는 이해관계가 상호 맞아떨어졌다. 식인 야만인들에게 기독교 문명의 세례로 정화한다는 종교적 사명감도 대외적 팽창과 정복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그렇다고 만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당대의 시각에서는 그것은 분명 옳고도 정당한 사고이자 행동이었으므로.

 

이 작품을 청소년들이 읽도록 굳이 안내할 가치가 있을까? 분명 재미와 교훈적 측면에서라면 동종의 전후 작품들에 비하여 두드러진 장점은 없다. 문화적, 종교적 편향성도 분명히 드러난다. 구성과 전개의 비현실적 요소도 언급한 바 있다. 일단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다면 그래도 성인들이 아닌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자신들의 앞날을 선택하는 장면, 고난과 역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대목, 그리고 무엇보다도 읽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대양에서의 모험과 무인도에서의 삶 등이 주는 흥미는 일독해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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