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음악으로의 초대
김현철 지음 / 음악세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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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싫증을 느끼는 때가 간혹 생긴다. 뻔한 작곡가에 한정된 레퍼토리를 반복하다 보면 연주 자체가 귀에 인이 박힐 정도가 된다. 이 진부성, 상투성을 벗어나고자 목마른 이가 물은 찾듯 새로운 연주를 갈구하는 함정에 빠진다.

 

그럴 때 고전시대 이전의 바로크 음악, 더 나아가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을 접하면 생경함에 우선 놀라며, 나름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던 지적 오만이 산산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크 시기까지는 어떻게든 소화가 되는데 르네상스부터 그 이전은 도저히 친숙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각종 음악 가이드 및 음반 소개서도 바흐, 헨델, 비발디가 상한선이며, 제법 진지한 경우 몬테베르디를 살짝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다. 학구열에 불타는 애청자가 아닌 이상 영어로 된 음반 내지를 독해할 욕구는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음악도 낯설고 형식과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음악은 곧 귀에서 멀어진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통상적인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감상수준(적어도 나에 국한하면 참이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치는 획기적이다. 르네상스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어렵지 않은 용어로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주요 악파와 작곡가들, 그리고 추천할 만한 음반들을 소개하고 있어 이 책 한 권이라면 르네상스 음악에 대해서는 어느 자리에 가서도 기죽지 않고 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사실 몇몇 작곡가들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조차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가 많이 등장하여 당대의 음악이 이렇게 풍성하였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레고리오 성가로 대표되던 중세 음악은 14세기 기욤 드 마쇼에 의하여 커다란 변화의 조짐이 잉태되었다. 그리고 15세기 초 영국의 던스터블이 선구자가 되어 부르고뉴 악파에서 싹이 튼 후 플랑드르 악파에서 활짝 개화한 후 유럽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르네상스 음악은 “고대 그리스 음악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그리스인들의 인간 정신의 부활이며, 억압받지 않는 인간 본래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예술 운동”(P.26)이다. 가톨릭의 굳건한 위상이 약화되기 시작하여 르네상스 음악 시대 후기에는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과, 영국 국교회의 성립으로 종교적 혼란이 이어지지만 예수를 근간으로 기본 교리는 변함없이 당대인들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음악의 지배적 형식도 종교곡에 치우쳐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다만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종교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음악성, 즉 예술성을 최대한 구현하려는 욕구를 반영하고자 하였으며, 세속음악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점차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음악사적으로 르네상스 음악은 몬테베르디를 전후로 하여 바로크 음악으로 이어진다. 바흐와 헨델, 비발디가 땅 위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모차르트가 모테트와 레퀴엠을 쓰고, 베토벤이 장엄미사를 작곡하며 현대음악 시기로 넘어와서도 꾸준히 종교음악이 생산되는 것은 결국 음악사적 시기를 면면히 관통하는 그네들의 문화적 유산과 정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욤 뒤파이, 요하네스 오케겜, 조스캥 데 프레, 하인리히 이자크, 피에르 드 라 뤼, 오를란도 디 라수스 등 부르고뉴와 플랑드르의 저명한 작곡가들의 위상이 어떤지 쉽사리 이해하려면, 음악사에서 그야말로 모차르트, 베토벤 급의 대작곡가로 비유하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뒤파이는 “중세 말기의 여러 작곡 기법을 종합하여 여기에 자신의 개성을 불어 넣어 새로운 르네상스 음악의 방향을 결정한 작곡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크 음악을 완성하고 근세 음악의 길을 연 바흐에 비견되는 인물”(P.59)이다.

 

조스캥 데 프레는 “르네상스 시대 전 기간을 통해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다. 조스캥은 모든 시대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회화에서 미켈란젤로가 한 일을 음악에서 했다고 평가되는 위대한 작곡가”(P.87)이다.

 

이탈리아의 팔레스트리나와 제수알도, 그리고 르네상스 음악 시기 또 다른 위대한 작곡가로 인정받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어떠한가. 게다가 영국만 예로 들더라도 던스터블, 존 태버너, 토마스 탈리스, 윌리엄 버드, 존 다울랜드 같은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이 줄지어 있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작곡가로 르네상스 시대의 최후를 장식하는 작곡가였을 뿐만 아니라 바로크라는 새로운 음악을 창시한 위대한 음악가”(P.168)이다.

 

소개된 음악가들 면면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이렇게 책장을 넘기면서 그들과 작품들, 유행하던 종교적, 세속적 음악 장르 및 악기 등에 관한 글들을 읽다보면 두 귀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작곡가와 작품을 소개하더라도 음반을 통해 듣지 못한다면(실연 감상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뜬구름 잡기에 불과하며, 화중지병(畵中之餠)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틈나는 대로 구할 수 있는 음반을 짤막하게나마 성심껏 소개하고 있다. 만약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저자의 또 다른 책 <르네상스 음악의 명곡·명반>을 참조하면 충분할 것이다.

 

마무리하자면, 이 책은 국내에서 르네상스 음악을 음악 애호가들에게 소개한 거의 유일한 책이다. 단순한 소개 차원에 그치지 않고 실제 감상으로 이어지도록 각 작곡가와 작품의 아름다움을 논평하고 추천음반도 제시하면 말 그대로 종합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 귀중한 저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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