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피 공작부인
존 웹스터 지음, 강석주 옮김 / 한국학술정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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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 유형에 속하지 않음에도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독특한 결말로 마무리되는데, 죽음의 그림자는 남녀, 상하, 선악, 노소의 차별 없이 모두에 드리운다. 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계기는 이탈리아 아말피 공국 공작부인의 재혼이다.

 

청상과부가 된 공작부인은 재혼을 반대하는 퍼디난드와 추기경 몰래 집사 안토니오와 결혼한다. 오빠들의 반대는 재혼이 음탕하다는 이유에서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좋은 남편감을 찾아주겠다고 말하고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극도로 격분한 오빠들에 의해 공작부인과 안토니오는 물론 아이들까지 죽음에 처해진다. 안토니오의 신분이 미천하지 않았다면 이런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가문의 피를 더럽혔다는 이유지만 후반부에서 퍼디난드는 그들의 속내를 드러낸다. 즉 여동생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한 반대였음을 말이다.

 

공작부인은 당대의 관습에 굴복하고 체념하는 수동적 여성상이 아니다. 오빠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안토니오의 주저도 다그칠 정도로 그녀는 결혼에 적극적이며 확고하다. 그녀가 굳이 귀족도 아닌 안토니오를 선택한 이유를 통해 그녀의 지혜와 가치관을 되짚어 볼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갖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말피 공작부인으로서 그녀의 태도는 못내 엄숙하며,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평범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하녀 카리올라의 발악과 대비되어 초월적이기도 하다.

 

퍼디난드와 추기경은 재물을 탐하여 망설임 없이 혈연을 살해하는 비정한 인물들이다. 퍼디난드는 자신의 행동대장이었던 보솔라에 대한 보상을 거부함으로써 그의 분노를 사고, 추기경은 남의 부인을 정부로 두었다가 독살하는 등 외적인 고귀한 지위와 저열한 품성의 대비가 현저하다. 독자는 이를 통해 당대 귀족사회의 타락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보솔라는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이다. 작품 내 온갖 악역을 도맡아 하는 보솔라를 단지 악인으로만 규정 짓기는 애매한 게 사실이다. 군인 신사 출신의 그는 분별력과 정의감도 갖춘 인물이지만 성공과 보상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이를 압도하고 추기경과 퍼디난드의 충실한 부하로서 행동한다. 공작부인과 안토니오에 대한 동정심을 지니고 있지만 끝내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장본인으로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다면 복수를 도모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장인물을 단순히 선인과 악인으로 대별할 수 있다면, 보솔라는 선악을 넘나들며 필요에 따라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간 본성의 면모가 실로 간단치 않음을 대중에게 보여준다.

 

퍼디난드와 추기경, 그리고 보솔라 같은 악인의 환영할 만한 죽음뿐만 아니라 작가는 공작부인과 안토니오, 그리고 아이들 같은 순진하고 무고한 사람의 끔찍한 최후도 거리낌 없이 도입한다. 선인과 악인이 차별 없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할 때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기본 틀은 무너지고 만다. 웹스터의 작품세계가 선정주의라고 비판받는 연유 중 하나인데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유인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는 반면 당대의 어지러운 현실을 작품에 반영했을 뿐이라는 반박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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