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지만지 희곡선집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이용복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의외의 작품에 뒤통수를 맞는 격이 있다. 잘 알지 못하던 작품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는 사례가 그것이며,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등한시하거나 짐짓 무시하던 작품을 정독하다가 자신의 오만과 무지에 탄식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내게 후자의 뒤통수를 안겨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천견(淺見)에 사과를 바친다.


<파랑새>라는 작품은 어지간한 유치원생도 알고 있다. 비록 동화로 압축되어 번안되었지만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가 깨어보니 자신들의 새가 바로 파랑새였다는 사실의 기본 줄거리는 변함없다. 그래서일까. 행복은 가까운데 있다는 상투적이며 진부한 교훈과 식상한 줄거리 등 전형적인 아이들 동화로 여겨져 원작을 읽어볼 생각조차 품어보지 않았다.


일단 동화는 잊자. 원작은 아동극의 형식을 취했지만 전 6막 구성의 당당한 희곡이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도 잊자. 이들의 원래 이름은 틸틸과 미틸이다. 책을 펴들고서 등장인물 소개에서 익숙한 두 이름이 나오지 않아 잠시 당황스러웠다. 우리네 문화에서 일본의 잔재와 영향이 얼마나 심대한지 여기서도 알 수 있다. 


1. 인간과 자연(혹은 영혼)


가장 놀랐던 점은 등장 캐릭터 간의 화합할 수 없는 대립구도다. 틸틸과 미틸, 개와 빛이 인간계의 입장이라면, 고양이와 밤, 나무들은 전형적인 반인간계 편에 서 있다. 특히나 고양이의 교묘한 처세가 눈길을 끈다. 반인간계에서는 인간들이 파랑새를 입수하는 것을 극구 저지하려고 한다. 


“여기 있는 모든 이들, 동물과 사물 그리고 원소들은 인간이 아직 알지 못하는 영혼을 지니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남아 있는 독립이나마 지키는 거예요. 하지만 인간이 파랑새를 발견하게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을 보게 될 거예요. 그럼 우리는 완전히 그의 손아귀에 들게 돼요.” (P.43, 고양이)


“우리는 모두 이름 없는 독재의 희생자들이 아닌가요? 독재자가 오기 전에 우리가 자유롭게 이 땅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해 봐요.” (P.45, 고양이)


그들은 인간은 자신들의 적이라고 확실히 단언한다.


“그 애는 태초 이래 당신들이 인간에게 숨겨온 파랑새를, 유일하게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파랑새를 찾고 있어요.” (P.89)


나무들과 고양이는 마침내 두 어린 인간을 죽이려고 한다. 두 주인공은 개의 도움으로 치열한 싸움 끝에 겨우 구사일생하게 된다.


2. 파랑새의 의미


여기서 파랑새의 의미가 동화와는 다른 뉘앙스를 갖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파랑새는 그 자체로서 목적적 중요성을 지니기 보다는 일종의 수단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떡갈나무의 대사가 이를 입증한다.


“넌 파랑새를 찾고 있지. 말하자면 인간들이 우리를 보다 가혹하게 지배하기 위한, 사물과 행복에 대한 커다란 비밀 말이지.” (P.96~97, 떡갈나무)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비밀도 빼앗아갈 수 있소... 그런데 우리는 인간을 잘 알기 때문에 그가 이 비밀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가할 운명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소.” (P.98, 떡갈나무)


작가 자신은 파랑새의 의미에 대해서 철학서적 한 페이지보다도 번역이 어려울 것이라고 일찍이 밝혔다. 파랑새의 의미가 그렇게 상투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움을 암시하는 것이다. 고양이와 밤과 나무들이 극력 결사적으로 이들을 가로막은 것도 단순한 반감이 아니라 자신들의 비밀을 뺏기고 완전히 지배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파랑새는 비밀을 여는 열쇠인가?


