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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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김훈 작가의 글을 읽는다. 작가 특유의 문체와 표현 양식이 반갑다. 그는 비루한 일상을 정면으로 다루되 비루하지 않게 만드는 특이한 마력을 지녔다. 그는 평범한 나날과 순간에서 비범한 의미를 찾고 되새김질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이 모든 게 다른 작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김훈만의 것이리라. 그래서 오늘도 이 작가에게 흠뻑 빠진다.

 

이 소설의 화자는 사람이 아닌 개다. 개만큼 인간에게 친밀한 동물이 있을까. 개똥에서 상팔자까지 광활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개에 대한 평가. 너무 가까운 나머지 천대와 애정의 경계선을 무시로 넘나드는 이 존재만큼 인간을 잘 아는 동물도 없다. 그래서일까 개가 지켜보고 증언하는 인간의 모습은 흥미와 아울러 약간의 두려움마저 예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란다. 사람들에게 개의 눈치를 봐달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끼리의 눈치라도 잘 살피라는 말이다......

개의 말이 너무 건방졌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내 입을 틀어막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P.34)

 

비록 개를 화자로 내세웠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쓴 글이니 개의 마음을 오롯이 전할 수는 없다. 결국 이 글은 사람의 시각과 사고에서 쓴 글이다. 독자 입장에서 다소간 기분이 안 좋더라도 개가 평한 문장이 아니라 작가가 그렇게 썼으려니 너그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개는 후각과 청각이 인간보다 뛰어나다. 개에게 후각은 시각의 상위 호환성을 지닌 감각이다. 정체가 모호한 물체도 후각을 통해 비로소 의미가 개에게 다가온다. 우호적인가 적대적인가, 맛있는지 역겨운지 여부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그런 개에게 인간의 냄새는 어떻게 다가올까.

 

사람의 몸 냄새 속에 스며 있는 사랑과 그리움과 평화와 슬픔의 흔적까지도 그날 모두 알게 되었다. 그 냄새는 모두 사랑받기를 목말라하는 냄새였다. (P.42)

 

주인님 몸에서 나는 경유 냄새는 고단하고도 힘찬 냄새였는데,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졌다. 나는 그 경유 냄새를 아침바다의 차갑고 싱싱한 안개 냄새보다 더 사랑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의 냄새였고, 내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 (P.72)

 

개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기에 개의 희로애락은 인간의 그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개도 동일하게 느낄까. 미처 젖을 떼기도 전에 형제와 그리고 어미 개와 이별할 때 강아지의 심정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살던 고향 집이 한순간에 수몰되어 집도 절도 없이 나앉게 되었을 때 밭고랑에 주저앉아 울고 우두커니 서서 담배만 피우던 노인네의 심경을 개도 공감하려나 알 수 없다.

 

인간과 개가 상호 간에 친밀한 존재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개가 인간에 더욱 의존적이다. 개 없이 인간은 살 수 있지만, 인간 없이 개는 살아갈 수 없다. 야생화된 개는 더는 개가 아니며 단지 인간의 적일 뿐이다. 인간은 개를 경시한다. 개의 고마움과 가치를 올바르게 인정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귀여워하고 용도가 다하면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다. 시골에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와 유기견센터에서 보호 중인 수많은 개를 보면 반박하지 못하리라. 애완견입네 반려견입네 하며 물고 빨고 하지만 조금만 귀찮아지면 짐스러워한다. 개 중에서 사랑하는 주인 곁에서 평화롭게 일생을 마치는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개들의 최후는 항상 비극적이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보리의 어미와 형제, 짝사랑하던 흰순이, 그리고 생사를 건 싸움을 벌였던 악돌이도 그러하며, 무엇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보리의 장래도 불투명하다. 버림받은 존재로서 보리의 남은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우울과 슬픔이 교차한다.

 

내 마지막 날들은 며칠 남지 않았다. 할머니가 떠나면 나는 어디론가 가야 할 것이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새벽안개와 저녁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세상의 온갖 기척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터다. (P.221)

 

어디 개뿐이겠는가. 보리의 가족들, 보리가 함께 생활한 주인네의 삶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수몰되어 고향에서 내몰린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난한 어부로서 근근이 살다가 파도에 휩쓸린 주인아저씨. 생계를 위해 보리를 버리고 도시로 떠나야 하는 남편과 아빠를 잃은 주인네 가족. 사람조차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개의 처지에 그게 가능하겠는가. 사람이나 개나 서글프고 고달픈 존재들이다.

 

내가 영수의 똥을 먹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나는 사람의 몸속이 어떤 냄새와 어떤 느낌으로 차 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 따스함과 축축함과 부드러움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서 한바탕 놀다 온 것처럼 사람을 환히 알 수 있게 되었다. (P.88)

 

똥을 먹는 똥개 취급받은 보리가 똥을 먹음으로써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똥을 먹은 보람이 있겠지만, 아기의 순수한 똥과 세파에 찌든 어른의 똥을 어찌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겠는가. 어른의 똥은 보리로서는 도저히 삼킬 수 없을 테니 진정한 똥개라야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사람을 환히 알게 되었다고 자평한 보리조차도 죽음이라는 현상은 이해 불가능하다.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 죽음이란 피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회피하고픈 것이며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러기엔 두려운 현상이다. 개도 죽음을 의식하면 개의 삶을 살아갈지 모르겠다.

 

주인님은 어디에 계시나. 주인님은 왜 땅속에 계시나.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고 이럴 리가 없고 이래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P.189)

 

이 작품의 보리는 개의 탈을 쓴 사람이다. 개라면 흰순이를 향한 본능을 그렇게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개라면 진정으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보리는 사람의 아름다움에 홀렸다고 말하지만, 사람의 눈에는 개가 참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의 순수한 눈빛, 주인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 순진함을 어찌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겠는가. 그래서 보리를, 나아가 개를 생각하면 아련하다.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은 깊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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