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 (구) 문지 스펙트럼 11
작자 미상, 이동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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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는 고대 영어로 씌어진 최초의 장시로서 고대 스칸디나비아를 배경으로 베오울프라는 한 영웅의 일대기를 기술한 영웅 서사시이다. 흔히 그렇듯 작자는 미상이며, 10세기 이전에 문자화되었다.

지리적 배경이 비교적 생소한 북유럽 지역이므로 등장인물과 계보, 괴물마저도 낯설다. 무엇보다도 아직 기독교에 완전히 융화되기 이전 토속적 세계관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 3천행이 넘어가는 대작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고대 영웅을 다룬 소설처럼 술술 읽혀나간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도 후에 영화화되었다고 하므로 기회가 닿으면 한 번 감상하리라.

각설하고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어 기분 좋은 생소함을 안겨주는데, 주인공 베오울프는 영웅적 업적 외에도 외에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현재의 스웨덴 남부와 핀란드 남부 지역의 예이츠 세 왕국의 물고물리는 치열한 전쟁과 은원 관계가 작품의 깊이와 폭을 더해주고 있다.

베오울프는 예이츠 출신의 용사이다. 덴마크 왕국에 그렌델이라는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잡아먹지만 아무도 이를 처치하지 못한다. 베오울프는 용사들과 함께 덴마크로 건너가 그렌델을 해치운다. 무기가 아무 소용이 없자 맨손으로 그를 잡아 죽인 것이다. 또한 아들의 죽음에 분노한 그 어미마저 괴물들의 호수로 들어가서 해치운다.

여기서 이야기는 오십년을 훌쩍 넘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예이츠의 왕이 된 베오울프는 평화롭게 나라를 잘 다스리는데 땅속에 잠자고 있던 용이 깨어나서 사람들을 불태워 죽인다. 노령의 베오울프는 죽음을 각오하고 용의 동굴에 뛰어들고 젊은 용사 위글라프의 도움을 받아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용을 죽이는데 성공하나 자신도 치명상을 입고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고대 영웅들의 위업과 그를 기리는 문장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어, 문학사적 의의 외에 현대의 우리에게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 <베오울프>는 좀 다르다. 그의 영웅으로서의 업적은 인간을 상대로 한 참혹한 전쟁에서가 아니라 인간을 괴롭히는 괴물을 소탕한데서 비롯한다. 또한 그의 최후 역시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용을 쓰러뜨리는 싸움의 결과이다. 그는 휴머니즘적 영웅인 셈이다.

또한 통상 화려하고 당당한 찬미로 끝나는 영웅 이야기와는 다르게 베오울프는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젊은 시절이라면 패기와 용기, 자신감과 체력 등 명예를 위하여 모험을 무릅쓰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고령의 늙은 영웅, 그에게는 괴물과 싸우는 게 버겁다. 승리에 대한 확신보다도 싸움의 패배, 즉 죽음에 대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의 마음은 슬펐고 불안했으며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노라. 그 고령의 왕이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은 그에게 바짝 다가와 영혼의 보고를 찾아 육신에서 그의 생명을 떼어놓으려 했노라. 이제 군주의 생명은 육체에 오랫동안 묶여 있을 수가 없었노라.” (P.120)

그럼에도 그는 덴마크의 흐로드가르 왕과는 다르다. 그는 목숨을 아끼고자 운명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무릅쓴 고독한 영웅이다. 그래서 그의 명예는 죽음과 더불어 스러지지 않고 백성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곳곳에 기독교의 자취가 드러나 있지만, 이것은 표피에만 머물고 있다. 즉 작품의 온전한 보존을 위하여 종교의 외피를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가혹한 검열에도 버티어 나갈 수 있으므로. 한 꺼풀 벗겨보면 기독교의 세례 이전 영국인들의 선조인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의 거칠고 생생한 호흡을 가감 없이 체험할 수 있다.

북유럽에는 흔히 알려진 그리스 로마신화 체계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신들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들의 방대한 신화 체계는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일부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우리들에게 그들은 익숙하지 않다. 이번 참에 북구의 신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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