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스 시저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셰익스피어 전집 1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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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일파에 의한 시저의 암살은 (의도와는 정반대로) 로마 제정의 서막을 연 중대한 사건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사건을 셰익스피어의 글자 그대로 힘차고 극적이며 웅변적인 대사를 통해 생생한 현장감을 얻는 느낌은 색다르다. 연극 무대에서 실제 공연을 봤다면 감동은 배가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시저는 표제와는 달리 주변적 인물이다. 시저의 존재감은 자신보다는 주변의 말과 평에 의해 두드러진다. 그의 행동과 대사로 판단하는 시저는 오만함과 고결함, 그리고 자신감이 한데 어우러진 인물이고, 작가 자신도 그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4막에서 그의 유령이 나타나고 브루투스가 그의 혼령을 의식하고 있음을 통해 억울한 죽임을 당한 고결한 위인으로서 시저를 바라본다.

 

시저를 살해한 두 주인공 카시우스와 브루투스. 처남 매부 사이인 그들의 시저 살해는 상당히 다른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이 드러난다. 브루투스는 시저를 사랑하고 시저도 그를 아끼는, 즉 그의 행위에 있어 사적인 감정은 개입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오직 로마 시민과 인민들을 위해, 로마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시저를 칼로 찌른 것이다. 로마가 다시 군주정으로 퇴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

 

(브루투스) 내가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시저가 죽어서 자유 시민으로 살기보다 시저가 살아서 노예로 죽는 편을 탁하시겠습니까? (P.99, 32)

 

카시우스는 어떤가? 시저 살해의 주범은 바로 그다. 그는 동지들을 포섭하고 브루투스를 한패로 끌어들이는데, 시저에 대한 그의 반감은 개인적 측면이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자신이 보기에는 자기와 별 차이가 없는 그가 신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고 왕으로 추대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시저의 눈 밖에 난 처지다.

 

브루투스를 교묘하게 꼬드겨 시저 살해의 실리와 명분을 얻고자 하는 그 의도의 비순수성은 극 중에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시저가 폭군이 되어 로마인들을 도탄에 빠뜨릴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지나친 비약을 담고 있음에도 군주제를 반대하는 브루투스의 내심을 크게 흔들리게 만든다.

 

브루투스가 시저를 죽여야만 한다고 다짐하는 장면에서 그의 논법도 가정과 비약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진정으로 왕이 되고자 하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시저는 이미 죽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브루투스) 지금으로서는 / 시저에 대한 불만의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금의 시저가 힘이 / 더 강해지면 이러이러한 전제군주의 권력을 / 행사할 것이다. 그러니 그를 독사의 알로 / 간주하자. 그 알이 깨어나면 본성대로 / 위험해질 것이니 미리 알일 때 죽이자. (P.50, 21)

 

카시우스와 브루투스의 차이점은 시저 사후 카시우스의 언행을 통해 분명해지는데, 4막에서 카시우스의 관직 매매 행위를 둘러싼 정당성 여부에 대한 양자 간의 언쟁이 길게 이어져 독자에게 확실히 인식하게끔 한다. 시저가 죽었으므로 카시우스는 자신의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 브루투스는 한치의 흠결이라도 허용한다면 간신히 확보한 자신들의 행위 정당성을 흔들릴 것을 우려한다.

 

브루투스 일파는 시저 죽음 이후를 대비하지 못하였다. 시저가 죽고 나면 만사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품은 데 그쳤을 뿐이다. 안토니[안토니우스]의 역량을 오판한 대가는 참혹하였으니, 두 사람의 유명한 연설은 안토니가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이 출중함을 보여준다. 브루투스는 대중의 이성에 호소한 반면, 안토니는 그들의 감정에 호소하였다.

 

(안토니) 시저는 로마로 수많은 포로들을 데려왔고 / 그 보석금으로 국고를 가득 채웠습니다. / 이것이 시저의 야심이었습니까? / 가난한 사람들이 울 때 시저도 울었습니다. / 야심가는 더 모진 사람이어야지요. / 그러나 브루투스는 시저가 야심가였다고 합니다. / 그런데 브루투스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P.103, 2)

 

공화제를 지키려는 브루투스 일파의 시도는 시저 살해를 계기로 오히려 세력을 잃고 말게 되었다. 안토니와 옥타비우스는 이를 반시저파를 제거하는 명분으로 삼아 철저하게 궤멸시켰고, 양자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이가 결국 로마의 일인자가 되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셰익스피어 당대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스리는 군주제 시절이므로 시저와 브루투스는 먼 옛날의 한 일화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군주제와 공화제의 대립, 시민의 자유를 향한 브루투스의 고고한 외침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의 사후 30년도 지나지 않아 청교도 혁명이 발발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심히 넘기기는 곤란하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군주제와 공화제에 대한 명시적 견해 표명을 하지 않는다. 그의 펜으로 묘사된 시저와 브루투스는 양자 모두 위대하고 고결한 인물이다. 시저는 왕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왕이 되더라도 브루투스의 추측대로 폭군이 또는 폭군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다만 작가는 고상한 의도를 품은 한 인물이 사적인 친분 관계를 뛰어넘어 보다 고결한 목적을 위해 희생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비록 브루투스는 역사의 패자가 되었지만, 카시우스와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이 작품의 표제는 줄리어스 시저이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브루투스이기에 마지막 대목에서 안토니의 대사는 그를 향한 작가 자신의 평가나 다름없다.

 

(안토니) 브루투스는 로마인들 중에서 가장 고결한 인물이었소. / 그를 제외한 모든 음모론자들은 위대한 시저를 / 시기해서 살인에 가담한 자들이오. / 오직 브루투스만이 로마 시민들의 복지와 / 사심 없는 명예심에서 음모에 가담했소. (P.166,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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