인간들이 파랑새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어떤 현상이 생길 수 예상할 수 있는 단초가 여기에 있다. 남매는 요정의 도움으로 다이아몬드 모자를 얻게 되고 다이아몬드를 돌리면 그들이 “눈을 뜨게”(P.25) 한다. 작가의 전작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서도 ‘보다’라는 의미가 외면상 시각적 차원을 넘어서서 내면과 본성, 미래와 운명을 읽을 수 있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3. 참된 인식으로서의 보기


요정은 남매가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눈을 뜨게 되자 사물 속의 영혼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눈을 감으면 다시 종래대로 돌아간다.


“환상적이지, 반대로... 그럼 즉시 사물 속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단다.” (P.25, 요정)

“우린 이제 사물들의 진실을 보고 있어.” (P.135, 빛)

“멀리 가지 않아, 얘들아. 저기, 사물들의 침묵의 세계로...” (P.187, 빛)


눈을 뜬 남매에게 나무들처럼 자연과 사물의 영혼들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아니야, 그들은 항상 그래.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하지. 왜냐하면 보지 못하니까...” (P.111, 빛)


인간은 실상 적대적인 존재에 의해 포위된 삶을 살고 있다. 단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홀로 모든 것과 대면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았지...” (P.111, 빛)


4. 행복을 다시 생각하다


남매는 행복의 정원에서 다양한 유형의 행복과 마주친다. 나무들의 공격에서 생사의 고비를 겪은 만큼 그들에게 행복이 주는 기쁨은 남다를 것이다. 빛은 그들에게 정원 바로 옆에 불행의 동굴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행복이 반드시 좋고 바람직한 것만은 아님을 상기시킨다.


“일반적으로 행복들은 아주 친절하지만 몇 명은 가장 커다란 불행보다 더 위험하고 더 사악하단다.” (P.124, 빛)

“두려워하고 또 행복하지 않은 행복들도 많이 있으니까.” (P.125, 빛)


행복 중에서 가장 뚱뚱한 행복은 자신들의 형제를 소개하는데, 허영심이 충족되는 행복, 목마르지 않을 때 마시는 행복, 배고프지 않을 때 먹는 행복,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복, 상스러운 웃음 등이다. 


“저들은 위험해. 그리고 네 의지를 꺾어버릴 거야. 우리가 수행할 의무를 위해 뭔가를 희생할 줄 알아야만 해.” (P.129, 빛)


이것들이 위험한 이유는 위와 같다. 이는 제1장에서 요정이 존재들에게 화를 낸 연유와 유사하다. 바로 현실 안주!


“이런 참 바보들이군! 어리석고 겁쟁이들이야! 너희들은 파랑새를 찾으러 가는 아이들을 따라가기보다는 너희들의 보잘것없는 그릇 속에서, 마룻바닥 문 속에서, 수도꼭지 안에서 계속 사는 것을 더 좋아하지?” (P.34, 요정)


빛은 남매에게 진실하고 순결하고 참된 행복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사람들은 지상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행복을 만나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어...” (P.136, 빛)


그리고 만나는 행복의 무리는 그들에게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바로 일상의 주변에 널려 있음을 가리킨다.


“너의 집에 행복이 있냐고! 불쌍한 녀석! 집은 문과 창문들이 터질 정도로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데! 


건강하게 지내는 행복, 맑은 공기의 행복, 부모를 사랑하는 행복, 푸른 하늘의 행복, 숲의 행복, 태양이 빛나는 시간의 행복, 광란하는 에메랄드 빛의 봄의 행복, 석양의 행복, 별들이 뜨는 것을 보는 행복, 진주로 덮인 비의 행복, 겨울날의 불의 행복, 순진무구한 생각의 행복, 이슬 속에 맨발로 뛰어가는 행복 등등.


그리고 행복과 함께 커다란 기쁨들이 어울린다. 여러 기쁨 중에서 가장 순결한 기쁨은 모성애라는 기쁨.


행복과 기쁨의 원리는 망자의 세계에도 적용된다. 추억의 나라로 돌아가 보자.


“너희들이 생각으로 우리를 방문할 때 그게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고 굉장한 축제가 된단다! 

우린 즐거운 일들이 달리 없단다...” (P.63, 할머니 틸과 할아버지 틸)


나중에 틸틸과 미틸이 꿈에서 깨었을 때 자신의 집이 어제와 마찬가지이지만 훨씬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 것은 그들이 행복의 진의(眞意)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함을 느낀다.


