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펠루스 추기경 바벨의 도서관 19
구스타프 마이링크 지음, 조원규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 이승수 해제 / 바다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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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기획하고 해제를 덧붙인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하나이다. 20세기 전후를 살다간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인데, 대표작 <골렘>이 유명하다고 한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되고 읽어보는 작가다.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에 비해 독해가 제법 용이하지 않다.

 

1. <시간 거머리를 찾아간 요한 오버라이트>는 비교적 명료하지만 여운은 길다. 조부의 묘비에 새겨진 Vivo 라는 단어와 정말로 죽고 나면 새겨진다는 오버라이트의 설명은 부조화의 생경함을 부여한다. 정말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품의 핵심은 오버라이트가 들려준 시간 거머리를 찾아간 이야기에 있다. 시간 거머리는 “인생의 참된 수액인 시간을 우리 심장에서 빨아먹는” 허깨비같은 존재들이다. 기다림과 희망을 짓밟아버려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나는 살고 있다’가 아닌 ‘나는 살아 있다’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부질없는 “희망과 갈망 그리고 기다림”은 “자아의 마술적인 힘이 영혼에서 흘러 나가도록 하여” 추악한 분신 유령(도플갱어)를 살찌우고 부유하게 할 뿐이다.

 

오버라이트는 깨닫는다. “우리 자신이 시간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었던 것이오. 물질처럼 보이는 육신은 흘러나온 시간에 다름 아니었소” (P.33). 그래서 그는 삶에서 ‘기다림과 희망’을 영원히 근절하여 자신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꾸민다.

 

오버라이트의 각성은 모든 욕망의 해탈에 가깝다. 그것은 자신의 말마따나 하나의 ‘자동기계’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절대 경지에 오른 이에게 세상의 대소사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다만 “눈처럼 흰 배를 타고 기슭없는 영원한 생의 바다로 항해”(P.34)하는 오버라이트가 과연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2. <나펠루스 추기경>은 존재의 본질을 추구하는 인간의 슬픈 자화상이다.

 

화자를 포함한 다른 인물들은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죽어 가는 사람들이었다. 무얼 찾는지도 모르면서 불안하게 손가락으로 침대 시트를 더듬다가 죽음이 방 안에 와 있다는 걸 깨닫는 임종자들.” (P.42)

 

하지만 라트슈필러는 달랐다. 그는 ‘푸른 형제들’ 수도원에서 고행을 하면서 믿음의 겨자씨, 믿음의 핵, 믿음과 희망의 독의 정체를 깨닫고 “뱀파이어의 가면”을 잡아채 벗긴다. “잠에서 깨듯 명료하게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인생이라는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것이 우리 영혼을 고갈시켜서 우리의 가장 내밀하고 고유한 자아를 훔쳐가 버렸지요.” (P.46)

 

인생의 무의미성, 내면의 자아를 상실한 슬픈 인생에 대한 추상같은 자각이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지 거기에는 마술적인 이중의 의미가 들어 있소이다. 마술적이지 않은 일을 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는 겁니다.” (P.54)

 

그는 일상성 속의 환상성의 잠복을 절실하게 인식한다. 라트슈필러로 하여금 호수의 깊이를 재려는 계속적 시도를 하게 만든 원동력이 이런 인식이다.

 

“호수의 아가리는 언제고 내게 거듭 선언할 것이오. 지구의 겉껍질 위에서 햇빛을 받으면 끔찍한 독이 자라날 테지만, 가장 내밀한 밑바닥 심연은 그로부터 자유롭다고, 깊이는 순수함이라고.” (P.54)

 

이런 라트슈필러도 인간의 내생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푸른 바꽃 아코니툼 나펠루스와 나펠루스 추기경의 유리공의 예기치 못한 등장은 인간 본성의 불가피한 취약성을 드러낼뿐더러, “지구의 겉껍질 위에서 햇빛을 받으며 자라는 끔찍한 독”의 강력함을 입증하기도 한다.

 

3. <네 명의 달 형제들>의 주인공은 달(月)이다. “태양은 유한한 존재에 풍족한 기쁨을 누리고픈 열망을 심어” 넣는다. 반면 “달은 현혹적인 광채로 인간들이 그릇된 상상에 빠져들도록” 하여 인간 사회에 부정적 기운을 흩뿌린다. 달의 독이 든 숨결로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라고 착각하며 산업문명과 기계화에 맹목적으로 열광한다. 작가는 이 단편에서 현대 기계문명에 부정적 인식을 확고히 한다.

 

백작의 시종인 화자의 이름은 작가와 동일한 구스타프 마이링크다. 화자가 모시는 주인과 그 친구들은 공전하는 달의 네 모습 즉, 보름달, 반달(상현/하현), 그믐을 형상화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시계와 같아지도록 결정된, 부실한 사물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P.68)
“인간은 이제 팔 수 있는 것만을 현실로 여기게 되었다는 거요.” (P.69)

 

인간의 물질주의화와 자본주의화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다.

 

“달은 독이 든 숨결로 인간의 뇌에 생각들을 잉태시켰고, 그 생각들이 눈에 보이게 출산된 것이 기계들이라는 말이었어요.” (P.71)
“기쁨을 모르는 영구기관이 된다는 말입니다.” (P.72)

 

제1차 세계대전의 분노와 광기는 여기에서 재해석된다.

 

“세상에 증오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계들은 스스로 힘을 갖게 되었는데, 인간들은 아직도 눈이 멀어 자기들이 주인인 줄로 알고 있지요.” (P.80)

 

달의 형제들은 요한 오버라이트와 같은 본질의 존재을 실토하고 있다. 인간성을 탈피한 자동기계라는 사실을.

 

“달의 형제들인 우리는 영원한 존재의 상속자입니다. ‘나는 살고 있다’고 하지 않고 ‘나는 살아 있다’고 말하는 존재” (P.72)

 

그러기에 그들은 인간성의 발현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우리는 인간들의 뇌 안에서, 기만적이고 냉철한 이성의 새롭고도 거짓된 광채로 살아가야한 합니다. 그들이 태양을 달과 혼동할 때까지, 그리고 빛인 것은 모조리 불신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P.86)

 

마이링크의 작품은 짙은 종교적 신비주의를 바탕에 깔려 있어 몽환적이면서 신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작중에도 거론되는 종교집단인 필라델피아 형제들, 푸른 형제들, 장미십자단 등은 언뜻 들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래가 깊은 소수 종교집단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 정도다. 여기에 인간과 사회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집요한 추구와 반문이 환상적 요소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여하튼 웬만해서는 소설을 재독하지 않는 나로 하여금 꼼꼼히 두 번을 읽게 만든 묘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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