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부활절 - 영국편 솔세계시인선 7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 / 1995년 7월
평점 :
절판


시집 한 권으로 예이츠의 방대한 시 세계를 섭렵하였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예이츠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또 한 번 그의 시 선집을 펼쳐본다.

 

이 책은 25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는데, 민음사 본과 중복되는 시도 많지만 새로운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중복 수록작은 그의 대표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재독한다고 하여 나쁠 것도 없다.

 

이 책은 다행이도 시기별로 구분하여 1889~1913년의 전기, 1914~1932년의 후기, 1933~1939년의 말기별로 고르게 선별한다. 각 시들의 출전도 명기하여 주어서 시기 및 출처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앞에서도 예이츠의 시 세계의 뿌리의 심원함과 광대함을 언급하였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시기별로 그는 감성에서 출발하여 현실을 인식하게 되고 고차원적인 존재의 인식 단계로 접어든다.

 

전기에서 두드러지는 예이츠 시의 시간은 하루로 치면 여명 또는 황혼 이후이며, 계절에서는 가을을 선호한다. 인생에서는 노년을 찬미한다. 그의 시는 화창한 봄날과 눈부신 대낮에 대한 노래가 없다. 어찌 보면 애상의 정서, 감성의 침잠, 어슴푸레한 신비와 환상으로 대변될 수 있는 게 그의 시적 분위기다.

 

예이츠는 시 속에서 현실에 정주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을 떠나서 방랑한다. 호수 섬 이니스프리를 찾든가 신화 속의 잉거스처럼 방황하는 그에게 현실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피상적 실체이다.

 

후기에서 뽑은 시 중에 <아일랜드 비행사가 죽음을 내다보다>나 <1916년 부활절> 등에서 아일랜드의 격변하는 정세에 대한 작가의 구체적 인식이 표현된다. 그의 시는 더 이상 애상에 물들어 있지 않으며 굳건한 의지와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불만족스러운 현실 상황에 대한 은근하지만 날카로운 비판도 함께 한다. <비잔티움 항해>와 <국민학생들 사이에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옮긴이가 <1916년 부활절>을 표제작으로 내세운 것도 이에 주목한 것으로 이해된다.

 

말기에서는 예이츠는 초월과 달관의 경지에 다다르는데, <미친 제인이 주교와 말을 주고받다>에서 그는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한다. 기실 그의 정신세계의 기저에는 신비적이며 환상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자리 잡고 있다. 켈트 신화와 전설에 대한 몰입, 비잔티움에 대한 찬미, 동양 문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 등이 그러하다. 이런 모든 요소가 그의 개인과 현실에 대한 인식과 어울려 오히려 틀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분방함으로 표출된다. <박차>에서 그는 정욕과 분노가 창조력의 원천임을 밝히는 대담성을 보인다.

 

비슷한 성격의 선집인 만큼, 솔의 세계시인선과 민음사의 민음세계시인선을 여러모로 비교할 수밖에 없다. 작품 선정의 합리성에서는 솔 본의 손을 들어야겠으며, 말미의 해설도 이쪽이 더욱 충실하여 간략하나마 이해에 도움이 된다.

 

번역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원작의 미묘한 뉘앙스와 깊은 함의를 어떻게 우리말로 잘 구현하여 시인과 독자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메우는가에 있다. 이 점에서는 민음사 본이 더 성공적이다. 역자 두 사람이 모두 시인이니만치 자신의 언어와 스타일로 재창조하고 있는데 정현종 시인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현재 서점가에서 살아남은 것도 결국 민음사 본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술 노래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흘러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을 이것뿐.
술잔을 입에 대면서
내 그대를 쳐다보고 한숨짓는다.

 

나지막이 시편들을 읽어나가던 도중 계속 입가에 머문 시다. 술도 잘 먹지 못하는 내 자신인데 왠지 마음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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