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로 그리스 로마 및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담한 선전포고를 감행한 저자는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와 이 책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로 보다 대중성을 강화한 수메르 신화의 각론을 펼친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내용은 몰라도 그래도 이름이나마 들어본 사람은 꽤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인안나와 두무지 신화는 소수 매니아를 제외한 대다수에게는 금시초문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바로 인안나와 두무지의 사랑과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무척 흥미롭다.
 
인안나는 누구인가? 바로 신들의 우두머리 엔릴의 손녀이며, 달의 신 난나의 딸이고, 태양의 신 우투의 여동생이다. 그렇다면 두무지는 누구인가? 엔릴의 형이자 라이벌인 지혜의 신 엔키의 아들이다. 이 둘의 결합이야말로 수메르 신계에서 최고의 주목받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물며 비극적 결말로 치달았음이야.
 
그리스 신화에서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되었다가 제우스의 중재로 일 년의 절반은 저승에서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서 지내게 되었다.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올라온 동안에 곡식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지하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이 움츠러든다.
 
한편 이집트 신화에서는 오시리스가 이시스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세트에게 살해되어 몸이 산산조각 나는 참변을 겪는 전승이 있다. 이후 오시리스는 생명과 부활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진다.
 
이렇게 신의 죽음과 부활을 지상의 것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유래를 저자는 수메르 신화에서 찾고 있다. 바로 인안나의 저승 여행이다.
인안나는 수메르 신화에서 다면적인 존재다. 보기 드문 여신으로서 그 역할도 훗날 아프로디테와 아테네를 합친 이상의 권능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 인안나는 지혜의 신 창조주 엔키를 유혹하여 전능한 메를 확보하기조차 한다. 그런 인안나가 지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승의 자리마저 차지하기 위하여 언니 에레쉬키갈라가 다스리는 저승을 찾아간다. 그리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엔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되찾은 인안나는 자신의 남편 두무지의 희희낙락한 모습에 분개하여 저승사자에게 자신 대신 남편을 목숨을 넘겨버린다. 두무지와 인안나의 러브 스토리는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두무지의 절규와 애가로 점철된다. 신들조차 도망가지 못하는 저승사자의 냉혹함. 하여튼 저승에서 죽었다 살아나는 인안나가 이쉬타르로, 이어 다른 신의 이름을 빌려 각처에서 득세하였다고 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인안나 신화에 대한 해설이다. 저자와 편집자 간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수메르 신화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신화의 난삽함에 혼란을 겪지 않도록 인안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곁가지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쓰고 있다. 이미 저자의 전작을 독파한 독자에게는 탐탁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초심자에게는 유익하다.
 
수메르 문자와 단어에 대한 뜻풀이는 흥미롭지만 다소 전문적이라서 순수하게 신화에 흥미를 가지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다지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은 순전한 개인적 취향이므로 평가를 유보한다.
 
한편 인상적인 내용은 수메르 신화에서 숫자 일곱(7)의 의미에 관한 부분이다. 인안나가 저승을 통과할 때 일곱 개의 문을 지난 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숫자 일곱이 내포하는 의미인 대변화 또는 운명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하다. 문득 벨라 바르토크의 오페라 <푸른 수염 영주님의 성>이 떠오른다. 영주 부인은 성의 각 방을 들어가 보는데, 금지된 일곱 번째 방문을 여는 행위는 곧 죽음과 연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푸른 수염 영주의 전설을 그 일차적 근원은 기독교에 두겠지만 먼 근원은 결국 수메르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닐는지.
 
그렇게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으면서 수메르 신화에 독자들이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는 저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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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0.26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