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올라누스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셰익스피어 전집 1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조덕희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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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으로 내게 익숙한 코리올라누스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소개된 인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고대 로마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장군인데, 이 희곡을 통해 살펴본 그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어렵게 군주정을 종식하고 얻은 공화정인데 로마에서 추방당하자 오히려 외적을 이끌고 조국을 쳐들어온 인물에 대한 평가가 좋을 리가 없으리라.

 

이 작품은 역사극이자 한층 정치극이다. <작품 해설>에 이 희곡의 특징이 요약되어 있어 인용한다.

 

민중들의 반란, 민중들에 대한 귀족들의 혐오감, 민중들의 이중성과 가벼움, 그러한 민중의 속성을 이용하려는 세력, 그 세력과 귀족들의 대립, 민중과 대립했던 귀족의 몰락, 그 귀족이 취한 적과의 동맹, 그 동맹 안에서 다시 벌어지는 계략과 그로 인한 죽음 등 이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인 톤을 유지한다. (P.268)

 

공화정이 곧 민주정을 지칭하지 않는다. 로마 공화정은 형식적으로 민중의 지지를 받아 실제로 귀족이 통치하는 체제다. 최고 통치자인 집정관이 되려면 민중 앞에서 유세하고 표를 줄 것을 호소하는 모습이 흡사 오늘날의 선거와 유사하다. 시장이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 각자에게 깊은 관심과 동정을 기울이는 체한다. 실제로 관심 없고 하기 싫어도 겉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코스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뭐 민중들의 안위와 생활에 큰 관심이 있겠는가. 그랬다면 기근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구제를 위해 식량을 풀었을 테지만, 그들은 이를 거부하였고 여기에 앞장선 이가 바로 마르티우스, 훗날 코리올라누스다.

 

마르티우스에 대한 평가는 내외가 일치한다. 고결하고 도도하며 지극히 오만하다는 점. 전자는 귀족들 내부의 평가이며 후자는 호민관의 생각이다. 그는 민중들을 대놓고 혐오하며, 이것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그는 다른 귀족보다 솔직한 셈이다.

 

(마르티우스) 전쟁은 두려워하면서도 평화롭게 살게 해 주니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냐 이 미천한 똥개 같은 놈아. (P.27, 11)

 

(마르티우스) 목매달아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들 같으니! (P.29, 11)

 

(코리올라누스) 이 똥개 같은 놈들! 나는 너희가 숨 쉴 때마다 풍기는 악취를 혐오한다. (P.169, 33)

 

그의 반민중관의 가장 압권은 31장에서 나타난다.

 

(코리올라누스)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저 변덕스럽고 시궁창 내 풍기는 종자들에게 똑똑히 들려주어서 제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똑똑히 알게 해줘야겠습니다. 내 다시 말하지만 저딴 놈들에게 알랑방귀를 뀌어대며 우리 귀족들과 어우러져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마치 우리가 애써 일군 땅에 폭동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P.129, 31)

 

(코리올라누스) 또다시 민중들에게 양보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정의는 그 가치를 잃고 말 것이요, 로마는 건전한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입니다. (P.134, 31)

 

이 희곡에서 코리올라누스가 내뱉는 대사의 대부분은 이렇듯 민중을 폄하하고 혐오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귀족들의 속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솔직하지만, 집정관이 되기 위해서는 낙제점이다. 모름지기 정치의 요체는 가면을 쓰는 데 있지 않은가. 그의 어머니 블룸니아의 말처럼 말이다. 그의 명예와 고결은 철저히 개인 중심주의에 근거하였다고 보는 게 맞다. 그토록 모친에게 순종적이던 그가 여기서는 그의 어머니 말을 좇는 데 실패하였으니.

 

코리올라누스가 진정으로 고결한 사람이라면 로마를 증오하고, 로마에 복수하고자 하는 반역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는 유아독존적인 독선주의에 매몰되어 스스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반사회적인 행위조차도 서슴없이 자행하였으니 그에게 있어 고결함이란 목적이 아닌 도구 또는 수단에 불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코리올라누스) 난 단지 나를 내쫓은 자들에게 내 이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고자 이곳에 왔소. 허니 만약 그대가 그동안 그대의 원한을 풀고 조국의 치욕을 씻고 싶은 복수심을 키워왔다면, 나의 이 비참한 처지를 이용하여 나를 그대의 편에 서게 하시오. 나는 지옥 불처럼 끓는 분노심을 가지고 나의 조국과의 싸움에 임할 것이니, 조국에 대한 나의 증오는 그대에겐 이득이 될 터. (P.193, 45)

 

앞서 읽은 <줄리어스 시저>가 군주정과 공화정의 대립을 다룬다면, 이 작품은 귀족정과 민주정의 갈등을 제재로 한다. 민중의 표변성과 우매성은 새삼스럽지 않다. 전작에서 이미 폼페이를 잊은 민중에 대한 비난이 있었듯이, 수백 년 더 이전을 다룬 여기에서도 민중은 코리올라누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지만 곧 그를 민중의 적으로 내쫓는다. 내놓고 자신들을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사람을 제아무리 바보라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두 사람의 호민관, 시씨니우스와 브루투스는 민중과 코리올라누스의 관계 설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정적을 제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작가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그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지만 호민관의 입김에 휘둘리기 쉬운 민중의 작태를 보면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것은 한순간임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선거로 집권한 후 독재와 전체주의를 강화한 역사적 사례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오늘날 영국 사회에 여전히 명목상의 귀족 신분이 존재하지만 실질이 없다면 당대는 명백한 신분제 사회였다. 군주-귀족-평민으로 구분되는 신분 질서에서 귀족과 평민이 단합하여 군주의 권력을 약화시켰지만, 귀족과 평민의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불 속에 던져진 숯처럼”(P.181, 43)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양 계급의 대치가 빚어내는 잠재적 위험과 비극을 코리올라누스의 행적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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