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중심에 서다
한홍 지음 / 두란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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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경영학의 접목을 시도한 책이다. 구약의 느헤미야서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호감가는 유형의 저작은 아니지만, 직장 상사의 선물이라 예의상 한 번 읽어보다.

저자는 현재 온누리교회 목사이며, 이 책도 교회의 설교를 토대로 살을 붙여 펴낸 것으로 여겨진다. 전반적인 배경을 볼 때 매우 기독교적일 것으로 추정되고 따라서 신자에게는 남달리 뜻깊고 큰 공감을 이끌어낼 것으로 생각된다.

바벨론의 유수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재건을 도모하지만 주변 부족의 견제로 수십년이 경과하도록 성을 쌓지 못하고 힘든 삶을 영위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때 대제국 페르시아의 고위관료인 느헤미야가 사정을 알고서 자원하여 이스라엘로 와서 유대인들을 통합하고 독려하여 불과 52일만에 성을 쌓았다. 비로소 유대인은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은 느헤미야서를 단락별로 풀이하고 해설을 더하며 이를 경영 리더십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목차도 기도로 시작하는 리더, 함께일하는 리더,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 성공을 관리하는 리더, 개혁을 완성하는 리더로 되어 있다.

수많은 리더십 관련 서적에서 경천동지할 리더십의 비법을 찾아낼 것으로 생각하면 순진한 발상이다.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속언 그대로다. 진리는 단순하다. 다만 이를 따르기 어려울 뿐이다. 모든 성공학, 경영학이 다 그렇다. 각종 재테크 책이 난무해도 성공하는 이는 별로 없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이며, 행하는 것과 성공하는 것도 별개다.

수많은 리더십 서적과의 차별점은 바로 '하나님'과 '기도'의 강조에 있다. 느헤미야는 결단에앞서 그리고 행동에 앞서 항상 기도를 드린다.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낸 후 마찬가지로 기도를 드린다. 그의 모든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자리잡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잠시 몇 마디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것은 당신 삶의 최우선 순위여야 하고, 당신 인생 모든 것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P.75)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믿습니다!"만 앞세우면서 치밀하게 자신이 해야 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사고사 나기 쉽다...하나님의 일을 할 때 조그마한 일이라도 철저히 준비하자." (P.77)
"하나님의 리더십 원칙은 다르다. 남보다 더 일하면서도 티내지 않는다. 특별한 대가를 더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할 뿐이다." (P.83)

"진정한 헌신은 바쁜 사람이 없는 시간 쪼개어 살면서 드리는 것이다." (P.84)

"크리스천은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분을 섬기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P.146)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 자신의 예루살렘에 가서 살아야 한다." (P.156)

"진정한 국가의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 되는 데서 온다. 말씀을 통한 영혼의 회복과 개혁, 거기서부터 축복이 시작된다." (P.170)

"오늘날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게 피하고 싶은 곳,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있는 도시 예루살렘이 있는가? 몸을 드리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곳이 있는가?" (P.215)

"교회는 항상 예배를 통한 살아있는 말씀 선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는 크고 작은 문제가 아무리 많이 발생해도 그것들을 끊임없이 여과해 나가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게 된다." (P.228)

기독교의 색채만 배제하면 꽤 그럴듯한 유익한 사고를 접하는 장점이 있다. 그것을 가려서 수용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지만.

그런데 이스라엘이 아니라 대적의 시각, 사마리아인과 아랍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이 예루살렘 성을 세우도록 허용해서는 당연히 안된다. 유대인은 어울려 사는 민족이 아니라 지나치게 배타적이다.

"백성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나가서 이들 이방민족들을 모두 이스라엘민족으로부터 분리시켰다." (P.227)는 기록은 그 편협성을 보여준다. 이를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저자는 부연하지만 그렇다면 종교차별도 아니란 말인가? 타종교를 관용 못하는 유대의 폐습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도 면면히 흐른다.

종교에 기반을 둔 각종 계몽서와 지침서 류를 날카로운 이성의 눈으로 되새김해야 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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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2008.3.2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