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정글 - 세계의 숨은 걸작 1 : 영국 높은 학년 동화 22
존 로 타운젠드 지음, 정지인 옮김, 윤봉선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극단적이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보호자 역할을 담당하는 어른은 대체로 무기력하고 무능하며 무책임하기 일쑤다. 아이들을 학대하지 않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렇다고 주인공 청소년이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난관을 헤치고 사건을 해결하며 해피 엔딩을 이루지도 못한다. 도중에 인정 많고 능력 있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동화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팽개치고 집을 떠나버린 월터 삼촌과 도리스 아줌마가 그러하며, 딱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돕기 위해 헌신하는 토니 목사님과 실라 선생님, 그리고 밥 삼촌이 또한 그러하다.

 

그럼에도 이 동화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케빈과 샌드라 오누이와 친구 딕이 그러하다. 케빈 남매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도 어린 사촌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의 아빠조차도 감히 해내지 못한 행동이다. 케빈은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다른 도시를 홀로 헤매며 밥 삼촌을 찾는다. 샌드라는 홈스테드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동생들을 돌보는 책임을 오롯이 감당한다. 딕은 친구를 위해 아낌없는 헌신과 희생을 감내한다. 어린 그가 검블 선착장에서 플릭 일당과 홀로 맞서는 대담함과 용기는 어른들조차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화사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정글은 화사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낡고 지저분한 동네여서 시청이 철거해 버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전에 저절로 무너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P.6)

 

객관적으로 케빈네 가족은 가난하다. 일단 그들이 사는 곳인 정글에 대한 서두의 소개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조만간 철거가 진행돼도 이상하지 않을 동네. 월터 삼촌이 가출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삶이 넉넉하고 윤택하지 못했음을 작가는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은 비록 이것에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취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독자의 눈에는 안쓰럽게 비칠 따름이다.

 

나도 사실은 건강한 편이다. 하지만 비쩍 마른 데다 안색이 창백하고 피곤해 보인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좋은 옷도 아니었기에 목사님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P.87)

 

나는 목욕을 하고 난 뒤 토니 목사님의 가운을 입고 앉아서 베이컨과 계란 두 개를 먹었다. 그때까지 그렇게 먹어 본 건 처음이었다. 백만장자가 된 기분이었다. (P.187)

 

케빈 일행을 위험에 몰아넣고 작품에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은 플릭 일당이 맡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어정쩡하게 월터 삼촌도 개입하지만. 케빈과 딕, 그리고 플릭 일당의 만남은 검블 선착장의 아지트에 홈스테드를 구축할 때 이미 암시되었고 막판에 광포한 범죄 현장으로 증폭된다. 여기서 작가의 교묘하게 짜 맞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우연이지만 전혀 우연이지 않게 보이는 기술이란. 반면 동화의 특징인 우연적 요소도 나타나는데, 케빈이 밥 삼촌을 우연히 만나는 대목이다. 갖은 고생에도 찾지 못한 삼촌을 정말 뜻하지 않게 마주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가족 소설이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 상황에서 아이들의 선택은 어떻게든 가족을 유지하고자 한다. 비록 그것이 험난하고 힘겨운 노력을 요구하더라도. 우여곡절 끝에 가족은 재회하고 원래의 삶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해럴드의 입장이 된다면 누구라도 그의 심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친부가 자신을 버렸다는 상실감과 아픔을. 작아서 쓰지 못하는 헬멧을 챙기고 싶은 이 아이의 마음을 누구라도 탓할 수 없다.

 

나는 더 이상 짜증을 낼 수 없었다. 해럴드는 정말로 마음이 상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보다는 해럴드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자신을 두고 사라져 버린 것이니까. (P.65)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극한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비록 고달프지만 이런 경험으로 그들은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하게 된다. 케빈과 샌드라의 책임감을 보면 확실히 알게 된다. 특히 케빈이 위험 상황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싸우는 대목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누구나 공감하게 된다. 개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어른조차도 쉽지 않아서다.

 

나는 다시 커낼 가를 달려가다가 공터를 사이에 두고 오두막이 마주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거기서 멈춰 섰는데, 심장이 쿵쾅대고 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내가 계속 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안의 비겁함에 화가 났다. 딕이라면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꾸짖었다. (P.172)

 

작품의 끝은 케빈, 샌드라와 딕이 걸어가면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다. 낯설지 않은 게 작품 초반과 똑같은 문장을 고스란히 되풀이하고 있다. 작가의 자기표절 또는 실수인가? 여기서 작가의 세심한 의도를 발견한다. 세 명의 아이들의 모습은 사건 전후로 무관하게 처음이나 끝이나 동일하지만, 그때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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