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록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이영석 옮김 / 누멘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환상록(A Vision)>은 예이츠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1917년부터 기술된 기록은 초판 출판에 이어 전면적 재검토를 거쳐 예이츠의 말년에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이것을 문학 작품으로서 받아들여야 할지는 논의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중기 이후 예이츠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으로서 그 의의는 무시할 수 없다.

 

타이틀과 같이 이 책은 예이츠가 신들린 아내의 입을 통해 이루어진 영적 존재와의 대화를 통해 구현한 거대한 환상을 다루고 있다. 예이츠의 아내는 우리나라의 무당과 같이 신 또는 혼령과 접촉할 수 있는 색다른 감각 능력을 지닌 듯하다. 신이 내린 무당이 하는 말은 평상시의 무당 자신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때 무당은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매개의 도구가 된다. 예이츠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다. 영적 존재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아내의 인지를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주안점은 소위 이성과 감성으로 구축된 잘 갖추어진 체계가 아니라 무의식에서 구성된 환상에 대한 감수성과 수용력에 달려 있다. 환상에 공감하면 그것은 밝은 빛으로 다가올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허무맹랑하며 뜬구름 잡는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책을 읽으면서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았다. 글자가 글로써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개별적 철자에 불과할 때 이것을 독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통상 이런 경우라면 재독, 삼독을 거쳐 이해에 다가가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이츠의 전문적 연구자라면 모를까 순수한 독서가에 불과한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단순한 환상과 꿈에 불과한 주장이 아니라 나름대로 치밀한 체계를 갖춘 일종의 철학이라는 판단이며, 그 철학에 대한 공감적 수용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이해는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는 먼저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에즈라 파운드에게’와 ‘마이클 로바티즈와 친구들’이라는 글을 통해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 배경을 서술하고 있다. 이따금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대체적 이해는 가능한 대목이다.

 

이어서 세계를 분석하는 거대한 작업이 시작된다. 응답자들 또는 안내자들(예이츠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은 우주를 시간(주관)과 공간(객관)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원뿔과 객관적 원뿔의 이중 원뿔로 이해한다. 그것은 또한 4가지 기능인 의지, 마스크, 창조적 마음, 그리고 운명의 몸으로 분류가 가능하며, 이것이 어우러져 다양한 인식의 차원이 생성된다. 예이츠는 이것을 28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달의 수레바퀴로 도식화(P.86)하였다. 각각의 상은 4가지 기능별로 고유한 특성을 가지며 이는 100면~102면의 표로 설명되고 있다. 제1권 거대한 수레와 제2권 상징의 완성은 이러한 체계의 구축과 28상에 대한 개별적 상술을 다루고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어지럽지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대략적 이해와 추론은 가능하다. 물론 구체적 내용까지는 이해와 공감이 어렵지만 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예이츠가 사용하고 구축한 체계의 방방법론에 대한 공감의 정도에 좌우된다.

 

한편 제3권 영혼의 심판은 완전이 해독 불가다. 아마 이 작품에서 가장 환상적인 대목을 손꼽으라면 단연 제3권이다. 아마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앞선 두 권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제4권과 제5권은 앞에서 구현된 이해 체계를 바탕으로 역사를 분석하고 있다. 거대한 수레바퀴의 순환 주기를 다양하게 검토한 후 작가는 4000년을 한 주기로 제시한다. 그 한가운데가 바로 예수의 일생에 해당하며, 기독교의 시대는 이후 2000년을 지속한다. 작가는 각 시기별로 예술을 포함한 문명을 자신의 이해 체계에 맞추어 독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무척 흥미롭다. 그의 환상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일독할 가치는 있다.

 

예이츠의 후기 시에는 그의 독자적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해독이 어려운 사례가 제법 많다. 마이클 로바티즈와 관련된 시편들, 종종 언급되는 거대한 원뿔과 순환, 비잔티움에 대한 찬미는 물론 직접적으로 달의 상(相)을 제재로 삼기도 한다. 이런 시들을 이해하기 위한 창문으로써 이 <환상록>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도구로서의 의의 외에도 하나의 통합된 작품으로서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책을 하나의 거대한 시로 본다. 산문시와 운문이 잘 짜인 아름답고, 정교하고, 신비로운 시, 가장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시이다. 하나의 환상이면서, 형형색색의 채석 창문들이 하늘로 나 있는, 환상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신비주의적(종교적) 건축물이다.” (P.309)

 

역자의 의견에 동의하든 아니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철학 체계에 기반한 통합적 사상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환상으로서의 시의 속성에 주목한다면 이 작품을 시로 파악해도 무리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일반 독자에게는 무척이나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 책은 <A Vision>의 우리말 번역문은 물론 영문 원문도 수록하고 있다. 원서 해독에 관심있는 이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전체 면수도 번역문 319면과 원문 247면을 합한 566면으로 표기하는 게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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