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철학자 - School Library 04
알퐁스 도데 지음, 강승민 옮김 / 종이나라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단편선을 제외하고는 몇 편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은 국내 출판계에서 뜻밖에도 도데의 1868년 작 <Le petit chose>는 제법 여러 판이 출판되어 있다. 작품의 유별난 우수성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연유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원제 'Le petit chose'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여 구글 번역기를 돌렸더니 ‘A little thing’이라고 나온다. 작은 것, 즉 꼬마 정도라고 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꼬마 철학자’라는 표제는 절반만 옳다. 그냥 ‘꼬마’라고 하든가 아니면 작품 내용을 감안하여 ‘꼬마 시인’이 보다 적절하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작가의 개인사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자전적 성격의 작품으로서 읽다 보면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허구인지 헷갈린다.

주인공 다니엘은 남프랑스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일가가 리용으로 이주하여 생활고를 겪는다. 가족이 모두 이산되며 자신도 산골지방인 사를랑드 중학교에서 자습교사로 부임하여 사회에 진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를랑드 시절에서 그는 가세를 일으키겠다는 열정이 스러지고 인간성에 대한 뼈저린 환멸을 경험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여기까지가 1권이다.

2권에서 다니엘은 제르만느 신부의 도움으로 자크 형이 있는 파리로 가서 시를 쓰며 새 출발을 한다. 그리고 피에로트 양과 교제를 하며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다가 이르마 보렐이라는 여성을 알게 되면서 다니엘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를랑드에서 본 ‘검은 눈동자’와 피에로트 양의 ‘검은 눈동자’에서 그가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발견하였다면, 이르마 보렐과의 관계는 타락과 애증의 끈적거리는 혼합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증오가 동반된 그들의 관계는 서로를 발전과 향상으로 이끄는 것의 정반대 작용을 하고 있으니 파탄은 시기가 문제일 뿐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다니엘은 수줍음과 우유부단으로 연탄가스에 질식된 사람처럼 스스로의 의지로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다가 자크 형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된다.

이 작품은 슬프고 비극적이다. 비록 결말에서 희망의 빛을 슬며시 드리우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끊임없는 눈물이 주조를 이룬다. 집안의 몰락과 큰형의 죽음, 참혹한 사를랑드 시절, 몽파르나스의 수렁, 그리고 자크 형의 죽음과 어머니의 시력 상실 등. 그럼에도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와 더불어 슬픔 속의 미소가 단절되지 않는 것은 알퐁스 도데만의 장기라고 하겠다. 그는 슬픔과 기쁨, 고통과 즐거움을 병존시키면서 작품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희석시키고 있다. 그래서 독자도 한결 가벼운 심경을 품게 된다.

시인 지망생 다니엘, 그에게는 예술가적 기질이 몸에 흐르고 있으니 팜므 파탈 이르마 보렐의 유혹에 저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희극 배우로서 고통을 겪으며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아마도 내면 깊숙이 예술인의 삶을 수용하고자 하는 바램이 잠재되어 있던 게 아닐까. 현실의 알퐁스와 달리 작중의 다니엘은 문학의 포기를 선언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유효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니엘 자신도, 그리고 우리 독자들도.

이르마 보렐은 특이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다. 그녀가 다니엘에게 유독 천착하는 이유는 외모나 재산, 지위는 결단코 아닐 텐데, 그렇다면 그의 순수성에 대한 이끌림이라고 할지. 단순히 풋내기 꼬마를 갖고 노는 재미만으로 정결하지 못하지만 풍요로운 생활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존재만으로 주변 사람을 망치는 전형적 팜므 파탈이다. 다만 그녀가 악인인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팜므 파탈에 대한 알퐁스 도데의 관심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단편 <아를의 여인>에서 출발하여 희곡 <아를의 여인>으로 발전하였으며, 장편소설 <사포>은 이 제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풍차방앗간 편지>만을 기억하는 독자는 다소 의외라고 하겠지만, 파리에서 어두운 시절을 경험한 도데로서는 낯선 영역이 아니었으리라.

* 이 리뷰는 원래 <꼬마 철학자 1, 2 (알퐁스 도데/이용남/민중출판사)>에 대하여 썼으나 알라딘에서는 민중출판사 번역본이 등재되어 있지 않음. 한편 옮긴이의 경력으로 미루어 프랑스어 판본의 직접 번역이 아니라 영어판 중역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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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0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7.2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