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독파하는 셰익스피어 이야기 - 소설로 읽는 10대 희극, 6대 비극, 4대 로맨스
찰스 램.메리 램 지음, 박별 옮김 / 나래북.예림북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세계문학사에서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위상은 사뭇 대단하다. 문학작품 탐독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도 그를 피해가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주 작품은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이야기체인 소설이 아니라 연극 상연을 전제로 하는 희곡이다. 희곡은 대중성 면에서 소설에 비할 수 없으며, 독서법도 소설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셰익스피어에 도전하는 진지한 정공법을 택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망설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찰스 램과 누나 메리 램은 이에 착안하였다. 대중들이 조금 더 셰익스피어에 다가가도록 하자. 그의 익숙지 않은 희곡들을 말 그대로 이야기 형식으로 번안한 것이다. 이로써 독자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으며, 원작인 희곡에 도전할 수 있는 든든한 베이스캠프를 갖게 된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작가 특유의 극적 구성과 언어적 표현 등은 일단 뒤로 제쳐놓자. 중요한 것은 원작의 묘미를 가능한 한 살리면서 독자에게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그래서 이것은 재창작과 다름없다.

 

램 남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작품 38편 중에서 역사극 등을 제외한 20편을 택하여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다. 각각 희극 10편, 비극 6편, 로맨스 4편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내가 읽어본 작품은 얼추 열편 남짓하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것이라 유명한 비극 몇 편을 제외하고는 줄거리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특히 배경과 전개가 비슷비슷한 희극 작품들은 매우 헷갈린다.

 

셰익스피어하면 일단 4대 비극으로 각인되어 있고, 여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추가된다. 자고로 인간은 비극에 더 깊은 감명을 받는 존재인가 보다. 소위 카타르시스의 작용인가. 처음 접하는 <아테네의 타이몬>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심금을 울린다.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절망한 타이몬이 숲속에서 나체로 생활하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철저하게 인간과 사회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비극 작품을 통해보건대 셰익스피어는 인간성에 대해 극히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희극과 로맨스는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본다. 희극 중에서 보다 주인공의 모험적 성격이 강한 것을 특히 로맨스라고 명명한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대개 이탈리아 등 영국 이외이지만, 로맨스는 희극에 비해 보다 이국적 요소가 강하다. <겨울 이야기>는 시칠리아와 보헤미아, <심벨린>은 고대 브리튼과 로마제국, <페리클레스>는 그리스이며, <폭풍우>는 아예 지중해의 외딴 섬을 설정한다.

 

10편의 희극 중 확연히 기억 남는 것은 <한여름 밤의 꿈>과 <베니스의 상인>이며, 나머지는 등장인물과 사건 등이 기억에 혼재되어 이것이 저것인양 머릿속에 어지럽다. 그만큼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인물과 사건 및 구성에 있어 상당한 유사성을 공유한다. 개별적 무대 공연을 체험했다면 독자적 개성을 목도할 수 있겠지만, 글로 읽어서는 혼동하기 딱 좋다.

 

셰익스피어는 초기에 희극, 중기에 비극, 후기에 로맨스로 작품 집필을 집중적으로 하였다. 따라서 희극 작품은 아무래도 작가의 원숙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며, 비극 작품에서 그의 최고의 작품성이 구현된 것으로 이해된다. 로맨스는 확실히 초기 희극보다는 우수하지만 지향점이 다르다고 본다.

 

램 남매의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다. 국내 출판계에서 왕성히 출판되고 있는 셰익스피어 이야기들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아동 및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램 남매, 특히 찰스 램을 이 책 한 권만으로 평가하기는 무리다. 그는 수필 장르에서 중요한 소위 미셀러니의 대표자로, 그의 <엘리아 수필>은 문학사에서 뚜렷한 평가를 받고 있다.

 

간접적이지만 간만에 셰익스피어를 다시 접한다. 고전은 한 번 읽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읽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슬슬 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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