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셀레스티나 을유세계문학전집 31
페르난도 데 로하스 지음, 안영옥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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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쓰인 스페인의 고전문학이다. 이 작품의 의의는 “‘만일 스페인에 <돈 키호테>가 없었다면 대신 그 영광을 누렸을 작품’이란 말 한마디로 설명된다.”(P.379)고 옮긴이는 설명한다. 수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이 인류 최고의 문학 유산으로 손꼽는 <돈 키호테>에 버금가는 작품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이 작품은 특이한 구성을 택하고 있다. 대화체 소설 또는 희곡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어 명확한 장르 규정이 어렵다. 아직 문학의 세밀한 분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므로 이렇게 형식상 혼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우리 고전문학에서 판소리와 판소리체 소설의 관계와 유사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칼리스토는 멜리베아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중개인으로 셀레스티나를 요청한다. 셀레스티나의 계책으로 멜리베아도 칼리스토를 사랑하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이때 중개 성공에 대한 보상의 분배로 칼리스토의 두 하인은 셀레스티나와 다투다가 죽이게 되고 자신들도 교수형을 당한다. 한편 칼리스토는 담장에 걸쳐놓은 사다리를 급히 넘어오다가 실족하여 목숨을 잃게 되고 절망한 멜리베아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문학상 영원한 테마인 남녀 간의 사랑이 이 작품의 핵심 소재이다. 하지만 여기엔 사랑과, 탐욕, 질투와 시기 등 인간사의 적나라한 모습이 가감없이 그려져 있다. 중세의 신성을 벗어나 서서히 르네상스로 이행하는 과정의 세계상이다.

칼리스토는 당당하게 멜리베아에게 청혼하지 않는다. 아니, 전혀 결혼 등 미래에 대한 언약을 언급하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가문 간에 철천지원수 사이도 아니다. 귀족과 평민(또는 천민) 등 신분상 격차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통상적인 만남과 교제 절차를 따랐다면 연인 간, 하인과 셀레스티나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칼리스토는 처음부터 은밀하게 만남을 주선할 방책만을 강구하였다. 그래서 셀레스티나가 개입할 여지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옮긴이는 과거 번역본에서 이렇게 해설을 덧붙였다. 칼리스토는 정통 스페인 귀족가문이며, 멜리베아 집안은 개종한 유대인이라는 사실. 따라서 귀족이라는 타이틀은 획득했지만 정상적인 통혼은 꿈도 꾸지 못할 관계라는 것.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세간의 이목을 피하는 사랑과 괴로움이 다소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 완역본에서는 관련 내용이 모두 빠져있다. 오히려 작품을 읽다 보면 멜리베아 집안이 칼리스토보다 더 신분이 높은 게 아닐까 추정되는 대목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멜리베아와 나 사이에 신분의 위엄으로 봐도 그렇고, 그녀의 냉랭한 태도를 봐도 그렇고, 순종의 가능성으로 봐도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있는데,” (P.84)
“그 여자는 집에 하인이 많으니 주인님과 주인님의 종인 저희들을 그들의 제물이 되게 할 거예요.” (P.234)
“당신의 순수 혈통과 행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저이기에 저 자신이 정말 칼리스토인지를 고쳐 보게 된답니다.” (P.247)
“이 마을에서 우리와 연을 맺기를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소? 어느 누가 우리 딸과 같은 보배를 배우자로 삼아 행복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소? 어떤 규수가 결혼에 요구되는 네 가지 필수 조건을 우리 딸만큼 갖췄겠소?” (P.299)

연인 간의 불명예스러운 사랑은 어두운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 무엇보다 그들의 심야 만남은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 더구나 두 하인들이 죽음을 당한 바로 그 날에도 칼리스토는 멜리베아와의 밀회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들을 위해 수고한 하인들은 광장에서 목이 잘렸는데, 서로 껴안고 좋아 죽겠다 하고 있는 저들을 보라고.” (트리스탄, P.278)

이러한 점과 더불어 칼리스토의 두 하인에 대한 언사, 특히 파르메노가 충직한 하인에서 일탈하는 과정은 과연 칼리스토라는 인물이 사랑에 빠져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뛰어난 인물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악마가 널 이기든지, 비운으로 사라져 버리든지, 죽을만큼 지독한 고통이 영원히 널 따라잡든지, 그래서 세상에 뭣과도 비교되지 않을 고통으로 앓다가 죽어 자빠지든가 해라! 염병에 걸려 뒈질 놈, 거기 있지 말고 빨리 내 침실에 들어가 잠자리나 펴라!” (P.34)
“이 망나니가 매를 벌고 있구나, 나쁜 종 같으니. 너는 어찌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을 그토록 나쁘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아라.” (P.85~86)
“입 닥쳐라, 입 닥쳐! 망할 놈 같으니! 나는 앓고 있는데, 너는 개똥철학을 하고 있구나.” (P.87)
“입 닥쳐! 미친놈아, 돼지 같은 놈아, 의심쟁이들아! 천사들이 나쁜 일을 꾸민다고 설득시킬 작정이구나!” (P.235)

