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2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8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8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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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속독(速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느긋하게 마음을 다잡고 인물 간의 기나긴 대화에 지루해 하지 않으며, 하인리히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꼼꼼하게 세부묘사를 아끼지 않는 예술 작품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작품의 전개에 몸이 근질거려도 재빨리 훑어나가는 우를 범해서는 진정한 묘미를 찾지 못한다.

 

그나마 제2권에서는 사정이 좀 낫다. 하인리히와 나탈리에 간의 관계가 미묘한 듯 하면서 느껴지기 시작하며, 후반부에서 리자흐 남작의 과거 고백에 이르러서는 작품의 흐름이 한층 솟구친다.

 

표제 ‘늦여름’의 의미는 막판에 가서야 등장한다. 리자흐 남작과 마틸데 부인의 첫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인생 후반에 가서야 그들의 관계는 안정적인 우정과 사랑으로 자리 잡는다. 리자흐 남작의 표현대로 “한여름 없이 늦여름을 누렸다”(P.357)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남작은 한여름을 보내지 못한 자신들의 인생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관찰과 훈육을 통해 하인리히와 나탈리에가 한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써 이 작품의 외면상 주인공은 하인리히나 실질적 주인공은 리자흐 남작임을 알 수 있다. 하인리히와 나탈리에는 각각 리자흐 남작과 마틸데 부인의 분신이자 재현이다. 선대의 애정 구조는 후대에 순환되고 있으며 반복 속에 빚어지는 변화하고 발전되는 장면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현실주의 관점에서는 하인리히의 삶이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청년기에 이르러서도 뚜렷한 직업도 없는 가운데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비생산적 활동에 종사하는, 어찌보면 무위도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부르조아의 삶.

 

여기에는 당대 현실에 대한 작가의 매서운 질책과 아울러 작가의 창작 배경이 숨어 있다. 슈티프터가 보기에 당대의 사회적 상황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욕구 충족을 위해 강제하고 있어 자신을 포기하고 본연의 재능을 썩히게끔 한다는 것이다(P.274). 이른 시기에 장래의 직업을 정하고 여기에 매진한다면 단기적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보다 큰 가치를 지니는 인간 본연의 인문학적 진보는 어디에서 기대할 것인가? 이 점에서 리자흐 남작과 하인리히의 아버지는 사고는 일치를 보이고 있으며, 후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게 되는 연유이기도 하다.

 

하인리히는 폭넓은 교양을 갖춘 인간으로 거듭 태어났다. 여기에는 리자흐 남작의 도움이 컸지만 중요한 점은 그가 “스스로 발전”(P.397)하였다는 사실이다. 인생과 사회의 첫 출발에서 여러 면에서 부족한 주인공이 학습과 경험과 편력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다는 교양소설의 기본 구도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인물의 성장과 발전이야말로 교양소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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