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멜라 2 대산세계문학총서 80
새뮤얼 리처드슨 지음, 장은명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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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권에 비하면 다소 장황하고 지리함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그것은 B씨의 개과천선 및 파멜라에 대한 정식적 청혼과 이후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죽 나열되고 있음에 연유한다. 흡사 주인공의 치열한 분투를 그린 TV 드라마가 주인공의 성공 이후에 갑작스레 긴장이 풀리고 느슨해지는 것과 유사하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안은 작가의 뛰어난 문체적 역량 아니면 새로운 갈등 구조의 도입이 될 것이다. 리처드슨은 후자를 택하였다.

 

파멜라에 대한 스콰이어 B씨의 감정과 태도는 점차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단순한 열정의 대상에서 인생의 동반자로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는 것이며, 이것은 호칭 변화를 통해 두드러진다. 처음에 B씨는 하인들 앞에서 파멜라를 언제나 그 애또는 그 년등 여실히 주인으로서 하녀에 대하는 게 확실한 하대를 하였다. 이것이 어느 순간 아씨라는 호칭으로 격상(P.65, P.71)된다.

 

작중에서 B씨는 악과 선으로 커다란 내외적 변모를 이루는 반면, 파멜라는 시종일관 흠결 없는 자세를 유지한다. 1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언행은 완벽하고 지혜와 사려가 깊으며 신앙 면에서도 독실하다. 게다가 사상 면에서도 일면 평등의식을 품고 있을 정도로 앞서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가 원래 동등했잖아요...이 오만한 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를 결코 생각하지 않는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자만하더라도 그들이 어쩔 수 없이 굴복해서 우리와 동등하게 되어야만 하는 때가 올 것이라는 것도 생각지 않나 봐요.”(P.76~77)

 

이 작품에 대한 당대와 후대의 많은 비판 중 하나는 지나치게 모범적이고 완벽한 파멜라가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때로는 가식적인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부모님께 알려드린다는 미명 하에서 자신에게 벌어진 남녀 관계의 제반사를 천진난만하게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떠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순진을 가장한 허영의 그림자가 살짝 스치는 느낌도 드는 게 (아주 조금이지만) 사실이다. 후에 B씨의 누이 레이디 대버스와 벌어진 일을 B씨에게 천진하게 이야기하는 파멜라를 보면서 정말 순수하던지 아니면 남매관계를 분열하기 위한 가식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한편 B씨에 대한 파멜라의 심적 태도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그녀는 귀족의 첩이 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지만, 정식 아내가 된다는 것에는 환호작약하며 받아들인다. 그녀가 누리는 지극한 행복감은 내심에 이를 진작부터 기대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 그녀의 내밀한 욕망이 드러나는 대목은 결혼 후 아내로서 집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며 나날을 보낼지를 B씨에게 말하는 장면(P.86~89)인데, 장장 3면에 걸쳐 거침없이 나열함으로써 자신이 준비된 아내임을 표출하고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파멜라에 대하여 삐딱한 시각으로 보는 태도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뛰어난 인물에 대하여 시기심을 품는 경향이 크다. 지나치게 훌륭하면 오히려 반감을 초래한다. 옛말에도 물이 너무 깨끗하면 고기가 살지 못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파멜라의 성공에는 기본적으로 빼어난 미모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가 예쁘지 않았다면 B씨가 그녀에게 눈도 돌리지 않았을 것이며, 더구나 그녀의 미덕을 발견하는 것도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파멜라 반대파의 지적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유사 이래로 인간사회에서 여성을 보는 남성의 시각은 변함이 없으며 이것은 생물학적 차원으로 연결되는 사항이므로.

 

어쨌든 다시 순수한 시각으로 파멜라를 바라보자.

 

파멜라의 덕성은 그녀의 주위 인물과 적들을 모조리 감화시키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B씨 저택의 하인과 하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레이디 대버스조차도 결국은 자신을 받아들이게끔 하였다. 게다가 커다란 어려움을 예상하였던 주위 귀족들과의 교류도 뛰어난 미모와 자태, 덕성으로 수월하게 극복하였다. 이처럼 파멜라의 미덕은 혼탁한 세상을 비추는 한줄기 등불이 되어 점차로 주위를 밝게 만들었는데, 이는 작가가 다소간의 지리함을 무릅쓰고 파멜라에게 부여한 사명이며 동시에 독자가 깨닫고 감화되기를 바라는 동기일 것이다.

 

B씨는 이렇게 말한다.

난 당신이 지금 그대로, 또 지금까지 그랬던 대로 있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사람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소. 당신이 더 이상 훌륭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이오.”(P.349)

 

새뮤얼 리처드슨은 분명한 교육적 의도를 이 작품에 담고 있다. 그것은 여성의 참된 미덕과 본분, 진정한 부부 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방향 제시(그의 도덕관은 확실히 시대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이다. 이로써 당대의 도덕률에 경종을 울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이 작품이 문학으로서 예술성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아무런 호응도 받지 못하고 잊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살아남았고 여전히 영국 근대소설의 기원으로 인정받는다는 딱딱한 평가를 제쳐 놓더라도 책을 몇 줄 읽어나가다 보면 파멜라의 무구한 재잘거림에 쏙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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