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클래식 - 클래식 음악의 낯선 거장 49인
이영진 지음 / 현암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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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계의 49명의 음악가를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현악 연주가로 분류하여 소개한다. 이들은 어지간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매우 낯선 인물들이다. 다행이 익히 아는 인물도 음반을 가지고 있는 음악가들도 있지만 이름만 들어보았거나 처음 듣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들만이 어찌 클래식 음악계의 마이너리거겠는가. 그 외에도 무수한 실력 있는 작곡가나 연주가들이 제대로 된 인정과 평가도 받지 못한 채 역사 속에 스러져 간다. 요는 대가의 것이 아닌 생소한 곡이나 연주이므로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고정관념과 편견을 넘어서 열린 마음으로 음악과 음악가를 대할 것인가라고 하겠다. 메이저리거 음악가들에 못지않게 음악적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들도 기뻐하겠지만 개인적으로도 크나큰 혜택일 것이다.

 

애초에 소개된 음악가들에 대해 간단한 코멘트를 덧붙일 생각이었으나 얼마 쓰지 않은 촌평도 박박 지우고 말았다. 몇 줄씩만 언급해도 도대체 몇 장 분량이나 될 것인가. 최소 대여섯 장을 넘어갈 텐데 내가 무슨 전문 리뷰어나 평론가도 아니고.

 

저자가 마이너리거 음악가를 발굴하여 대중 앞에 소개한 진의를 곱씹어본다. 그들의 삶은 대개 고통과 비극으로 점철되었으며 죽음조차도 평온하게 맞이하지 못한 사례가 대다수다. 전쟁, 인종, 이념, 성격, 정치, 파벌, 가난, 질병, 사고, 매니지먼트 등 사유는 제각각 다르지만, 한 가지 그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음악의 본질을 찾아서 매진하였다. 음악 앞에 한없이 겸손하였으며, 음악 자체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일생을 헌신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이들 마이너리거들을 새삼 기억의 늪에서 꺼내올려서 독자들에게 상세한 삶과 디스코그래피를 제시하여 준 연유다. 겉멋과 허영에 물든 현대 음악계에 대한 비판의식도 잠재해 있다.

 

저자는 독자들이 그네들의 슬픈 생애에만 천착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음악가로 기억나게 하는 이유는 그들의 예술 자체에 있다. 모진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온 삶을 불살랐던 것이다. 그들의 예술성이 부족해서 청자에게 잊혔다면 할 말이 없지만, 단순히 대중적이지 않아서 미처 알지 못하여서 그네들의 음악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예술을 통해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마이너리거들에게나 독자와 청자들에게나 모두에게 비극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들도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이 공평하지 않은가.

 

그런 측면에서 소개글을 읽으면서 짧게나마 그들의 작품과 연주를 일부러라도 찾아서 듣게 된 것은 커다란 소득이다. 요하임 라프의 교향곡 5<레노레>를 들어보니 슈만과 차이코프스키의 건전한 중도풍의 인상이다. 강렬하거나 격렬하지 않고 강주에서도 온건미와 건강미가 자리 잡고 있다. 진작부터 관심 있지만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그의 음악을 듣고 싶다. 한스 로트는 어떠한가. 브루크너와 말러를 제외하면 이리 장대한 교향곡이 당대에 있을까. 1악장의 낭랑하며 유장한 개시부가 가슴을 울리며, 2악장에서는 말러에게서 익숙했던 선율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악장 역시 브루크너와 말러의 느낌이 물씬하다.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브람스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음악관에 어긋나는 로트를 인정하지 않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이므로. 로트의 단명은 차라리 숙명이다. 흑인 작곡가 윌리엄 그랜트 스틸의 교향곡에서는 재즈풍의 악상이 귓가에 확 다가온다. 프란츠 슈미트, 루에드 랑고르, 하르트만, 알란 페테르손의 음악도 하나하나 다 듣고 싶다.

 

지휘자와 연주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지휘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연주를 들어본 생소하지 않은 인물들이어서 다행이다. 폴 파레와 마뉴엘 로장탈, 유진 구센스의 유명한 사건, 명성만이 자자한 미트로풀로스와 비극적인 헤르베르트 케겔, 열광적인 카를로스 파이타, 에두아르도 마타 등등. 오스카 프리트는 연대가 오래되어 유감스럽게도 남겨진 음반의 품질이 열악하다. 바흐 음악에서 경탄하는 카를 리슈텐파르트가 소개되어 반갑고, 너무 늦게 되어서야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게오르그 틴트너의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을 전집으로 소유하고 있어서 기쁘다. 근래 들어 깊은 관심을 지니게 된 카렐 안체를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마르셀 메이에르의 라모 연주를 일찍이 듣고 그녀의 음반을 구해 가지고 있다. 마리아 유디나의 바흐와 베토벤 변주곡을 꼭 듣고 싶다. 마리아 그린베르크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도. 콘라드 한젠과 한스 리히터 하저, 윌리엄 카펠 등은 여전히 감당하기엔 내공이 부족하다. 발레리 아파나시에프와 유리 에고로프,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는 숱한 연주자 중의 하나로 치부하였는데 편견은 금물이다. 루돌프 피르쿠슈니는 레퍼토리 상 아직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디노 치아니가 기쁘다. 예전에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에로이카 변주곡을 듣고 감탄하였으며 동곡에 관한 한 나의 여전한 레퍼런스다.

 

현악 연주가들은 대체로 친숙하지 않은 편이다. 요한나 마르치는 제외하고. 크리스티앙 페라스와 마이클 래빈은 단명한 천재 연주자로서 성숙한 예술성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다닐 샤프란의 진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엔리코 마이나르디와 첼리스트 안토니오 야니그로, 윌리엄 프림로즈도 마찬가지다. 시몬 골드베르크와 롤라 보베스코는 괜찮은 인상이지만 좀 더 겪어봐야 할 듯. 이온 보이쿠, 반다 빌코미르스카, 콘스탄티 안제이 쿨카 같은 겨우 귓가를 스친 기억이 있는 연주자들이 새롭다. 갑작스레 비에냐프스키와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흥미가 당긴다.

 

이런 유형의 책은 단숨에 읽고서 던져 버릴 게 아니라 곁에 두고 가이드로서 챙겨봐야 할 부류다. 그래서 저자는 각 음악가들의 주요 작품과 음반, 연주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비인기 예술가들이므로 상당수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한계는 있지만. 여기에 소개된 음악가들과 친숙하게 되면 더 이상의 마이너리티 클래식은 존재하지 않을까? 천만에 말씀. 당장에라도 저자가 2편을 쓰게 되면 꼭 상세한 소개를 요청하고 싶은 음악가들이 한 둘이 아니다. 작곡가 아테르베리, 페르디난드 리스, 아놀드 백스, 딜리어스 등. 지휘자의 경우 한스 로스바우트, 야샤 호렌슈타인, 블라디미르 골쉬만, 콘스탄틴 실베스트리, 최초의 흑인 지휘자인 딘 딕슨도 언급해주었으면 한다. 연주자로서는 피아니스트 사무일 페인베르크, 니키타 마갈로프, 이반 모라베츠, 귀요마르 노바에스, 야코프 플리에르는 어떨지. , 이본느 르페부르도 있구나. 현악에는 미하일 바이만, 가스파르 카사도, 브로니슬라프 짐펠이 우선 떠오른다. 원래 MLB를 봐도 메이저리거보다 마이너리거의 숫자가 훨씬 많음을 여기서도 새삼 발견한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가치 있는 책이다.

 

연대 표기에서 제법 오류가 많다. 보다 꼼꼼한 교정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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