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 - 체코 아름드리 어린이 문학 1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변은숙 외 옮김, 이오덕 우리말 다듬기 / 길벗어린이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카렐 차페크는 또한 몇 편의 동화도 남겼다.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1932년에 <아홉 편의 동화>로 출판하였고, 여기서 일부를 번역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작품 중 삽화는 역시 그의 형 요제프 차페크의 솜씨다.

 

수록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의사 선생님의 길고 긴 이야기

어느 경찰아저씨의 길고 긴 이야기

작은 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

집 없는 떠돌이 이야기

집배원 아저씨 이야기

물도깨비 이야기

 

모두 이야기라는 꼬리를 달고 있다. 화자가 청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이 어떠하며 그것이 청자에게 재미와 교훈을 잘 전달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동화는 아이가 읽도록 쓴 이야기글이다. 아이가 읽기 어렵다면 성공한 동화라고 할 수 없으니 동화에서 재미는 필수적 요소다. 한편 허무맹랑한 재미만을 안겨준다면 어른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동화는 아이들이 바람직한 인생과 사회 적응을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이 양자의 적절한 조화가 동화의 가치를 좌우하는데 차페크 역시 이를 놓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에는 초현실적 존재들이 현실과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 마법사, 요정, 괴물, 도깨비, 물도깨비 등. 그런 면에서 판타지에 가까운 그의 취향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사람과 동물이 자연스레 대화를 주고받고 사물이 생물처럼 돌아다니는 것은 차라리 동화답다.

 

첫 두 편은 이야기 속의 몇 편의 작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데카메론>이나 <캔터베리 이야기> 등의 유산을 짐작케 한다. 의사의 이야기에는 슐레이만 공주 이야기도깨비 꽥꽥이의 병’, ‘솔내에 사는 물도깨비의 병요정의 병이 들어가 있는데, 이들 짤막한 이야기는 하나의 독립된 소이야기이면서 전체로 본 이야기의 결말에 기여하는 교묘한 장치가 되어 있어 작가의 솜씨를 짐작케 한다.

 

반면 경찰의 이야기는 외견상 유사성과는 달리 순전히 각 경찰 개인들이 겪거나 들은 기이한 일화를 들려주어서 오히려 전통에 가깝다. 차페크는 환상성을 일상성에 위화감 없이 개입시킨다. 그래서 경찰은 파랑이 도깨비집을 빼앗은 다람쥐에게 법을 지킬 것을 명령하며, 머리 일곱 달린 괴물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여자를 납치한 비행을 호통 칠 수 있다.

 

자칫 진지한 이야기로 받아들일까 우려한 작가는 또 다른 장치를 만들었다, 그것은 연도, 면적, 길이, 인구, 화폐 등의 숫자를 터무니없이 과장되게 늘어놓아 절대로 비현실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화는 따뜻해야 한다. 그리고 결말은 밝아야 한다. 비극적 동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집 없는 떠돌이 이야기집배원 아저씨 이야기는 시련 끝에 진실과 성실이 보답을 받는 전형적인 구조를 지닌다. 잠시 맡은 물건을 끝까지 간직하는 사람이나 직분에 충실한 집배원 모두 올바른 인간형의 하나로 제시된다.

 

표제작인 작은 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는 새들의 이야기다. 동화에서는 동물의 등장이 빈번하다. 우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빗대어 말하기에는 동물이 용이하므로. 고향에 불만을 품고 떠난 참새와 비둘기가 그러하다. 한편 새 중에서 닭이 유일하게 날지 못하는 사유를 그럴 듯하게 지어낸 천사의 알 이야기는 자연을 이해하는 과학적 법칙 외에 상상력의 의의와 가치를 제시한다.

 

차페크의 글은 정통적인 동화 스타일은 분명히 아니지만 오히려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자신도 이런 글을 쓸 때는 창작의 산고가 아닌 행복을 누렸을 것이다.

 

번역에 대해서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동화답게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다. 옮긴이 외에 별도의 우리말 다듬이도 제법 기여했을 것이다. 그런데 옮긴이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면과 인명을 대부분 우리네의 것으로 바꿔놓았다.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대체로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예상되는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의 연령대를 감안하면 원작의 향기를 느끼게 고유명사 그대로 사용해도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오히려 우리 고유어보다 외국어에 더 익숙한 판국이다. 하긴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이 1995년이면 요즘과는 사정이 다를 테지만.

 

나머지 이야기를 수록한 후편도 전편 출판 몇 달 후 나올 것으로 약속했는데, 애석하게도 그 약속은 사정상 이행되지 못한 듯하다. 여전히 시중에는 전편만 구할 수 있고, 출판사의 발행목록에도 후편은 찾을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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