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대 - 열아홉 살 엽기소녀의 반위생학적 사랑법!
샤를로테 로쉬 지음, 김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역시 신문 서평을 보고 흥미가 끌려서 일독을 시도하였다. 중간에 그만둘까 싶기도 했지만 끝내 완독을 하였다. 그래야 이러쿵저러쿵 촌평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겉표지 상단에 '열아홉 살 엽기소녀의 반위생학적 사랑법!'이라는 문구가 한마디로 이 소설의 내용을 대변한다. 작가의 약력을 보면 과연 평범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가치에 반항하기 위하여 온갖 반사회적 행동들'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체험이 자전적 소설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유형의 소설에서 문학성(예술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뭐 카타르시스의 한 측면(배설)이라고 우기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확실히 배설에 가깝다.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것은 사람들의 섹스와 관음에 대한 보편적 유혹을 반증할 뿐이다. 그렇다고 B급 내지 C급의 존재 가치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은 자체의 의의가 있다고 믿는다.

일단 비위가 약한 독자라면 구역질을 할 장면이 여럿 있다. 단순히 외설적인 수준을 넘어서 글자 그대로 철저하게 '반위생적'인 곳이. 하기는 주인공인 헬렌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동기 자체도 반위생적이다. 병명이 치질이라서가 아니라 입원하게 된 계기가 그러하다.

구성은 단순하다.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의 일상과 주인공의 상상이 교차한다. 그리고 다시 상처를 덧내고 가족 화합을 포기하고 병원에서 만난 남자의 집으로 간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서 최고의 가치는 가족에게 부여한다는 말이 있다. 온갖 폭력과 범죄 등은 모두 저지르면서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가족 사랑이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 이혼한 부모의 재결합 희구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작가는 이렇게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 소설이 아주 허접하지는 않아요. 요즘 뜨는 말로 '듣보잡'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주인공의 일탈 행위는 가족의 해체에 연유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부모가 재결합하면 주인공은 과거를 청산하고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복귀하는가. 내 예상은 아니다 이다. 주인공은 명실에 엄마의 자살 장면을 그려놓고 남자와 떠난다. 그 남자는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위와 장면을 모두 보았으며 나름 포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주인공의 수술 자국이 아물면 주인공은 다시 광란의 섹스를 벌일 것이다. 섹스에 변태는 없다고 한다. 구강성교, 항문성교는 물론 시대적 추세는 동성애마저 용인한다. 하지만 마약을 한다든지 체모를 미는 것, 생리 중 성교 등을 정상적으로 용인할 수는 없다.

삼백 면이 넘는 분량임에도 술술 읽힌다.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 이것도 굉장한 능력이다. 모두가 갖는 재능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이 예술로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되새김하고 싶다. 내게 <습지대>는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아니다. 양지로 드러난 야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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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2.3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