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밤 랜덤소설선 11
윤영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창작과비평>에서 호평을 한 기억을 되살려 읽다. 표지 안쪽의 사진을 보고서야 한 치의 의심도 없던 남성작가라는 선입관이 무너지다. 사진만 없다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내용도 여성작가적 경향과는 거리가 멀다.

6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인데, 적어도 내겐 전체가 하나로 구성된 장편소설로 다가온다. 비록 외적인 구성은 느슨해 보이지만 내적인 응집력은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오히려 단편으로간주하기 위한 각각의 독자성은 덜 갖춘 듯도 하다. 작품 전체의 연결 고리는 인물 뿐만 아니라 시간과도 묶여 있다. 아난운서의 동일한 방송 멘트가 매편마다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작품의 통일성을 기하는 동시에 멘트를 통해 일차원적 존재로 살아가는 개미같은 인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라는 주제의식과도 상통한다.

해설에 따르면 윤영수는 좋은 작가다. 과거에는 그럴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닌 듯하다. 아니면 독자에게는 덜 친절한 작가이든지. 소설집에 덧붙여진 해설치고는 상당한 분량이라는 점이 이를 예증한다. 이에 따르면 과연 그의 복귀를 환영할 만한 대단한 작가임을 알겠다. 거대담론의 1990년대 중반 현대사회의 왜소한 개인을 그려내 문단의 흐름을 바꾼 작가라니 정말 대단하다.

분명히 문학적 역량을 갖춘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뭐야 이거! 그럴듯하게 평해 놓더니 도대체 작가로서의 기본도 안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다. 병원의 한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일상사를 매 작품 인물과 초점을 달리하여 서술하고 있음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우연적이고 작위적으로 설정하여 황당하다는 느낌이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우연성도 한도가 있을 텐데.

서사 전개도 뭔가 껄끄럽다. 작중 분위기도 대체로 그로테스크하다. 일부러 시간적 배경을 밤으로 설정한 의도가 살짝 엿보인다.

해설에서 평론가는 단순한 세태소설이 아님을 지적한다. 독자의 섣부른 판단을 경계함이다. '무대 뒤의 공연'은 소설 전체의 서막이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며 그들의 개략적 관계를 언급하는 동시에 향후 등장할 사건들의 싹을 키운다. 병실을 무대삼아 그 뒤에는 인간사의 불유쾌한 장면이 잇달아 등장한다.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그나마 당뇨 여자의 아들 신입사원과 꽃집 아가씨의 만남('내 창가에 기르는 꽃')이 따뜻함을 안겨줄 뿐 다른 사건과 인물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성형의사와 아나운서의 외도 그리고 의사의 비극적 종말('당신의 저녁 시간'), 아나운서와 중국집 뽀이의 일시적 소통과 재차 단절('달빛 고양이'), 성형의의 아버지이자 통나무 노파의 남편으로 꽃집 아가씨의 엄마와 재혼을 통해 무성한 생명력을 구매하려고 하는 노인의 퇴행과 몰락('성주')이 현대인의 위선적이며 가식적 군상의 본보기로 제시된다. 특히 '성주'에서 노인의 늙은이로 태어나 어린이가 되기를 희구하는 몽상은 그의 육체와 정신이 퇴행하여 성과 함께 주저앉는 장면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소설 쓰는 밤'은 경비원과 소설가와 신입사원을 등장시킨다. 뚱딴지같은 소설가의 캐릭터는 더욱 황당하다. 약간 맛이 간 듯 하지만 예지 능력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발언을 하는 그의 존재를 어찌 해석해야 좋을 지 애매하다. 그의 기행에서 문득 세례요한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소설은 술에 취한 신입사원과 소설가가 꿈을 꾸는 것으로 끝난다. 갑작스럽고 의외의 종결. 역시 불친절하다. 보자기를 펼쳐서 안에 든 물건을 죄다 꺼내서 보여줬으면 다시 집어넣을 것이지 그냥 나 몰라라 한다.

작가의 우연성과 기이한 구성이 심사숙고의 산물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싶은지도 대강은 짐작할 듯도 싶다. 하지만 '소설 쓰는 밤'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진작 깨달았을까.

소설(<소설 쓰는 밤>) 읽는 밤에 이렇게 난 어줍잖은 촌평을 끄적거린다.

* 알라딘 검색 중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단편 2편이 우수상으로 뽑혔다고 한다. 두 권 다 나도 가지고 있는 건데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틈내서 반추해야지.. 아 정정해야지, 달랑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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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4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