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재기 외 을유세계문학전집 33
히구치 이치요 지음, 임경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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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1. 섣달그믐

2. 키 재기

3. 탁류

4. 십삼야

5. 갈림길

6. 나 때문에

 

히구치 이치요는 일본 근대문학사 상에서 독보적인 여류작가이다. 불과 24세의 새파란 나이에 요절했다는 생의 이력은 그가 남긴 몇 편 안되는 단편들의 탁월한 작품성에 장식적 아우라를 더해 준다. 물론 그의 작품에 내재된 조숙한 천재의 반짝거림과 더불어 시간의 무게만이 부여할 수 있는 노숙함의 결여는 피할 길이 없다. 특히 일부 초기작은 이러한 순진함이 이야기를 문학이 아닌 흥미로운 미담(美談) 차원으로 퇴색시키기도 한다.

 

이런 약점을 넘어서는 그의 대단한 점은 20세기가 시작하기 이전에 작품 활동을 마감하였음에도 넘칠 정도로 충분한 근대성을 선취하고 있다는 데 있다. 때는 문호 개방과 메이지 유신 이후 20여년 만에 남성 작가들도 근대성의 원초적 의미를 갓 발견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처지에서, 평생 가난에 허덕이는 입장에서 그의 글에는 유한계급 사람들의 여흥으로서의 글쓰기와는 구별되는 지향점을 찾을 수 있다.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그네들을 향한 따뜻한 공감과 연민은 사회적 하층계급(하녀, 화류계 여성 등)에 대한 시선으로 확산된다.

 

먼저 <섣달그믐>은 한 편의 결말 반전의 에피소드로 간단히 치부할 수 있지만, 빈부와 사회적 지위 격차에 대한 원시적 인식이 순진하게 드러나 있어 흥미롭다. 하녀 오미네는 단돈 이 엔이 절박하지만, 주인여자에게는 일일이 신경 쓰기도 싫은 사소한 사안에 불과하다. 여기에 전처소생의 장남과 계모 간이라는 가정 내 전통적 대립 요소가 반영되어 집안 갈등을 증폭시킨다. 장남 이시노스케의 심중에 든 생각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이치요는 생활고 때문에 유곽 근처에서 한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 당시의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 <키 재기>인데,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이 책에서도 표제작으로 내세우고 있다. 읽어보면 확실히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는 종종 유곽에도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요시와라와 현대의 유곽이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음을 감안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내세울만한 곳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이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인식과 태도, 관계와 감정의 생성과 변화를 다룬 일종의 성장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

 

축제날에 한바탕 큰길파와 골목파 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져 소동이 일어났지만 그들 모두는 결국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자라날 것이다. 고리대금업자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처럼 토목 기술자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신뇨처럼 출가하는 아이도.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집 아이는 역시 가난함을 무릅쓰고. 그들에게 어린 시절의 떠들썩한 일화와 친우들은 조만간 추억으로 회상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라서 커나가고 어른이 되는 법이다.

 

언제나 항상 인형놀이나 하고 소꿉장난만 하고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 아아, 싫어, 싫어. 어른이 되는 것은 싫어. 왜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거야. 하다못해 일곱 달, 열 달, 아니 일 년 전으로 돌아갔으면” (P.93)

 

언니의 뒤를 따라 게이샤가 되는 미도리의 상념과도 같이. 철부지 어린 시절이야말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다. 이치요도 우리도 그것을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풋풋함은 곧 다가올 거센 세파와 대비되어 더욱 아련한 아쉬움과 애상을 불러일으킨다.

 

유곽, 집창촌, 창녀촌, 매음굴 등 지칭하는 용어는 다르지만 이들이 가리키는 본질은 동일하다. 그곳은 유녀, 매춘부, 창녀라 불리는 여성들과 이들의 몸을 찾는 손님들과 소위 상거래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이치요는 <탁류>에서 이곳의 인물과 정경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유곽은 역사적으로 그 어디에서도 사회적으로 환영받고 인정받는 존재가 아니다.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사실의 존재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유곽이 생성되고 운영되는 현실, 양갓집 여인이 유녀로 전락하게 되는 사회경제적 현상을 직시하자. 가정을 가진 남성들이 유녀에게 홀려 가산과 가정을 탕진하고 수렁으로 몰아넣게 되는 참혹한 현실도 실재한다. 작가는 시끄럽게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양태를 간명하게 기술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빈곤층 여성이 사회적 지위를 일거에 제고시킬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는 부유한 집안에 시집가는 방법이다. 특히 여성의 외모가 뛰어난 경우 매우 유리하고 가능성이 높은 전략이다. 이렇게 신분차를 뛰어넘어 결혼에 이른 여인네들의 삶은 과연 행복한가. 이렇게 작가는 묻고 있다. 전형적인 불행의 사례를 눈앞에 제시하면서. 달님에게 경단을 바치는 <십삼야>의 밤에 친정으로 가출한 오세키와 아무것도 모르고 딸의 결혼의 결과에 흐뭇해하는 부모의 모습이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사랑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결혼 생활이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뒤늦어서야 깨닫는다. 지위, 재산 등과 같은 요소는 일종의 겉치장에 불과하다. 자신의 인생에 삶의 의의를 두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장식은 소임을 다하면 잊혀지고 버려지기 십상이다. 그때 비로소 애써 숨겨두고 눌러왔던 본연의 속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우리들은 회한에 눈물짓는다. 오세키와 이사오, 오세키와 로쿠노스케 역시 시대가 낳은 비극의 소산이다. 이치요도 알 것이다. 이것이 당대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시대를 막론하고 지역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공통된 슬픔이라는 사실을.

