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꿈을 보았다 - 일본 모던 판타지 걸작선
고다 로한 외 지음, 유은경 옮김 / 향연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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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1. 만개한 벚꽃 나무 숲 아래 (사카구치 안고)
2. 주문이 많은 요리점 (미야자와 겐지)
3. 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4. 쥐 고개 (모리 오가이)
5. 열흘 밤의 꿈 (나쓰메 소세키)
6. 풍류불 (고다 로한)


부제가 ‘일본 모던 판타지 걸작선’인데 굳이 판타지라고 장르를 한정할 필요 없이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주요 단편 작품집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오층탑>의 작가 고다 로한의 또 다른 작품 <풍류불(風流佛)>이 수록되어 있어서다. 단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편이라고 해야 할 로한의 이 작품에서도 확실히 불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불상조각가 슈운이 구도 편력 중 우연히 위기에서 구해 준 오타쓰라는 아가씨와의 러브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소재는 물론 구성에서도 불교 경전인 <법화경>의 십여시(十如是)를 소제목으로 하여 사건의 전개를 이에 맞추고 있어 독특한 인상을 준다. 로한의 문체는 의고적이어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느낌도 있고, 작가인 화자가 중간에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감회를 토로하는 대목은 일전에 읽었던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뜬구름>을 연상시킨다. 명사로 끝나는 문장이 많은 점과 아울러 확실히 근대화 이전의 문학적 특성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따금씩 표출되는 속물적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인식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느끼한 서양 먼지도 여기까지는 날아오지 않고” (P.162)
“생각이 짧은 소녀적인 감성이 도시풍의 경박한 세태에 휩쓸려 변해 버린 것인가.” (P.215)

 

슈운이 떠나버린 오타쓰를 생각하며 혼신을 기울여 조각한 그녀의 목각상은 그대로 풍류불이 되었다. 풍류불이라는 부처도 있었나? 어쨌든 풍류불을 통해 슈운과 오타쓰는 신적인 존재로 승화되었다는 결말이다. 남녀 간의 돈독한 애정과 깊은 신심의 연결이 이채롭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은 ‘주문’의 주체에 대한 다른 해석이 가져오는 반어적 결말이 무척 흥미롭다. 여기에 고양이와 개라는 동물 간 뿌리 깊은 대립적 행태는 동과 서를 불문하고 유사함을 알게 된다. 짤막하지만 점층되는 긴장감과 압박감의 고조가 인상적이다.

 

<코(鼻)>도 역설적인 상황 인식의 묘미를 그려낸다. 코끼리처럼 커다란 코를 지닌 노승이 갈망하던 대로 코가 줄어들었음에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방관자의 이기주의’라고 명명된 대로 사람들은 평소에는 동정심을 보여주었던 불행한 사람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면 서운함을 느끼고 심지어는 비난을 하기까지 한다. 코가 하룻밤 사이에 원래대로 커지자 노승이 오히려 후련함을 느끼게 되는 연유를 알기에 오히려 우리는 우스우면서도 슬프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조만간 작품집을 읽을 계획을 갖고 있는 작가다.

 

모리 오가이의 <쥐 고개(鼠坂)>가 여기에 실려 있는 점은 반갑기도 하면서 의외였다. 그의 작품에 판타지 성향이 있었는지 의아스럽다. 러일전쟁 당시 숨어있던 젊은 여인을 발견하여 몹쓸 짓을 하고 몰래 살해한 사람이 7주기를 맞는 날에 피살자의 환상을 보고 죽는다는 내용이다. 군의관으로서의 작가 자신의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전쟁 중 잔학 행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귀신 이야기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다만 오가이만의 특성을 잘 드러나지 않은 편이다.

 

<만개한 벚꽃 나무 숲 아래>와 <열흘 밤의 꿈(夢十夜)>은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나마 나름대로 줄거리가 짜여있는 전자가 내용 이해에 용이하다. ‘만개한 벚꽃’에 대한 오늘날의 이미지라면 단연 봄철 벚꽃 축제로 대변되듯, 사람들의 환성과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화사한 정취라고 할 것이다. 특히 달 밝은 밤 또는 가로등에 비친 밤 벚꽃의 아름다움과 바람 불면 눈 내리듯 흩날리는 꽃잎의 비애 섞인 미감 등.

 

작가는 벚꽃이 아름다움과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잔인함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꽃 중에서 팜므 파탈이라고나 할까.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며 정신을 빼앗기기조차 한다. 그래서 작가는 서두에 벚꽃의 절경에 대한 상찬은 거짓말이며, 옛날에는 오히려 벚꽃 밑이 무섭다고 했음을 지적한다.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쉽사리 해치우는 산적과, 사람 머리통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하는 여자. 여자의 아름다움은 산적의 혼을 빨아들일 것처럼 무섭다.

 

“눈동자도 영혼도 저절로 여자의 아름다움에 빨려 들어가 꼼짝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한편 남자는 불안했습니다. 어떤 불안인지, 왜 불안한지, 뭐가 불안한 건지 그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P.23)

 

여자가 사람 머리통을 가지고 노는 장면은 엽기와 그로테스크 그 자체이다. 새삼 작가인 사카구치 안고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정도다. 오페라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세례 요한의 목을 가지고 희롱하는 대목이 연상된다.

 

다시 만개한 벚나무 숲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여자가 귀신이었음을 산적은 불현 듯 깨닫는다. 산적이 죽인 여자는 꽃잎으로 산화해 버리고 산적의 몸도 사라져버린다. 여자 없이는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으며, 돌아갈 곳도 없는 고독 그 자체가 되었다.

 

<열흘 밤의 꿈>은 나쓰메 소세키의 제법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이성은 우선 열흘 밤의 꿈 이야기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으며, 게다가 각각의 꿈 이야기가 매우 모호하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해득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의 저작이라도 읽었던 것인지 꿈과 무의식과 환상이 뒤섞여 꿈을 꿈으로만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꿈은 비합리와 비논리가 용납되는 시공간이다. 꿈은 현실도 아니지만 순전한 환상과 가상의 영역도 아니다.

 

각 꿈은 “이런 꿈을 꾸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표제도 여기에서 빌려온 게 아닐까. 각 꿈은 죽음과 사랑, 귀신, 공포, 예술의 근본, 기원, 슬픔, 유혹 등이 희미한 색채를 띠면서 일본 전래의 설화적 이미지와 교묘하게 엮여져 있다. 이 작품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에 대한 선행적 탐구가 필요하다. 지금은 이대로 낯설고 생경하며 요령부득이고 허무맹랑한 느낌마저 드는 이 상태로 그냥 놔두련다. 연말 또는 연초 쯤 되면 소세키의 작품을 시작할 수 있을 차례가 된다. 그때 다시 이 작품을 펼치게 될 기회가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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