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신은 고양이와 10편의 옛이야기 - 논장 전래동화 3, 프랑스편
샤를 페로 지음, 구스타브 도레 그림, 김경온 옮김 / 논장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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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속의 공주, 빨간 모자, 장화 신은 고양이, 신데렐라. 모두가 동화책에서 또는 아동 만화영화로 친숙하게 접하여 이제는 진부하기조차 할 정도의 이야기들이다. 이런 동화들의 원작 원본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이솝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후대의 각색된 동화와 원작의 내용과 뉘앙스는 비교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

 

페로가 쓴 11편의 이야기 중 전반부 8편은 산문, 후반부 3편은 운문이다. 작가는 산문 동화의 각 이야기를 교훈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동화 장르의 세속적 필요성에 부합하는 태도인데, 그 교훈이 항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음이 흥미롭다. 예컨대 푸른 수염에서 작가는 이 동화에 나오는 무서운 남편은 현실 세계에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오히려 부인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밝힌다. ‘신데렐라에서는 신데렐라의 매력을 마법으로 현실화하는 은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빨간 모자의 내용이 일반적인 결말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 의외다. 비극으로 끝나는 빨간 모자도 그렇지만,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식인귀 출현이라는 전혀 뜻밖의 상황으로 흘러가 우리는 기껏 전반부에 밖에 알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아 물론 공주를 잠에서 깨우는 왕자의 입맞춤도 없다.

 

내용의 신비성, 다의성 못지않은 잔혹성으로 주목받은 푸른 수염은 여러 의문을 제기한다. 푸른 수염이 자신의 전처들을 죽인 이유는 무엇인지? 부인에게 열쇠를 주면서도 열어보지 말라는 푸른 수염의 의도는 무엇인지? 이브와 판도라를 상기시키는 유혹에 약한 여성에게 다시 유혹의 시험을 통해 그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우리는 당대의 엄격한 계급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공주가 잠에서 깨면 외로울까 염려되어 성안의 모든 사람을 거리낌 없이 함께 잠재우는 요정. 막내아들을 드카라바 후작으로 만들기 위해 농부들에게 무서운 위협을 자행하는 고양이. 양자 모두 사회적 하층민에 대한 경시 풍조가 암암리에 배어 있다. 그들이 아무 잘못도 없는데.

 

백 년 후에 공주가 깨어날 때 낡은 성 안에서 홀로 얼마나 놀랄까 하고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요정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아세요?

요정은 마법의 요술봉으로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건드려서 마술을 걸었답니다. (P.18)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 손에 조각조각 토막날 줄로 아시오. (P.73)

 

똑똑하지만 못생긴 리케가 잘 생기게 변하고, 아름답지만 멍청한 공주가 똑똑해지면서 이른바 흠잡을 데 없는 한 쌍으로 결합하는 고수머리 리케의 결론에 모두가 흡족하지는 않다. 사랑의 힘의 위대함을 찬미할 수 있지만 껄끄러움이 남는다. 왜 우리는 동생 공주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동생 공주는 애초 리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언니 공주의 극적인 변모와 행복한 미래가 두드러질수록 동생 공주의 존재감은 왜소해지고 이내 사라져버린다. 현실 세계의 독자 시각에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 흘리고 있을 동생 공주의 슬픔과 원망이 더욱 커다랗게 다가온다.

 

꼬마 엄지의 전반부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와 유사하다. 원래 비슷한 이야기인지 그림 형제가 이 이야기를 모방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식을 죽이려는 꼬마 엄지네 부모와 꼬마 엄지 형제를 잡아먹으려는 식인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생존이라는 절실한 문제에 직면할 때 더 이상 가식은 불필요하다. 꼬마 엄지가 꾀로써 식인귀의 재산을 훔쳐 오는 장면 또한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만 이것 또한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젤리디스당나귀 가죽은 모두 고통받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고통을 가하는 주체가 남편 임금과 아빠 임금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리젤리디스를 괴롭히는 남편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요새로 보면 전형적인 의처증에 해당하는데, 이를 묵묵히 견뎌내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그리델리디스의 순수하고 변함없는 마음은 물론 감탄스럽지만 사랑과 미움, 행복과 고통은 언제라도 한순간에 표변될 수 있다는 씁쓸한 진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당나귀 가죽신데렐라와 비슷한 전개 구조를 지닌다. 여주인공의 어려운 생활, 지저분하고 더러운 취급을 받는 외모, 그녀를 애타게 찾는 왕자, 그들의 사랑을 매개하는 유리 구두와 운명의 반지. 여기에는 가족관계의 근본적 결함도 내포한다. 전자는 계모와 전처소생 자녀의 갈등, 후자는 아빠의 딸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 그나저나 그렇게나 사랑하던 아내를 잃자마자 무슨 연유로 미친 듯이 재혼에 목매었던 아빠 임금의 속내가 궁금하다.

 

마법의 요정우스꽝스러운 소원들역시 그림 동화집에 볼 수 있는 해학적 소재의 얘기로서 양자 모두 말의 소중함과 신중함을 강조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옮긴이의 말처럼 페로 동화들은 친밀함과 생소함의 상반되는 느낌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대중적 동화와 만화의 서사의 원형으로서 오늘날은 자칫 진부하고 전근대적-특히 페미니즘 시각에서는-이지만 17세기 페로가 쓸 당시의 관점에서는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작가 자신의 서문은 재미와 교훈이라는 동화의 기본 정신을 강조한다. 요즘은 후자를 많이 경시하지만 전자만 가지고 오래 살아남는 동화는 없다. 부모의 입장에서 그런 동화는 필요가 없으므로.

 

구스타브 도레는 서사의 기저에 드리워진 어둡고 뒤틀린, 그러나 진실에 가까운 핵심을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재주를 지녔다. ‘꼬마 엄지에서 실수로 자기 자식을 죽이려는 순간의 식인귀의 얼굴은 압권이다. 다만 그의 음산하고 충격적인 삽화는 이게 과연 동화책에 적합한지 근본적 의문점을 제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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