“난 정말 행복해, 행복해, 행복해! 

나도 역시, 나도 역시!

......

이런!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예뻐. 그리고 난 정말 행복해!” (P.198, 틸틸과 미틸)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상념을 더 언급하련다.


인간들이 제대로 보게 되고 참된 행복의 의의와 가치를 찾게 되는 것은 나무들을 비롯한 존재들에게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인간들은 사물들을 좀 더 존중하고 제대로 대우하지 않겠는가.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오래되고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가정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과 사물에 정복자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인간은 지배자이고 만물을 전횡할 수 있는 절대적 권력자이며, 만물은 단순한 대상이자 도구에 지나지 않게 간주하였다.


인간들의 본성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개심하여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만물이 진정한 가치와 영혼을 알아볼 리가 없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만물의 입장에서는 결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나무들의 필사적인 공격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홀로 모든 것과 대면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았지...” (P.111, 빛)


빛의 말마따나 인간은 세상에 홀로 선 존재다. 밤의 한탄도 다소간 이해된다.


“몇 년 전부터 난 더 이상 인간을 이해하지 못해. 어쩌자는 거지? 모든 걸 다 알아야만 한단 말이야? 인간은 벌써 내 신비의 3분의 1을 알아차렸어.” (P.69, 빛)


인간은 과학기술의 개발로 더 이상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일출과 일몰이 인간의 활동 시간을 한계 지었는데 전등이 개발되면서 더 이상 밤은 인간에게 공포의 시간이 아니다. 개는 다른 동물에게서 인간을 지켜주었고, 빛은 인간에게 밤을 물리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사물들이 개와 빛을 인간과 한편으로 간주하는 것은 당연하다.


“빛은 인간 편에 섰어요, 그녀는 우리의 가장 위험한 적이죠.” (P.45, 고양이)


틸틸과 미틸의 파랑새를 찾기 위한 꿈속 모험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추억의 파랑새는 검게 변했고, 미래의 파랑새는 온통 붉게 되었어요. 밤의 파랑새는 모두 죽었고, 숲의 파랑새는 잡을 수가 없었어요.” (P.180~181, 틸틸)


그럼에도 모험은 성공하였다. 파랑새는 구하지 못했지만 파랑새의 의미를 찾는 데는 성공하였다.


“넌 저기에서 네가 나를 볼 때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깨닫고 또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 거야......우리가 서로 안아주는 곳이면 어디나 다 천국인 거야.” (P.147~148, 모성애)


마지막 장면의 매우 시사적이다. 그들은 파랑새를 놓쳐버렸다. 소녀는 새가 떠났다며 절망의 비명을 지르지만, 미틸은 의외로 담담하고 대범하다. 그는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데, 이는 이미 깨달은 자의 어조다.


“혹시 누군가가 그 새를 발견하면 우리에게 돌려주시겠죠? 우린 나중에 행복해지기 위해 그 새가 필요하거든요.” (P.201, 미틸)



※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이지 않은 듯하다.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운명의 엄혹성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인식이 여전히 이 극작품을 감싸고 있어 아동극의 외피를 무색케 한다.


첫째, 제1장에서 부잣집 아이들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장면을 엿보면서 남매가 주고받는 대사


미틸: 저 애들은 왜 금방 먹지 않지?

틸틸: 배고프지 않으니까...

미틸: (놀라서) 배고프지 않아? 왜?

틸틸: 먹고 싶을 때 먹으니까...

미틸: (믿지 못하며) 매일?

틸틸: 그렇다고 해... (P.17, 틸틸과 미틸)


둘째, 제10장 미래의 왕국에서 내년에 동생으로 태어날 아이와의 대화


틸틸: 가방에 뭘 가지고 있지? 우리에게 뭘 가져왔니?

아이: (매우 자랑스럽게) 난 세 가지 질병을 가져왔어. 성홍열, 백일해, 홍역...

틸틸: 그게 전부라면! 그럼 다음에는 뭘 할 거니?

아이: 그 다음에는! 떠날 거야...

틸틸: 오는 건 정말 고통이겠구나!

아이: 선택의 여지가 있어? (P.167, 틸틸과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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