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으실 대로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셰익스피어 전집 4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주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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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에 따르면 5대 희극작품 중 하나라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목가적 낭만희극라는 평가가 더욱 와닿는다. 장소가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극 중 분위기는 시종 우아하고 여유로우며 평온함으로 일관한다. 그나마 긴박하고 흥미로운 장면이라고 할 만한 올리버와 올란도의 상봉(4막 제3), 공작 형제의 무력 충돌 위험성(5막 제4)도 무대 위 실제 상황이 아니라 대사로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손쉽게 넘어간다.

 

이렇게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건을 설명하게 되면 무대 연출은 용이하겠지만, 그만큼 극적 현실성은 감소하게 되고 연극은 평면적으로 흐르게 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작가는 관객의 마음을 쏠리게 할 다양한 수단을 사용한다. 여러 연인 간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 어릿광대의 재치, 독특한 철학을 지닌 인물의 배치, 등장인물 간 일견 지루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대화와 수다 등.

 

(찰스) 많은 부하들과 함께 아든 숲에서 즐겁게 사신다고 합니다. 마치 옛날 영국의 로빈 후드처럼요. 여러 젊은 귀족들이 날마다 그 분에게 몰려들어 마치 무릉도원에서 사는 것 마냥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내고 계시다고 합니다. (P.30, 1막 제1)

 

권좌에서 쫓겨난 전임 공작의 태도를 보면 솔직히 통치자로서 제대로 구실을 했을까 의구심이 든다. 추방당해 깊은 숲에서 사는 생활에 오히려 즐거움과 만족감을 나타내는 그의 대사는 작품의 목가성에 기여할지 몰라도 내게는 무기력함을 연상시킬 뿐이다. 동생 프레데릭 공작이 삶의 현실성을 직시하고 치열하게 꾸려나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의 긍정성과 부정성 여부를 막론하고. 같은 맥락에서 올란도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을 드러내는 올리버가 보다 사실적이다. 자신보다 여러 면에서 우월하고 외부의 평판도 좋은 동생을 바라보는 형의 속내는 다양한 층위를 보이기 마련이다.

 

제이키즈와 어릿광대는 유사하면서도 대비되는 인물이다. 재치와 독설로 남들을 마음껏 찔러대고 헤집지만 당연한 것으로 인정받지만, 그들이 주창하는 방향은 정반대다. 제이키즈는 우울과 내향적 사고를 보이지만 어릿광대는 철저히 외향적이다. 그것이 어릿광대의 본질적 역할이며, 모두가 행복한 결말에 기뻐하는 가운데 제이키즈가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연유이기도 하다. 그는 어릿광대가 아니므로.

 

(전임공작) 사냥꾼이 말 뒤에 숨어 사냥감에 접근하듯이 이 사람은 바보인척 하면서 자신의 재치를 쏟아놓는군. (P.209, 5막 제4)

 

로잘린드와 올란도가 벌이는 구애의 상담과 대행은 이 희극에서 중핵을 이루는 일화다. 남장한 로잘린드, 즉 개니미드에게 로잘린드를 향한 절절한 사랑과 구애의 심경을 토로하는 올란도와 치료라는 명목으로 날마다 이를 즐기는 로잘린드. 관객은 어차피 연인이 될 남녀 사이임을 알지만 로잘린드를 철석같이 남자로 믿는 올리버의 시각에서 보면 로잘린드는 예쁘장한 남자다. 올리버의 구애가 절실할수록 오늘날의 독자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기존 작품에서도 여주인공의 남장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토록 구애와 연결 짓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로잘린드) 치료해 드리고 싶은데요. 만약 나를 로잘린드라고 부르고, 날마다 오두막으로 와서 내게 구애를 한다면 말입니다. (P.131-132, 3막 제2)

 

(올란도) 하지만 나의 로잘린드가 과연 그렇게 할까요?

(로잘린드) 내 목숨을 두고 맹세하는데, 그렇게 할 거예요. (P.165, 4막 제1)

 

로잘린드와 올란도, 실리아와 올리버의 사랑이 귀족 간 우아하고 품위 있게 전개되는 사랑의 측면이라면, 실비어스와 피비, 터치스톤과 오드리의 사랑은 그들의 직업-목동, 양치기, 어릿광대, 염소치기-답게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다. 특히 일방적이며 굴욕적인 사랑의 태도를 보이는 실비어스와 그에 대한 멸시와 구박으로 우월적 지위를 드러내는 피비는 일반적인 연인의 그것과 흡사하여 더욱 공감이 간다.

 

이 희극이 사실주의 극 작품이 아니라 낭만극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특징적 대목이 있다. 네 쌍의 연인을 짝짓기하려 인간 세계에 등장한 결혼의 여신 하이멘의 존재다. 고대 희곡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만능 치트키의 부활은 이 희극을 고대와 연결한다. 그리고 제이키즈 드 보이스의 대사로 전하는 프레데릭 공작의 왕권 포기 소식이다. 숲속에 은거한 전임공작 세력을 일망타진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온 그가 수도사의 설교에 감복하여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속세를 떠난다는 설정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동시에 말 한마디로 복잡한 사건을 설명해버리는 만사형통 희극의 속성이다.

 

다소 무리하게 여겨지는 설정을 셰익스피어가 감행한 까닭은 이 작품의 주제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작가는 여기서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화와 대립, 불안을 극복하고 화합과 안정을 지향하여 모두가 행복을 맞이하는 결말이야말로 진정한 희극정신이 아니겠는가. 네 쌍의 연인이 결혼의 결실을 보고, 반목하던 형제의 우애가 회복되었고 무엇보다 전복되었던 사회질서가 평화롭게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그래서 작가는 여러 인물의 입을 빌어 이렇게나 중차대한 사랑의 의미를 제5막 제2장에서 되풀이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 대목은 마치 돌림노래를 하듯 각자가 엇갈린 사랑의 대상을 향한 애틋한 심정을 탄식하듯 토로하고 있어 애처로운 동시에 희극적이기도 하다.

 

(피비) 착한 양치기야. 이 젊은이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줘.

(실비어스) 사랑은 온통 눈물과 한숨이죠. / 피비를 향한 나의 사랑이 그래요.

(피비) 개니미드를 향한 나의 사랑이 그래요.

(올란도) 로잘린드를 향한 나의 사랑이 그래요.

(로잘린드) 여자가 아닌 사람을 향한 나의 사랑이 그래요. (P.194, 5막 제2)

 

이들에 따르면 사랑은 눈물과 한숨, 믿음과 섬김, 환상, 열정과 소망, 존경과 의무와 헌신, 겸손과 인내와 초조, 순결과 시련과 복종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연인 앞에서 영원히 을의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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