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순신 1 - 의협의 나날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지만, TV에서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사극을 방영한다고 할때, 굉장히 게시판이 시끄러웠다. 골자는 원작을 통해 보건대 원균을 띄우는 것은 참겠지만, 악의적으로 이순신을 깎아내리고 왜곡하는 내용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 작가가 얼마나 사실(史實)을 의도적으로 곡해했는지에 대하여 모 교수가 비판한 글도 널리 회자되곤 하였다.

나 또한 맹렬한 비판자 대열에 동참하였다. 역사란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해 볼 자유가 있고, 그럴 가치도 있지만 빨래를 짜듯 억지로 비틀어서는 안된다. 비록 군사정권에 의하여 지나치게 우상시되는 바람에 역풍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이순신은 민족의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런 영웅을 무참히 짓밟다니.

TV를 외면하다가 요즘 이따금씩 문제의 사극을 보았다. 드라마와 원작이 항상 동일한 시각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듯하다. 너무 과장하지만 않는다면 허균에 대한 재평가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사와 야사간에 때로는 괴리가 심하다는 것을 알며, 대개는 야사가 옳다는 것도 안다. 그런 의미에서 불현듯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김탁환은 누구이며, 원작 '불멸의 이순신'은 과연 이순신 죽이기를 의도한 쓰레기 같은 글에 지나지 않는가. 그것이 내가 책을 펼쳐들게 된 계기였다.

이제 1권을 갓 끝낸 마당에 섯부른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엄연한 소설이지 역사서가 아니다. 1권에서 이순신은 아직 무과에 급제하지도 않은 상태다. 이순신에 관한 많은 기록들은 무관이 된 이후 부터 다루고 있다. 따라서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관한 사료는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인데, 여기서 작가는 수많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 간극을 메우려고 한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패망하는 조선을 구하기 위하여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져 내려져온 천상의 존재가 아니다. 천재적 영감에 의하여 거북선을 만들고 왜침에 대비하였던 것이 아니다. 장년기 이후의 그를 형성한 기본 골격을 재구성하는 것, 그것이 김탁환이 1권에서 힘써 그리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확실히 종래의 소설과 비교할 때, 원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그와 이순신은 가는 길이 다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원균은 '무인'이지만, 이순신은 '칼을 든 사림'이다.

소설적 구성 측면에서 볼 때, 1권의 약점은 먼저 이순신이 활을 쏘아 죽인 왜인의 복수로 금오산 일대가 쑥밭이 된 것을 보고 다시금 왜인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게 된 부분이 지나치게 작위성이 강하여 스토리 전개의 자연스러움을 크게 해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순신의 기나긴 방황의 사유가 조부와 뜻을 같이한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라는 단 한가지라는 점. 어릴때부터 품어온 분노를 서른살때까지 그대로 가슴속에 간직한다는 것은 너무 평면적이어서 이야기 전개의 심층적 구성을 저해하고 있다.

역사성에도 주목하겠지만, 소설의 첫째 기준은 작품성이다. 사실을 뒤로 보고 때로는 거꾸러 흔들어서라도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조망과 상상력을 가져올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김탁환이라는 작가가 그저 선정성을 노린 뜨내기가 아니라 '방각본 살인사건' 등 이미 여러 역사소설을 집필한 작가임을 믿고 싶은 것이 현재 내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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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5.1.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