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만드라골라 /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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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라골라>를 수록한 책을 찾다 보니 <군주론><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는 재독을 하게 되었다. 기존 읽은 책과 차이점은 이 책은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다는 것이며, 세 편을 한 권에 담고 있어 소위 가성비가 높다. 본 목적인 <만드라골라>에 앞서 <군주론><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를 다시금 일별해 본다.

 

옮긴이는 포르투나와 비르투를 번역하지 않고 독음을 그대로 사용한다. 다른 번역본도 그런 경우가 있으니 새삼스럽지는 않은데, 마키아벨리가 포르투나와 비르투를 여러 가지 용례로 사용하고 있어서다. 특히 군주가 갖춰야 할 비르투의 조건이 도덕적 선악을 넘어설 것을 그가 요구하고 있기에 논란이 생긴다. 마키아벨리의 사고를 이해하려면 그의 인간관을 파악해야 한다. 성선설과 성악설, X 이론과 Y 이론 등의 관점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는 철저히 성악설의 견해를 밝힌다. 그가 현실에서 파악한 인간의 속성은 대체로 부정적이고 선하지 않다. 현실 정치를 할 때 현실 인간에 기반하여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키아벨리가 인간 본성에 대하여 성선설을 믿었다면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을 것임은 확실하다.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고, 변덕스럽고, 거짓말하고 기만하려 하며, 위험은 피하고자 하고 이득엔 탐욕스럽다는 것이 타당한 일반 원칙이기 때문이다. (P.109, 17)

 

왜냐하면 인간은 선을 강요당하지 않는 한, 언제나 악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P.144, 23)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는 체사레 보르자보다 더욱 이상화된 군주 모델에 가깝다. 체사레는 아버지 교황의 힘을 빌려 세력을 키우고 군주로서 확고한 토대를 세우기 전에 거꾸러지고 말았다. 카스트루초는 다르다. 그는 맨땅에서 맨손으로 왕업을 일구었다. 그가 성취해 낸 업적과 명성은 체사레보다 훨씬 뛰어나고 높다. 피렌체와의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우호적인 세라발레의 군주 만프레드를 살해하는 장면 등을 보면 확실히 마키아벨리가 감탄할 만하다. 물론 독자는 카스트루초의 생애에서 주요 사실을 마키아벨리가 조작하였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그는 카스트루초의 삶을 이상화시켰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서 마키아벨리가 희극을 썼고, 그것이 당대에 매우 인기작이었다는 내용에 의아하였다. 아무리 마키아벨리가 가볍게 쓴 글이라고 하더라도 무심하게 넘겨지지 않는다. <만드라골라>는 코미디 요소를 담뿍 담고 있다. 모든 희극은 자체로 풍자 정신을 지닌다. 이 작품은 무엇을 풍자하고 있는가? 물론 당대의 피렌체, 나아가 이탈리아 사회상이다.

 

실은 이 이야기는 정말 경박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유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현명하고 위엄 높으신 분들께는 이렇게 변명을 드릴까 합니다. 작가는 이런 하찮은 생각들로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비참한 삶은 좀 더 즐겁게 만들려는 것이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작가는 어디로 고개를 돌려야 할지 모르니까요. 그는 이런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써 또 다른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차단당했습니다. 게다가 그의 노력에 대한 보수를 기대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P.165, 프롤로그)

 

프롤로그를 보면 우리는 마키아벨리가 처한 딱하고 막막한 상황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물속에 가라앉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 백조와도 같은. 그럼에도 그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은 약해지지 않는다. 칼리마코는 남성 주인공답게 군주의 비르투를 갖춘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루크레치아가 유부녀라는 점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겠다는 목적이 더욱 중요하다. 영토를 정복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칼리마코) 난 이제 그 어떤 일도 두렵지 않아. 나는 어떤 일이라도 하겠어. 설사 그게 어리석고, 잔혹하고, 사악하더라도! (P.176, 13)

 

여성 주인공의 이름이 루크레치아인 점은 분명 의도적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도 유명한 루크레치아는 고대 로마왕국에서 정절의 화신이다. 강제로 정조를 빼앗기자 복수를 당부하고 공개적으로 목숨을 끊은 루크레치아와, 남편에 의해 억지로 외간 남자를 맞아들여야 했지만 남편을 배신하고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려는 루크레치아. 작품 전반부에서 도덕성에서 명성 높던 그녀의 변신은 반전의 묘미와 함께 더는 로마 시대를 기대할 수 없다는 냉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독자는 그녀를 욕할 수 없다. 루크레치아에게 있어 이제부터는 칼리마코가 진짜 남편이며, 추후 아기 아빠가 될 것이므로. 니차의 다음 대사는 이중적 의미의 진실에 해당한다.

 

(니차) 루크레치아, 이분(칼리마코)이 바로 노년에 우리가 의지할 아이를 갖게 해주신 분이야. (P.251, 56)

 

어리석은 남편, 욕심 많은 사제, 아름다운 아내, 멋진 젊은이, 부정을 설계하는 악역. 만드라골라라는 사랑의 미약 차용. 이러한 전형적인 희극 요소 외에 극 시작 전과 막과 막 사이에 등장하는 칸초네가 독특하다. 고전 희곡에서 코러스의 유산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기능도 유사하다.

 

이 두 작품은 <군주론>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관직에서 물러나 유배 생활에 들어선 마키아벨리의 심경 변화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P.19, 옮긴이의 말)

 

한 권의 책에 굳이 세 편을 집어넣은 까닭은 옮긴이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군주론>을 중심으로 내용상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키아벨리의 사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루크레치아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한 칼리마코는 결코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물이 아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간계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체사레와 카스트라초와 마찬가지의 유형이다. 두 사람과 달리 칼리마코는 비르투와 포르투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끝내 목적을 이룬다. <만드라골라>는 후대 전문적인 극작가들의 작품에 비하면 성격유형이 단순하고 사건 전개도 느슨하다. 뛰어난 문학작품으로서라기보다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다른 창구로 간주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작품해설의 관점도 독특하지만, 부록의 용어·인명 풀이가 매우 유익하다. <군주론>을 처음 읽는 독자보다는 다른 번역본을 읽어본 적 있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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