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생각해 봐! -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걸
홍세화 외 지음 / 낮은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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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다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비판적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하는 필요성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사회 추세를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부정의를 확립하고 유지하는데 이바지하는 씁쓸함과 후회를 맛볼 수 있다. 간혹 일단 정지한 후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 책의 기획 의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7개 주제로 각각의 필자가 기존 주류적 사고방식에 딴지를 걸면서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뒤집어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각 장의 표제만 보더라도 매우 도발적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경제이념, 공정무역, 과학기술, 생명윤리, 문학, 공동체, 전쟁은 인생과 사회 대부분을 포괄하는 광범한 주제이지만 필자들은 독자의 수준을 고려하여 친근한 어조로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다. 얼핏 지루하고 딱딱하게 보이지만 의외로 술술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보장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짐은 불가피한 현실이나 절대시할 때 빚어지는 문제점 또한 도외시할 수 없다.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면 사회적 부는 극소수에게 편중되고 대다수 국민은 하층계급으로 전락하게 된다. 부의 지나친 쏠림을 개선하는 노력은 사회적 안정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승자독식의 상황을 완화시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조금씩이라도 그런 정신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 때에만 이미 형성된 승자독식 사회가 완화될 수 있다. (P.38)

 

공정무역이 갖는 의의를 여기서는 정의의 경제, 건강의 경제, 연대의 경제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커피 원두를 사례로 공정무역의 효과와 한계를 살펴보는데, 상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대자본의 착취와 불공정을 개선하려는 좋은 의도는 분명하다. 다만 자본주의 체계의 근본적 개선이라기보다는 부분적, 지엽적 측면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도 공정무역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과학기술의 오남용에 대한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갖는 중요성과 영향력이 지대함을 모두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과학기술이 인간사회에 기여하기보다 이윤추구를 우선시할 경우의 사례로서 유전자조작 먹을거리(GMO)의 심각한 위험성을 제기한다. 같은 맥락에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사실상의 대량학살을 비판한다. 의약품은 상품이지만 생명의 관점도 지닌다. 흔히들 생명의 가치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다고 하지만, 이윤 앞에서 생명의 무게는 너무나 가볍다. 약값이 비싸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본의 논리는 냉혹하다. 소아마비 백신을 공개한 소크 박사가 더욱 고결해 보이는 까닭이다.

 

여러분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생명보다 이윤이 앞서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P.99)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문학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십분 공감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비단 문학만이겠는가.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 전반은 생존과 생활이라는 동물적 삶과 인간의 그것과를 구별하는 커다란 차이점이다. 필자는 문학을 향유하는 행위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시와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개인적인 사소한 일 같지만, 아닙니다. 내 삶을 돌아보고 그를 바탕으로 세상에 적극 참여하는 사회 행위인 것입니다. (P.125)

 

공동체의 이상은 아름답다. 구성원들이 내것 네것을 가리지 않고 함께 더불어 나누는 삶이란 하나의 이상향이다. 인류의 가장 초창기에 이런 삶의 모습이 존재하였을 테지만 역사의 흐름은 공유에서 사유로 삶의 방식이 변해왔음을 알려준다. 내 것을 가지려 하고 그것을 우선시하는 인간의 속성이 거의 본능적임을 여러 연구 결과는 드러낸다. 우리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경제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정신은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전쟁이다. 요즘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책이 쓰인 당시는 이라크 전쟁이 현안이었다. 전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지만 전쟁은 과거에도 언제나 발발하였고 향후에도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라크 전쟁의 시각에서 전쟁 일반을 고찰한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 이곳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경제적 탐욕을 실현하기 위해 교묘하게 위장한 전쟁이다. 따라서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논조는 옳다. 그러면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마찬가지인가?

 

전쟁의 목적을 순전히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차원에서만 설명할 수 없다. 전쟁은 전쟁 발발자의 이익 실현을 위한 행위다. 여기서 이익은 자본이 될 수 있고, 종교와 이념 등도 가능하다. 이라크 전쟁에 경도되어 조급한 결론과 일반화는 경계해야 한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는 이 책의 의도는 자본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의로운 전쟁이란 어불성설이다. 전쟁은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어떤 거창한 명분도 개인의 목숨 앞에서 힘을 잃는다. 전쟁 일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쟁을 벌이는 이들은 부수적 피해라는 말을 쓰면서 더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한 작은 희생쯤으로 그들의 목숨과 삶을 가벼이 말하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 부수적 목숨이라 말해지는 목숨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에요.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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