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늪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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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의 전원소설 중 하나다. 으스스한 표제와는 달리 내용은 지극히 전원적이고 단선적이다. 남녀 주인공의 결혼, 시골 배경이라는 점에서 먼저 읽은 <사랑의 요정 파데트>와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순수하고 흐뭇함을 자아내는 정도에서 전자에 다소 못 미치는데, 주인공의 연령 차이가 결정적이다. 제르맹은 스물여덟 나이에, 애 셋이 딸린 홀아비다. 마리는 방년 십육 세의 처녀다. 누가 봐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조건, 게다가 마리는 애초에 나이 많은 사람을 배우자감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제르맹을 동네 아저씨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양치기로 가는 길에 제르맹과 동행하였으며, 못된 농장 주인으로부터 달아나는 길에 제르맹의 도움이 없었다면 곤욕을 치를 뻔하였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구원해 준 남자에게 아무래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마리의 어려운 집안 살림을 알고 제르맹은 남모르게 식량을 구원해준다. 마리 입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제르맹과의 결혼을 받아들이게끔 상황이 돌아갔다. 마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노모의 생계도 고려해야 한다. 제르맹은 마을에서 부농에 속한다. 솔직히 독자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마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제르맹과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 나쁘게 표현하자면 작가와 제르맹이 짜놓은 거미줄에 걸린 마리는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다.

 

여기까지가 삐딱한 독자의 관점이라면 사랑과 결혼에는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마리는 제르맹의 호의를 마다할 수 있고, 그의 청혼에 명확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녀가 결국 제르맹을 남편감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대에 연령차가 많은 혼인이 없지 않았으며, 마리와 제르맹의 나이 차는 띠동갑이니 요새만 해도 허용되는 수준이다. 게다가 그녀는 제르맹의 인성을 직접 보고 겪었으니 오판할 여지도 적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홀바인의 판화와 한 농부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소박한 시골 생활과 풍습을 그리려고 했다고 밝힌다. 미안스럽게도 엄청나게 감동적이거나 순박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단순하고 직선적이며 인위적인 작품 전개가 감동을 깎아 먹는다. 그럼에도 상드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우리는 예술의 사명을 정서와 사랑의 전도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소설은 평화롭던 시대의 비유와 우화를 다시 부활시켜야 하며, 그것들의 묘사에서 발생하는 공포를 덜어주기 위해 예술가는 조심성과 화해의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는 것보다 더 중대하고 더 시적인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P.11)

 

제르맹에게 맞닥뜨린 게랭 미망인과 마리는 양극단의 전형이다. 부유하고 도시적이며 세련된 데다 허영과 교태를 부리며 구애자들을 거느리는 걸 자랑하는 미망인과, 찢어질 듯 가난하며 순박한 시골 처녀. 제르맹은 마의 늪에서 길을 잃고 하룻밤을 보내는 과정에서 마리의 아름다움과 영리함, 따뜻한 마음씨를 발견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애를 기분 좋게 잘 돌보는 태도에서 아빠로서 고마움과 애정을 품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개는 더욱더 자욱해지고, 달은 완전히 가려졌다. 길은 몹시 험했으며 물웅덩이는 깊었다. (P.60)

 

귀신이 출몰하는 불길한 장소로 기술되는 마의 늪은 작중에서 사건의 전개와 반전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늪에서 헤매고 노숙하는 과정에서 제르맹과 마리는 서로의 속마음을 주고받는 친밀한 관계에 이른다. 나중에 못된 농장 주인에게 쫓기는 마리를 늪 근처의 숲에서 구해낸다. 이로써 제르맹은 마리에게 있어 은인이자 구원자의 지위로 올라선다.

 

가엾은 마리, 넌 마음씨가 착해. 난 그걸 알아. 그러나 넌 날 사랑하진 않지. 그리고 네가 불쾌해하고 싫어하는 것을 내가 알까 봐 얼굴을 내게 숨기는 것이지.” (P.137)

 

두 사람의 결합은 조심스럽지만 급격하게 이루어진다. 절망에 휩싸인 채 부르짖는 제르맹의 외침과, 그에 대한 사랑을 문득 토로하는 마리의 고백은 해피엔딩의 대단원이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 싶은 독자라면 이어지는 작가의 <부록> 편을 보자.

 

소설 본문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대목은 실상 <부록>에 있다. 시골 결혼식, 색 리본, 결혼식, 양배추라는 소제목을 각각 달고 있는데, 거칠게 말하자면 제르맹과 마리의 결혼을 통해 본 시골의 결혼 풍습 소개다. 삼굿장이와 무덤 파는 사람이 이끄는 신부와 신랑 무리의 팽팽한 대결은 마치 우리네 함잡이의 짓궂은 장난을 연상시킨다. 특히 삼굿장이는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중대한 존재임을 작가는 강조한다.

 

결혼식에서 색 리본을 나눠주거나 풍성한 양배추를 지붕 꼭대기에 올려놓는 관습은 이채롭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산(多産)의 기원이었음을 알게 된다. 신성한 양배추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이 유일하게 멍청한 주정뱅이라는 점은 문득 디오니소스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제르맹의 기쁨의 아침기도.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상정한 가장 단순하고 순박하며 아름다우면서도 순결한 전원의 장면이리라.

 

[제르맹]는 자신이 갈다 놓아둔 밭고랑에서 무릎을 꿇고, 땀으로 아직도 축축한 뺨 위로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만큼이나 고귀한 심정으로 아침기도를 드렸다.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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