작품의 표면상 주인공은 두 연인이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셀레스티나다. 그래서 작품 표제도 애초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희비극>에서 <라 셀레스티나>로 변천하였다. 셀레스티나는 마녀로 불리는 노파로, 창녀들의 포주이며, 마을의 만능해결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약품을 사용하여 창녀의 머리털 색을 바꾸거나,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심지어는 숫처녀로 감쪽같이 위장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사기꾼이기도 한 셈이다. 여하튼 그녀는 복합적 속성을 지닌 존재로서, 작품 전개의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칼리스토의 두 하인, 셈프로니오와 파르메노, 그리고 셀레스티나와 같이 지내는 두 창녀, 엘리시아와 아레우사도 각기 당대 서민사회의 참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귀족적 고상과 우아함과 대비되는 속인들의 생생하면서도 비속하기까지한 일상을 네 남녀는 말과 행동으로 숨김없이 예증한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사랑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셀레스티나는 멜리베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것(감미로운 사랑)은 숨겨진 불이자 즐거운 상처에 달콤한 독약이자 감미로운 비통함이며, 유쾌한 고통이자 상처에 즐거운 격정이고 달콤하면서도 끔찍한 상처이며 부드러운 죽음이지요.” (P.221)

그리고 이 작품을 지배하는 가치관은 바로 철저한 현세주의다. 인생은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것, 한창 젊고 아름다울 때 인생을 즐겨라 늙어지면 못 노나니! 곧 쾌락주의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래 슬픈 것을 피하고 쾌락과 함께하려는 본능이 있으니 움츠러들거나 낙심하지마라. 향락은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여자를 즐기는 것을 뜻하는데, 특히 사랑 놀음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게 즐겁지.” (셀레스티나, P.74)
“너희들은 너희들의 싱싱한 젊음을 즐겨. 시간 있을 때 그러겠다고, 더 좋은 때가 오면 하겠다고 하다가는 후회할 시간만 온단다.” (셀레스티나, P.204)

이 작품의 기본 사상을 염두에 두고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연애를 다시 살펴본다. 칼리스토와 멜리베아는 당대의 도덕률은 염두에 두지 않는 현세적 쾌락주의자다. 칼리스토의 경우 셀레스티나를 통해 멜리베아에게 접근하려는 태도, 명예로운 청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 그리고 밀회 시 멜리베아의 육체에 대한 끊임없는 탐닉 등으로 명확하다. 그런데 멜리베아는? 언뜻 그녀는 보수적이고 도덕적 정조관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발언과 칼리스토의 죽음 이후 부모를 저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모습에서 지고지순함을 떠올리기 어렵다.

“부모님이 지친 노년을 즐기시려면 나로 하여금 젊은 시절을 즐기시도록 내버려 두셔야 할 거야. 내가 나를 알고나서 가장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분을 알지 못하고 보낸 시간, 그분을 즐기지 못하고 보내 버린 시간이다. 나는 남편을 원하지 않고 결혼의 신성함을 더럽히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걸었던 결혼 생활을 다시 밟고 싶지 않아.” (P.302)

종교재판이 횡행하여 까딱하면 목숨을 잃기 쉬운 당대에서 <라 셀레스티나>는 중세 엄격주의와 신성주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도발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종교 검열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모면하고자 안전핀을 마련하는 궁여지책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또한 작품에 대한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은 무질서한 욕망의 포로가 되어 여인을 자기의 신이라고 부르는, 미친 사랑에 빠진 사내들을 비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물론 뚜쟁이와 사악한 아첨쟁이 하인들의 속임수를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다.” (P.29)

작품 말미 멜리베아의 아버지 플레베리오의 탄식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그는 무남독녀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앞에서 절규한다. 그는 변덕쟁이 운명을 저주하며, 거짓부렁이 세상을 비난하며, 사랑에 대하여 노년에 대하여 그리고 딸의 죽음을 한탄한다.

과연 그의 처절한 심경을 멜리베아는 예상이나 하였을까? 알았다면 높은 탑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였을까? 이 작품은 곱씹을 결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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