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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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레스코프 작품이 제대로 된 책으로 소개되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제22권으로 출간된 이 책이 바로 그렇다. 그동안 나온 얼마 되지 않은 작품들은 판형이나 번역 상에 있어 완전한 만족도를 주지 못하였다. 더구나 이 책은 번역자 또한 국내 유일한 레스코프 전문가이니 기대감이 대폭 상승된다.

이 세 작품은 과학기술과 예술을 다루고 있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왼손잡이>의 장인은 현미경으로 봐야할 정도의 미세한 기계 벼룩의 발에 편자를 씌우고 거기에 장인의 이름을 새길 정도의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분장예술가>의 아르카지는 배우의 얼굴을 단순히 분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한 창조를 통해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솜씨를 지니고 있다. 한편 <봉인된 천사>은 러시아 정교회의 이콘(성화상) 예술에 대한 의의와 깊은 이해를 갖게 한다.

<봉인된 천사>는 그의 창작 중기에 해당하며, <왼손잡이>와 <분장예술가>는 창작 후기에 씌어졌다. 따라서 작품 결말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레스코프는 1870년대까지는 아직 종교와 사회 체제에 대해서 애정과 낙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봉인된 천사>는 종교적 갈등이 - 비록 우연한 오해의 산물이지만 - 해소되고 “러시아가 하나의 영으로 화합”(P.266)되는 해피엔딩(그래도 작품 후반까지의 팽팽한 긴장감과 종교적 예술적 숭고함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허무하고 공익캠페인적 결말은 납득할 수 없다!)을 보인다.

반면 다른 두 작품은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당시 작가는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 경향을 보이고 있어 장인의 초라한 죽음과 아르카지의 어처구니없는 횡사를 통해 강렬한 사회비판의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 작가는 유능한 장인(영국에서의 환대와 이에 대비되는 조국의 냉대 간 날카로운 간극을 보라!)과 예술가의 불우하고 소외된 삶과 죽음을 통해 농노제 등과 같은 신분계급제의 불합리, 특히 당대 러시아 사회에서의 주류 계급의 폐쇄성과 낙후성을 폭로하고 있다. 이렇게 레스코프는 후기에 들어서 진정으로 풍자와 해학의 달인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기법 면에서 <분장예술가>와 <봉인된 천사>는 작가 특유의 방식, 즉 화자의 입을 통해 작중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형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왼손잡이>는 액자형식을 버리고 삼인칭 시점을 채용하면서도 장기인 스카즈 기법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보다 진지한 모색의 자취를 보여준다.

한편, <봉인된 천사>의 화자와 영국인 감독과의 대화에서 옛것과 새것의 조화에 대한 작가의 바램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고대 전승의 딱지를 떼어내는 데만 급급하지요. 모든 것을 새것처럼 보이게 말입니다. 마치 러시아의 모든 것이 어제 막 알을 까고 나온 것처럼 말이에요.” (P.201)

또한 <왼손잡이>의 장인처럼, <봉인된 천사>의 이콘 등 조국의 아름다운 전승이 타국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반면 정작 조국에서는 외면당하는 씁쓸한 현실을 언급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박대를 당한 우리는 영국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우리의 영혼에 대한 열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P.206)

레스코프의 이러한 지적과 비판은 당대 러시아에만 주효하지 않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기만 해도 쉽사리 알 수 있다.

팜바 신부의 여운이 감도는 말로 마무리한다.

“천사는 인간의 영혼 속에 살고 있지만, 인간의 헛된 생각으로 인해 봉인되어 있지. 그리고 그 봉인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네.” (P.233) 

- 2011. 1. 21 마이페이퍼에 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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