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나라 1
임영대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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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되짚어보면 기대와는 달리 선인, 의인이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사례를 쉽게 목도한다. 굵직한 역사의 변곡점이나 결정적 순간에 선택과 우연이 달리 작용했다면 이후 역사가 어찌 전개되었을까 덧없는 상념에 사로잡힐 때도 많다. 그런 면에서 가상역사소설은 짜릿한 기대감을 안겨준다. 그것을 값싼 감상이라고 치부해버려도 좋다.

 

이 소설의 제재는 너무나도 친숙한 역사상의 위인인 이순신 장군이다. 최후의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순사한 구국의 영웅 이미지는 소설과 드라마 등을 통해 많이 희미해졌다. 댓가없는 충성과 애국의 결과는 권력의 견제와 질시를 초래하고, 주변의 모든 이를 살리기 위한 극단적 선택으로 귀결되는 극적 시나리오가 한층 지지를 받고 있다. 만약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살아남고 조정의 부당한 탄압에 궐기하였다면 조선의 역사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 소설이 가상으로 써내려가는 지향점이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일 수 있다.

 

역사를 뒤집는 설정이다 보니 응당 허구가 개입할 수밖에 없지만 의외로 당대 역사의 사실에 충실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등장인물과 정세를 실제에 근접하게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 수고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역사와 가상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가의 의도에 부응하여 거의 사실에 가까운 추정과 완전한 허구 사이의 짜릿한 줄타기에 몸을 맡기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금부도사와 백성들 간의 팽팽한 대결과 수하 장수들의 거사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작품 초반을 이끌어간다면 중반부는 거병한 이순신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전라우수군 및 충청수군과의 해전이 압도적이다. 김억추와 대비되는 충청수사 이시언의 장렬한 선택은 결국 유교적 가치관에서 전형적 사대부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에서 이순신과 함께 거병의 한 축을 담당하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이가 뜻밖에도 경상우수사 배설이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전장에서 달아났다가 후에 추포되어 사형을 당했던 그가 여기에서는 백성의 안위는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임금과 조정에 극도의 반감을 품고 무리를 모아 역모를 일으키는 강렬한 캐릭터로 부활한다. 한편 선조의 냉혹한 정치인식과 처절한 권력욕은 작중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권력 앞에서는 인륜도 무의미함을 이미 조상들이 왕조 초기에 몸소 입증해보이지 않았던가. 선조는 암군(暗君)은 아니지만 지위불안에 사로잡혀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임금이라고 밖에. 당대의 신하들을 보면 쟁쟁하기 이를 데 없다. 일찍 세상을 뜬 율곡은 그렇다 치고 유성룡,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등 오늘날까지도 명신(名臣)으로 일컬어지는 그들이 있음에도.

 

반군의 전격적인 한강수로 진격으로 혼란에 빠진 관군. 수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강가의 수많은 인가와 창고에 망설임 없이 불을 놓는다. 맹자가 말했다. 인의를 저버리는 군주는 일개 필부에 불과하다고. 흥미진진한 1권은 이런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지옥의 겁화처럼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는 이순신의 눈 속에서도 불꽃이 일렁였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불꽃이. 그리고 그 불꽃 속에는 새 나라를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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