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노 쓰라유키 산문집 지만지 고전선집 615
기노 쓰라유키 지음, 강용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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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1. 고금와카집 가나 서문 (古今和歌集假名序)

2. 도사 일기 (土佐日記)

 

기노 쓰라유키는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인에 속한다. 10세기 초 헤이안 시대 전기에 칙찬 와카집인 <고금와카집>의 주 편찬자로서 가나 운문문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도사 일기>를 써서 가나 산문문학, 특히 일기문학의 효시가 되기도 하였다.

 

기노 쓰라유키는 <고금와카집>의 편찬자로서 뿐만 아니라, 가나 서문(이것도 일본 최초의 가나 산문이라고 한다.)에서 와카에 대한 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평론가이기도 하다. 가나 서문은 와카의 본질과 효용, 기원, 표현 형식, 역사와 편찬 경과로 구성되는데, 논리적으로 배열된 체계만 보더라도 치밀한 이론적 분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와카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견해다.

 

야마토 노래, 즉 와카는 사람의 마음을 씨앗으로 해서, 무수한 말이 잎이 된다......본 것이나 들은 것으로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말로 표현한 것이 노래다.” (P.37)

 

그는 서문 서두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이는 와카의 본질인 동시에, 보편적인 시와 노래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다.

 

여섯 가지 표현 형식에 대해서는 분명한 이해와 공감이 들지 않으며, 오히려 기원과 역사가 보다 흥미롭다. 만엽집 시기인 나라 시대의 히토마루와 아카히토를 거쳐 소위 당대의 6가선의 작품 특성에 대해 형식과 내용, 기법 등의 관점에서 명료하게 비평을 가하고 있다.

 

노래의 모습을 이해하고 사물의 참된 의의를 분별하고 있는 사람은 넓은 하늘의 달을 보는 것처럼 노래가 처음 흥륭했던 옛날을 우러러보며, 이 책이 편찬된 지금 세상을 반드시 그리워할 것이다.” (P.61)

 

저자는 위의 문장으로 서문을 끝맺는다. 자신이 이룩한 과업에 당당한 자부심이 드러난다. 아울러 저자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도사 일기><고금와카집>이 편찬된 후 거의 삼십 년 후에 저자가 도사(현재의 시코쿠 남부) 지방관 임기를 마치고 수도 교토로 돌아가는 두 달 간의 여정을 기록한 글이다. 역자의 해설처럼 일기(日記)는 기존에 기록 내지 실록의 성격이 강하였는데, 기노 쓰라유키는 문학으로서 일기 장르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특이하게 여성 저자임을 가장하고 있는데, 남성으로서 가나 글을 쓰는 데 대한 은폐와 아울러 제삼자적 시각을 통해 관찰과 묘사에 있어 상대적 자유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당대의 바닷길 여행이 험난했음을 곳곳에서 알 수 있다. 불순한 날씨 때문에 출항을 못하고 오미나토에서 열흘을, 무로쓰에서는 일주일이나 항구에서 대기하였으며, 오미나토에서 나하까지는 밤새워 노를 저었다고 하므로 항해술과 장비가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서 뱃길 여행은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저자와 그의 아내는 도사에서 사망한 딸에 대한 애틋함과 슬픔의 감정을 항해 중 도처에서 드러낸다.

 

수도로 돌아가게 되나 다만 딸아이가 없는 것이 슬플 뿐이고 한없이 그리워진다.” (P.68)

 

모두 다 생각나고 어느 것이나 전부 정겹고 그립게 생각되는 중에 이 집에서 태어난 여자애가 함께 돌아오지 못한 것이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P.114)

 

작중 인물들은 많은 와카를 읊는데, 작자에 남녀와 노소의 구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당대에는 와카 짓기가 일상화되어 기본적 소양으로 여겨진 듯하다. 기쁨과 슬픔도, 두려움과 안도의 심경을, 멋진 경치를, 내면의 상념을 노래로 주고받는 장면은 급박한 상황마저도 아취와 운치 있게 변화시킨다.

 

수년 만에 돌아온 집은 관리인의 소홀로 퇴락한 자취가 역력하다. 저자는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이렇게 <도사 일기>에서 저자는 종래 기록의 성격을 뛰어넘어 개인의 감정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로써 여류 문인에 의한 후대 일기 문학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니 비록 길지 않은 글이지만 그 의의는 제법 묵직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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