 

<갈림길>은 빈곤층 젊은 여성의 또 다른 대안을 보여준다. 부유한 집의 첩으로 들어앉는 선택이다. 허영에 들떠 첩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자발적 선호로 첩의 길을 무릅쓰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발버둥쳐도 소용없는 가난과 현실을 탈출하는 최후의 마지못한 수단이다. 오쿄는 바느질 일만 하는 삶에 지쳤을 것이다. 해도 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호구지책에만 급급한 자신의 처지. 눈앞에 꿈으로나마 터널의 빛나는 출구를 바라볼 수 있다면 고생도 가난도 기꺼이 달게 감수하련만. 기치조는 이런 오쿄를 이해하지 못한다. 열여섯 꼬맹이에 불과한 외톨이지만 그는 시대에 당당히 도전할 패기를 지니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가능성을 지닌 남자이므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오쿄와 기치조의 선택은 이렇게 서로 다르다.

 

<나 때문에>는 비정한 작품이다. 부부 관계, 나아가 인간 관계에서 외화(外華)를 향한 욕망의 뿌리 깊음과 물질 욕구에 대한 집착의 폐해를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와 유사하게 화류계에 바람 들린 아내의 가출로 남편은 하급관료에서 오직 돈을 부르짖는 고리대금업자로 변모하여 수만금의 부자가 된다.

 

데릴사위로 막대한 재산의 소유자가 된 사위에게 아내는 이제 거치적거리는 존재에 불과하다. 애시당초 그들에게 순수한 애정은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자식이라도 있다면 공통의 화제거리가 생기겠지만 이마저도 없으니 둘 사이는 더욱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아내는 고귀한 집안 출신도 아니며 품위나 행동거지 면에서도 고위 관료인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밖에 나가면 자신에게 온갖 아양을 떠는 예쁘장한 여인네들이 화류계에 넘쳐난다. 부부 사이의 파국은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서서히 갈라지는가 아니면 치졸함과 결합하여 급격하게 무너지는가는 부부에게 달려있다.

 

이치요는 서구 근대문화의 세례를 받지 못하였다. 해설에 따르면 그의 문체는 근세 일본의 전통적 문체를 답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외형적 한계에서도 그의 작품 내용이 당대의 주류 작가들이 인지하지 못한 사회의 깊은 저변을 훑어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짧은 생과 맞물려 경이롭기조차 하다.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과, 살아온 이력 및 주변 환경을 작품세계에 반영한 결과로 작품의 주인공이 가난한 집안의 여인으로 비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낮은 신분, 그리고 성적 피지배계층인 여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젊은 여성들의 삶의 행로는 선택에서 오늘날과 달리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단 미모를 무기로 상류층 집안과 결혼하여 일거에 제약을 뛰어넘는 방안이 최선이다. 정실부인(<십삼야>)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첩이 되는 길(<갈림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에 마음의 끌림은 고려 요소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현재의 처지를 불가피하게 인정하고 가난하지만 정직한 길을 답습하는 대안이다(<섣달그믐><나 때문에>의 전반부). 하지만 여기에도 위험은 있다. 사람의 마음은 연약하기 그지없어 유혹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표피적 화려함에 압도되어 걷기로 결심한 길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그것이 도덕적 무감각과 결부되면 게이샤가 되어 화류계에 종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탁류>). 화류계로 통칭되지만 층위는 상이하다. 단순 매춘부에서 고급 게이샤에 이르기까지. 마치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집창촌의 여성들과 소위 강남의 텐프로로 일컬어지는 여성들 간에 인식상 넘사벽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키 재기>에서 초키지, 쇼타로, 산고로, 신뇨 등이 훗날 어떻게 성장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저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들의 미래의 모습이 전부 바람직하고 훌륭한 형태로 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난다. 온실의 화원에서도 부패한 독초가 생겨나듯이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어나오는 게 가능하다. 인생의 행로에서 환경 요인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미도리가 어엿한 유녀로 성장하는 대목에서 가슴 한켠이 아릿하지만 그나마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작가 이치요의 나직하고 절제된 어조의 덕택이다. 원치 않은 일이었겠지만 그녀는 세상의 빛과 어둠을 너무 빨리 봐버렸다. 삶의 숨겨진 원리를 너무 일찍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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