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8
모리 오가이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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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1. 기러기
2. 다카세부네
3. 산쇼 대부
4. 성적 인생

 

<성적 인생>을 제외한 소설들은 이미 타 작품집에서 읽었으므로 국내 초역의 <성적 인생>이 오늘의 관심사다. 이 작품이 게재된 잡지는 당시 발매금지가 되었다고 한다. 현직 육군 장성이 쓴 중편 소설이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니 당시로서는 상당한 스캔들일 수밖에.

 

중년의 한 철학자가 자신의 반생을 성욕적 관점에서 회고한다. 당대 유행하던 자연주의 소설은 작중 인물의 행동을 항상 성적 관념과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인생의 본질을 잘 파헤친 것이라는 세간의 호평을 얻었다. 굳이 프로이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성욕의 시각에서 사람들의 삶을 분석한다면 만사는 모두 성욕의 억압과 왜곡, 발현 등으로 설명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화자는 유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 매우 사소할지라도 성적 관점에서 유의미한 사건을 모두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가나이의 회상에서 춘화, 음담, 엿보기 등은 우리네들에게도 익숙한 경험이므로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게이샤라는 직업군은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잠깐, 수많은 단란주점은 무엇이며, 아래로는 사창가에서 위로는 소위 텐프로에 이르는 음지산업의 활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현대에는 과거에는 없는 야사와 야동이라는 용어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이미 대중에게 친숙한 어휘로 자리 잡았다. 이런 문화적 환경에서 아이들이 성적으로 무균질 환경에서 자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또 기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상대적으로 개방된 성 문화를 가진 일본임을 고려하더라도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남색(男色)의 보편화이다. 소년 시절부터 학교 기숙사 등지에서 남색이 성행하여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단도를 필요로 할 지경이었다는 점은 당대 일본의 성 문화의 일단을 알게 해준다. 연파와 경파라는 집단의 구분이 이채롭다. 일본 당국이 발매금지시킨 사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유감스럽게도 남색이라는 용어는 요즘 젊은 층에 낯선 표현이지만, 영어 단어인 ‘호모’ 또는 ‘게이’는 매우 친숙하다. 일상생활에서도 스스럼없이 사용할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하기야 서구 일부에서는 동성 결혼도 이미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니 놀랄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모리 오가이가 사회적 파장을 무릅쓰면서까지 이 작품을 쓴 동기를 추정해본다. 우선 작중에도 드러났듯이 자연주의 소설에 대한 반감이다. 인간의 행동과 사건을 성욕적 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설사 일단의 진실을 포함하더라도 침소봉대며 과도한 극단화가 아닐 수 없다. 회고담을 훑어보면 기실 성적으로 중차대하고 극적인 사건은 거의 없다. 사랑과 연애의 감정마저도 성욕으로 무리하게 재단하는 사례가 더 많다.

 

그리고 당대 사회의 도덕적 위선과 허울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외면적 도덕기준과 내면적 행태 간 격차가 심한 법이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지만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사람들이 바로 위선자에 해당한다. 작가가 보기에 당대 일본사회는 인간의 자연스런 성적 감정을 억압하고 왜곡하면서 오히려 고상한 척 자화자찬한다. 정말로 같잖고 역겨울 수밖에 없다.

 

성적 인생을 다루었으며 내용도 모두 성욕에 관련되었지만 음란하고 외설적인 느낌은 주지 않는다. 이 글에서 작가의 어조는 지극히 담담하며 관조적이다. 표현도 매우 절제되어 있고 세부 묘사를 아끼고 있다. 그의 문체가 원래 그렇다. 품위와 격조를 항상 유지한다. 흥겹더라도 망가지지 않고 술을 마시더라도 비틀거리지 않는다. 박장대소보다는 미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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