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비룡소 클래식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워드 윌슨 그림, 정영목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추억의 모험소설이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읽음에 그런 생생한 감정을 갖지 못하니 한편 아쉽다. 나이의 다소, 축약본과 완역본의 차이 등이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반면 완역본이 주는 풍요로운 내용의 향유, 줄거리만 쫓아가느라 놓쳤던 대목과 장면의 재발견 등은 장점에 해당한다.

 

<배의 주방장>이 원래 제목이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존 실버라는 인물의 비중과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확실히 전반부를 짐 호킨스가 단독으로 끌고 간다면, 후반부는 호킨스와 실버가 공동 주연이라 하겠다. 특히 강렬한 개성의 표출이란 면에서는 실버를 당할 인물이 없다.

 

실버는 해적치고는 독특한 유형이다. 해적이 어떤 사람들인지 겪어봐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호킨스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실버를 살펴봤음에도 그에게서 전혀 해적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물며 지주와 의사 같은 사람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표현한다. 오직 선장만이 유보적 태도를 취하는데, 딱히 개인적 차원의 의심이 아니라 선장이라는 직업적 속성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나는 선장, 검둥개, 장님 퓨를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해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해적이란 내 생각에 따르자면 이런 깨끗하고 유쾌한 술집 주인과는 아주 다른 인간이었다. (P.103, )

 

, 지주님, 전체적으로 나는 지주님이 찾아낸 사람들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만, 존 실버만큼은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해 두고 싶군요.” 의사가 말했다.

저 사람은 완벽하게 믿을 만하오.” 지주가 말했다. (P.113)

 

일행이 폭동의 음모를 간파하고 무사히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개입 덕분이었다. 그를 나타내는 표현을 들자면, 음흉, 교묘, 영리, 그리고 잔인이라고 하겠다. 대개의 악역이 무모하고 성급한 데 비해 실버는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알면서 자신을 위장하는 데 능숙하다. 교묘한 언변으로 무지한 해적들의 충동을 억누르면서도 필요하면 냉정하고 잔인한 면모를 서슴없이 보여 준다. 해적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면 이 소설은 금방 끝이 나고야 말았으리라.

 

실버와 대비되는 인물은 선장이다. 선장은 선원들은 물론 처음부터 지주와 짐의 호의도 얻지 못하였다. 깐깐하고 고지식함에서 비롯한 오해와, 무엇보다 그들의 조심성 없음을 나무라고 특별 취급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반감일 것이다.

 

내가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가는데, 선장이 의사에게 아주 큰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배에서는 누구라고 특별히 예뻐하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지주와 생각이 똑같아 선장을 무척 미워했다. (P.124)

 

선장으로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승객들이 어리석고 답답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것은 기분전환 뱃놀이가 아니며, “죽느냐 사느냐의 아슬아슬한 모험”(P.117)임을 깨닫지 못하므로. 부정적 인상을 받은 선장의 진가는 예방 조치와 통나무집에서 포탄의 위협에 깃발을 내리길 거부하는 단호함에서 드러난다. 실버의 위협 앞에서도 그는 당당하게 실버를 공박하며 모욕적 언사를 퍼부을 정도다. 그는 세련되고 사교적인 인물이 아니지만 깊은 책임감을 지닌 옹골차며 강인한 인물이다.

 

내 깃발을 내리라고요!”

선장이 소리를 지르더니 덧붙였다.

안 됩니다. 나는 못 합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모두 그 말에 동의했던 것 같다. 그것이 강인하고, 뱃사람답고, 선한 감정이었을 뿐 아니라, 적에게 우리가 그들의 포격을 우습게 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전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P.227)

 

짐 호킨스는 소설의 공동 주인공인 동시에 사태 해결의 열쇠를 푸는 역할이다. 작품의 커다란 굴곡점에는 항상 그가 개입한다. 보물섬 지도를 품에 넣고, 실버 일당의 음모를 엿들었으며, 벤 건을 만나고 닻줄을 끊은 히스파뇰라 호를 숨겨두는 등 작중 유일한 소년인 그가 없었다면 소설은 쓰이지 못하거나 해적 일당의 손쉬운 승리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가능하다. 보물섬에서 짐은 언제나 단독 행동을 감행한다. 이것이 가져온 성공적 결과는 소설이기에 가능하다고 봐야겠다. 게다가 항상 우연의 행운이 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덕택도 무시할 수 없다. 사려 깊고 심사숙고하지 못함은 그의 소년으로서의 한계인 동시에 소설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고 봐야겠다. 그럼에도 결과가 항상 만사를 면죄해주지 못한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어리석은 짓으로, 앞서 내 멋대로 보트를 탔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짓이었다. 요새 안에는 성한 사람이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이번 일 역시 결국은 우리 모두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P.271)

 

배를 탄 많은 인물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무인도에 버려지는데, 악역 중에서 유일하게 실버만 무사히 생환에 성공한다. 해적의 우두머리이자 최고의 악당인 그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은 데는 그에 대한 작가의 편애가 있어서다. 엄청난 악당이자 소름 끼치는 사기꾼이고, 무자비한 해적이자 잔인한 살인자이고 간교한 배반자. 상황을 직시하는 명확한 판단력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결단력, 무엇보다 짐에 대한 일말의 호의가 그를 살린 동시에 그를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독자는 그를 미워할 수는 있되 차마 싫어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보물은 자석처럼 사람들의 탐욕과 허용을 끌어당긴다. 위험할 줄 알면서 목숨을 감수하면서도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이 작품에서도 보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다. 보물을 발견하면 모두가 행복할까? 그렇지 않음을 소설의 결말은 또한 우리에게 보여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