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군기를 찾아 시공 청소년 문학 44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지음, 김민석 옮김 / 시공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미야자키 하야오가 재미나고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하는 독서목록에 언급되었던 작품이다. 원제는 <9군단의 독수리>인데, 즉각적 이해를 위해서는 번역 표제가 더 나은 것도 같다. 로마제국이 브리튼을 지배하던 오래된 옛 시절을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당시 로마제국은 오늘날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섬 전체를 장악하고 국경에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쌓았다. 이때 장벽 넘어 북부 부족을 공격하기 위해 제9군단이 출병하였으나 말 그대로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는 사건이 생겼으며 이 작품은 이를 제재로 삼고 있다.

 

전반부에서 독자는 마르쿠스의 시선을 따라 국경 요새의 로마군 운영체제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경험을 한다. 표면상 평화롭지만 피지배 남부 부족의 비등하는 봉기의 움직임이 잠재적으로 드리워져 있는 불안한 상황도 감지할 수 있다. 결국 친한 사냥 동료로 믿었던 크래독의 전차와 대결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대목에서 식민주의적 관계에서 우정의 성립 가능성에 회의적 질문을 던진다.

 

크래독이 믿음을 저버린 게 아니었다. 크래독이 지켜야 할 더 강한 믿음이 있었던 것뿐이다. 마르쿠스는 이제 그걸 이해할 수 있었다. (P.73)

 

마르쿠스는 로마인이 아닌 에스카와 코티아와의 관계를 통해서 서서히 로마와 브리튼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의 차이와 갈등의 구조를 이해해나간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의지에 따른 변화가 아닌 타인에 의한 강요는 거부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결국 수용의 자발성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사라진 제9군단의 백부장이었다고 해도 마르쿠스가 그 자취를 찾아서 위험천만한 장벽 너머 지역으로 모험을 떠날 필연적 이유는 없다.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표피적 구실에 불과할 뿐, 독수리 군기를 찾아옴으로써 제9군단을 부활시키고 자신은 군대 복귀를 노리며, 공적으로는 북부 민족이 독수리 군기를 자랑스레 흔들며 반로마 세력을 집결하는 걸 막고자 함이다.

 

마르쿠스와 에스카는 주인과 노예에서 동반자 관계로 변모한다. 목숨을 건 여정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므로. 에스카가 마르쿠스에게 마음을 연 이유는 단 한 가지 자신을 똑같은 인간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후반부는 두 사람의 독수리 군기 찾기 여정과 모험을 다룬다. 이 부분에서 극적이고 목숨을 건 치열한 추격과정이 전개되므로 독자들은 손에 땀 날 정도로 몰입할 수 있으리라.

 

게른의 진술로 제9군단의 몰락은 내부적 요인에 의해 비롯되었음이 드러났다. 부패한 군대, 불완전한 병력구성, 떨어진 사기 그리고 압도적 다수의 적군, 여기에 방어해 줄 성벽을 떠나 적진으로 행군한다는 건 오직 자멸뿐. 되찾은 독수리 군기도 레테의 강을 건널 수는 없다.

 

작품 내내 독자는 로마인 마르쿠스와 시선을 같이한다. 그는 빼앗긴 로마군 군기를 되찾아 왔다. 에피다이 부족은 획득한 군기를 도난당했다. 주인공 행위의 관점은 이렇게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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