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 - 존재의 완성을 향하여 문학의 이해와 감상 43
서혜숙 지음 / 건국대학교출판부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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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의 시집을 읽었다. 알 듯 모를 듯 도대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 시인이 우리말로 쓴 시라도 이해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번역시다. 게다가 예이츠가 누군가? 그의 시는 평범한 듯하지만 그 속에 고도의 상징과 신비로움을 부여하여 제대로 맥락을 짚기가 용이하지 않다.

 

이럴 때 구원투수로 해설서가 필요하다. 시집 자체에 풍부한 주와 해설이 있다면 좋겠지만 본문 외에 간략한 해설만 있는 상황에서 되새김질은 한계가 있다. 저자는 학문적으로 예이츠를 전공한 사람이니 내용의 수준과 신뢰성은 어느 정도 담보되어 있다.

 

대개 유명 시인은 일찍이 천재적 자질을 보여주는 사례가 심심치 않다. 이미 이십 대에 문명(文名)을 떨쳐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진 경우가 많은 장르가 바로 시에 있다. 예이츠는 대기만성 형이다. 이십 대 중반에 첫 시집을 출판하였으나 중년이 될 때까지 그의 시인으로서의 평판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한다. 올망졸망한 시인 무리의 일원. 오십 대를 넘어가면서 급격히 작품의 원숙미와 깊이가 더해지면서 돋보이기 시작하더니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저자는 전반부에서 예이츠의 생애를 짚어본다. 가계로부터 시작하여 모드 곤과의 만남, 그리고 연대순으로 일생을 살펴보면서 문학적 연관성을 상세하지만 명료하게 제시하여 이 부분만 읽더라도 시인의 시를 받아들이는데 꽤 도움이 될 정도다. 예이츠의 작품은 그의 삶과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정당하게 해석되기 어려운 점이 많음을 유념해야 한다.

 

책의 핵심은 이어지는 작품 해설에 있다. 얄팍한 소책자에서 80면을 여기에 할당할 정도다. 구성은 작품들의 시기를 구분하고 각 시기별로 발표된 시집과 수록된 주요 시의 분석을 하고 있다. 게다가 여타 시집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설화시, 장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 미덕을 보여준다. 시기 구분은 환상적 낭만기, 현실로의 전환, 존재의 통일, 세속적 완성의 네 단계로 나누고 있다. 후자의 두 시기를 합친다면, 통상적 연대 구분과 일치함을 볼 수 있다.

 

예이츠의 첫 작품이 <어쉰의 방랑>이라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예이츠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서 켈트 신화와 설화에 심취하였다. 일찍부터 신비주의적 종교집단에 가담하였을 만치 그의 내면에는 기독교적 특성보다는 신비주의적 이교적 요소-켈트, 기독교의 이단, 인도와 선불교 등-가 더 강하였다. 이 점은 그의 <켈트의 여명>에서 혼령과 요정을 불러내는 마법 의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적 정신의 뿌리는 켈트이다.

 

예이츠의 시인으로서의 절정기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라는 점은 역설적이다. 중기에서 개인적 인식을 사회와 현실로 확대시킨 예이츠는 부단히 자아와 사회의 갈등을 겪는다. 봉건적 귀족사회의 고상하고 우아한 가치를 중시한 그에게 아일랜드 독립 투쟁과 어지러운 정치 현실은 심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제 그는 관조적 자세로 세상을 응시한다. 시집 <탑>과 <나선형의 계단>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과 육체, 신성과 욕망, 선함과 악함, 고결함과 더러움 등 상반되는 제반 요소를 그는 더 이상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다룬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존재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존재는 특정 이념으로 재단할 수 없다. 존재는 자체로서 고유한 현상이자 실체이다.

 

이 책은 특히 예이츠에게 영향을 미친 동양 사상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예이츠는 일찍부터 동양 사상에 심취하였으며, 초기의 인도 문학과 종교에 이어 후반에는 선불교, 탄트라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저자는 존재의 통일이 실은 불교에서의 니르바나, 즉 열반과 동일한 개념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작품도 알지 못하는 마당에 난해한 종교적, 철학적 배경을 파악하기란 어려워 자세한 이해는 후일로 미루어 둔다. 그의 전 시작품을 읽어봐야지 이 책에서 논의된 갖가지 분석과 주장 및 배경 등이 가슴에 와 닿지 않겠는가.

 

저자와 책의 도움으로 나는 예이츠의 시세계가 범상치 않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니스프리 호수 섬>과 같은 서정시의 작가로만 알고 있던 무지가 얼마나 얄팍한지를. 국내에 소개된 그의 시 선집이 과연 거인 예이츠의 진면모를 알리는데 오히려 저해 요인이 아닌지를.

 

찾아보니 한국예이츠학회에서 그의 시 전집을 다년에 걸쳐 번역하여 출간하였으며, 최근에는 이를 합권하여 전집으로 출판하였다. 결국 전집에 도전해야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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