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마뉴 황제의 전설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
토마스 불핀치 지음, 이성규 옮김 / 범우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불빈치의 신화와 전설 3부작 중 편집자로서 저자의 역량이 가장 많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는 단편적으로 산재하였던 샤를마뉴와 여러 용사의 이야기를 요령 있게 엮어 하나의 일관된 서사 체계로 구현하였다. 오래된 <롤랑의 노래> 외 중세 시인 아리오스토의 유명한 서사시도 중요한 텍스트이며, 그밖에 중세 기사 관련 설화들에서 채록하였다고 저자는 밝힌다.

 

책을 읽다 보면 아서 왕의 전설과 매우 유사함을 깨닫게 된다.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는 샤를마뉴 황제와 12 용사와 정확히 조응한다. 물론 샤를마뉴 용사들은 활동의 범위가 더 넓다. 서로는 영국과 스페인에서 동으로는 중국까지, 남으로는 에티오피아까지 넘나든다. 그들의 주적이 사라센임은 역사적 현실상 불가피한 것이다. 용맹한 영웅과 용사들을 거느렸지만 정작 당사자 두 사람은 등장인물을 빛내주기 위한 조연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인간적 약점 또한 두 사람에게 존재한다. 샤를마뉴의 약점은 가노 백작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아들 샬로트를 향한 편파적 사랑이다. 전자로 인해 그는 최고의 용사 오르란도 즉, 롤랑을 잃는다. 후자 때문에 샤를마뉴는 리날도와 사이가 멀어졌으며, 덴마크인 오기에르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몇몇 이야기가 있는데, 안젤리카와 리날도, 오르란도를 둘러싼 사랑의 삼각관계가 더없이 극적이다. 샘물 하나로 사랑의 방향이 뒤바뀌며 빚어지는 애환과 끝내 사랑을 놓치고 광기에 빠져버린 그 유명한 오르란도의 장면들. 아무래도 아리오스토의 작품을 꼭 읽으리라. 오르란도의 장렬한 죽음과 대비되는 리날도의 장엄한 순교는 더없이 인상적인 동시에 영욕의 무상함을 드러낸다.

 

브라다만테와 로게로의 기나긴 사랑의 여정도 중요한 갈래다. 종교적 차이를 극복하고 생사를 넘나든 온갖 모험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사랑을 쟁취하는 그들의 로맨스는 전투와 죽음이 난무하는 이 책에서 빛나는 보석과도 같다. 제르비노와 이사벨라, 플로리스마트와 플로르델리스와 비교해본다면 그들이 얼마나 행운인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세계를 일주하다 마침내 지상천국에 도달하여 사도 요한을 만나는 아스톨포의 일화는 황당하면서도 중세인들의 공상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덕분에 오르란도는 이성을 되찾게 되었으니.

 

보르도의 후온과 덴마크인 오기에르는 다른 영웅들과는 다소 궤를 달리한다. 두 사람이 맞닥뜨린 샤를마뉴는 현명하고 위대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늙은 황제에 가깝다. 오기에르의 이야기가 이채로운 점은 그가 모르가나 천사와 함께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서 왕과 함께 아발론 섬에서. 켈트와 게르만의 두 영웅이 여기서 접점을 이루게 된다.

 

이 책은 시종일관 샤를마뉴와 찰스를 혼용한다. 샤를마뉴의 활동무대를 고려한다면, 샤를마뉴가 적합할 텐데. 영미권 독자를 겨냥했다면 그냥 찰스로 통일하든지. 무슨 원칙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표기의 혼란이 아쉽다. 내용만 보자면 산만하지만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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